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을 흉기로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30대 주부가 1심인 국민참여재판에서 징역 3년을 선고 받았다가 항소심에서 형량이 배로 늘었다. 그 이유는 숨겨진 남자 친구의 존재가 드러나면서 ‘범행에 대한 진지한 반성’을 하는지 믿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서울고법 형사5부(부장 김상준)는 살인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모(39)씨에 대해 징역 3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6년을 선고했다고 3일 밝혔다. 이씨는 지난해 3월 18일 자신과 심하게 다투던 남편이“아침이 되면 죽여버리겠다”고 위협하자 옹기 소재의 화분 받침대과 부엌칼, 장갑을 침대 곁에 갖다뒀다. 이어 이튿날 아침 일어나려는 자신을 제지하는 남편을 화분 받침대로 내려친 뒤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살인)를 받고 있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 재판에서 배심원들은 이씨가 결혼 생활 8년 내내 가정폭력에 시달린 점 등 범행 동기와 이씨의 진지한 반성을 주된 양형(형량 결정) 판단 기준으로 삼았다. 이씨가 범행을 인정하면서 잘못을 깊이 반성하는 점이 배심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씨는 재판 기간 세 차례 반성문을 제출했다. 배심원 7명 중 4명이 징역 3년을 평결하자 재판부도 배심원 양형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형법상 살인죄는 5년 이상 징역, ‘참작 동기가 있는 살인죄’의 법원 내부 양형기준은 최소 징역 2년 6개월에서 최대 15년이지만 최저형을 택한 것이다.
하지만 검찰의 항소에 따라 2심 재판부가 증인 신문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반전’이 일어났다. 남자친구의 존재가 드러난 것이다. 범행이 있기 2년 전쯤 이씨의 집에 에어컨을 설치하러 간 박모씨였다. 두 사람은 1년 뒤부터 '오빠''동생'하며 1주일에 2번 정도 만나는 사이로 발전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씨가 남편 모르게 박씨와 지속적인 만남을 가지며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며 “남편 살해 후 구치소에 수감돼서도 지인과의 접견에서 남자친구인 박씨 소식을 전해 듣는 등 사사로운 대화를 나눴다”고 제시했다. 이어 “피고인의 ‘진지한 반성’에 대한 존재 여부를 심각하게 재고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이는 1심 배심원들이 양형 판단에 있어 달리 판단했을 만한 중대한 양형요소로 판단되며 이씨에 대한 양형은 재조정될 필요가 있다”고 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