경찰 수뇌부가 정세균 국회의장 경호원의 멱살을 잡은 새누리당 한선교 의원(57)에 대한 엄정 수사 방침을 공언했지만 정작 일선의 수사는 지지부진하다. 이에 대해 경찰은 “경호원이 해외에 나가 있어 피해자 조사가 늦어지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2년 전 불충분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여론을 등에 업고 전광석화처럼 진행된 바 있는 더불어민주당 김현 전 의원 사건 처리와 너무 대조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이달 초 전·현직 경찰관들의 모임인 경찰인권센터의 고발 이후 좀처럼 수사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는 경찰 수뇌부가 “정확하게 사실관계를 밝혀 직원들의 명예심이 손상되지 않도록 하겠다”(12일, 이철성 경찰청장), “원칙대로 수사하겠다”(5일, 이상원 서울경찰청장)고 기자간담회에서 잇따라 밝힌 것과 배치된다.
통상 경찰 조사는 ‘고발인 → 피해자 → 참고인 → 피고발인’ 순서로 진행된다. 경찰은 지난 5일 한 의원에 대한 공무집행방해 혐의 고발장을 접수했다. 그로부터 이틀 뒤 경찰인권센터를 이끌고 있는 장신중 전 강릉경찰서장을 불러 고발인 조사까지 마쳤다.
하지만 현직 경찰관 신분으로 멱살잡이 사건의 피해자인 국회의장 경호원이 정세균 의장의 미국 순방 일정에 동행하게 되면서 처음 스텝이 꼬였다. 경찰은 그가 오는 20일 이후에야 출석할 수 있다고 밝혔다는 점을 들어 수사 지연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설상가상으로 더 큰 문제는 20대 첫 국회 국정감사가 9월 말에 시작돼 10월 중순에나 끝난다는 것이다. 피해자와 참고인 조사를 마친 뒤에 피고발인 신분인 한 의원을 불러야 하는데 국감이 한창일 때여서 조사가 더 미뤄질 가능성이 높다.
이번 사건은 국회의장실에서 여러 명의 국회의원과 취재진들이 목격하는 가운데 벌어졌다. 또 곳곳에 공무집행방해 혐의를 입증할 증거 사진과 동영상이 존재한다. 이 때문에 엄격하게 수사 절차를 따지는 것 자체가 ‘친박 중진의원’을 예우하기 위해 경찰이 짜낸 형식논리에 불과하다는 의견도 있다.
일례로 과거 같은 영등포서에서 수사했던 더불어민주당 김현 전 의원의 대리기사 폭행 의혹 사건의 경우 이렇다할 증거가 없었는데도 경찰은 ‘몰아붙이기식 수사’를 감행했다.
김 전 의원은 세월호 유가족 몇몇과 함께 2014년 9월 17일 새벽 영등포구 여의도동 거리에서 대리운전을 거부하고 다른 곳으로 가려던 대리기사 이모씨와 시비가 붙어 물리력을 행사한 혐의를 받았다. 이때 경찰은 사건 발생 이후 불과 일주일만에 김 전 의원을 소환하는 등 발빠르게 조사 절차를 밟았다. 그러나 지난 2월 법원은 1심에서 김 전 의원에 대해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무죄 판결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