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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로 살다가 죽은, 미국 영웅..
문화

아버지로 살다가 죽은, 미국 영웅

김현태 기자 입력 2015/02/05 12:42

▲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의 한 장면. 주연배우 브래들리 쿠퍼는 실존인물 크리스 카일을 연기하며 '고독한 저격수'의 모습을 보여준다.
모처럼에 한 편의 영화를 선택한 것이 어렸을때 우상과 같은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신작 <아메리칸 스나이퍼>를 보았다.
실존인물 크리스 카일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명성이 높은 특수부대 '네이비 실'에서도 '전설'이라 불렸던 남자다. 그의 별명이 '전설'이었던 이유는 그가 뛰어난 실력의 저격수였기 때문이다.
 

총 4번의 파병에 공식적으로 160명(비공식 255명)의 적을 사살한 그는 적에게 있어 '보이지 않는 악마'와도 같은 존재였다. 반면 그는 미군에게 누구보다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그가 함께 참전한 전투에서 아군은 두려움 없이 전진할 수 있었다고, 영화는 보여준다.

미군 역사상 가장 위협적인 저격수

 
▲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의 한 장면. 주연배우 브래들리 쿠퍼는 실존인물 크리스 카일을 연기하며 '고독한 저격수'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는 카우보이를 꿈꾸던 미국인 청년이 9·11 테러를 계기로 변화하는 모습을 그려낸다. 크리스 카일은 어릴 적 아버지로부터 사냥을 배우고, 뛰어난 사격기술을 물려받는다. 동생과 함께 전국을 돌면서 말타기 대회 상금으로 전전하던 그는, 국제무역센터가 테러리스트의 공격으로 무너지는 장면을 보고 입대를 결심한다.
 

그가 고된 훈련을 이겨내고 마침내 특수부대 저격수로 발돋움한 성장 과정, 아내를 만나서 가정을 꾸리게 된 행복한 개인사, 결혼식 와중에 해외 파병이 결정되는 비극적인 장면까지.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다양한 관점에서 이야기를 엮어나간다.
 

그렇게 여러 각도에서 '크리스 카일'을 들여다보게 한 이후에, 영화는 다시 첫 장면을 스크린에 띄우며 관객을 돌려보낸다. 첫 전투에서 대전차포탄을 손에 쥔 소년을 발견한 크리스 카일. 자칫 상황을 잘못 판단하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 그는 방아쇠를 당길지 고민에 빠진다. 철저하게 감정을 이입하게 된 관객은 크리스 카일과 함께 갈등하게 된다. 과연 저 아이를 쏘아야 할까, 말아야 하나.
 

폭음과 동시에 화면 위로, 전장에서 살상을 계속해내야만 하는 중압감과 고국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미안함이 교차한다. 이런 역할을 모두 수행할 수 없기에 슬픔에 빠지고, 전쟁의 참혹함에 또 다시 충격에 빠지는 크리스 카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실제 인물과 흡사하게 보이기 위해서 20kg 몸무게를 늘리기까지 한 주연배우 브래들리 쿠퍼의 연기력이 돋보이는 부분도 바로 이 지점이다. 인물의 사실적 묘사에 집중함으로써 영화는 미군 역사상 가장 위협적인 저격수를 영화로 재구성하여 고스란히 선사한다.

영화가 보여주는 전쟁의 여파

 
▲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의 한 장면. 전우를 구하고자, 나라를 지키고자 파병되어 싸우던 크리스 카일(브래들리 쿠퍼)은 생사를 건 상황에 놓인다.   

132분의 상영 시간 동안 전투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 와중에 누군가는 목숨을 걸고 최전선에서 싸우는 특수부대의 용맹함을, 다른 누군가는 전쟁으로 망가지는 개인의 삶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이런 모습을 모두 담았는데, 전체적으로 균형감을 잃지 않는 관점이 또 하나의 매력으로 작용한다.

'애국심'으로 무장한 군인들은 단순한 정신세계를 기반으로 두려움을 떨쳐내지만, 정작 전투가 끝난 이후에도 압박감을 견뎌내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전투 과정에서 부상당하거나 사망하는 장면도 현실적으로 비춘다. 주인공뿐만 아니라 동료들이 하나둘씩 죽어가는 장면은, 단순히 영화의 줄거리를 넘어서 현재 이 시각에도 어디선가 벌어지고 있을 현재진행형 사건들이지 않은가.
 

극 중 크리스 카일이 보여주는 모습도 그러하다. 동료들을 지켜야만 한다는 의무감에, 자력에 이끌리듯이 그는 멈추지 못하고 파병에 참가한다. 그러면서 점점 가족에게서 멀어지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개인의 삶 또한 피폐하게 망가져 간다. 극 중 아내가 카일에게 던진 한마디가 모든 상황을 압축한다.

"전쟁이 당신의 모든 것을 바꿔놓았어."
 

단순히 미군의 입장만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현지에서 피해를 보는 민간인들도 볼 수 있다. 전쟁으로 인해 삶의 터전이 폐허가 된 사람들은 미국인뿐만이 아니다. 영화가 보여주는 전쟁의 여파는, 국경과 인종을 초월하여 모두에게 상처를 남긴다. 그 상처는 씻을 수 없이 깊게 박혀서,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난 뒤에도 끊임없이 개인의 영혼을 파고든다는 점을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보여준다.
 

영웅으로 싸우다 가장으로서 죽은 남자

 
▲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의 포스터.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전쟁터에서 영웅으로 싸우다가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죽은 남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30살에 입대하여 신출귀몰한 스나이퍼로 활약하다가, 귀국한 뒤에 전우들을 위해 정신외상환자들을 돕는 과정에서 살해당한 것은 슬프면서도 아이러니한 부분이기도 하다. 흔히 적으로 여기던 외딴 국가의 테러범이 아닌 자국민의 손에 죽음을 맞이했으니까 말이다.
 

테러에 가담하는 민간인을 보고서 "놈들은 악마야"라고 흥분한 카일에게 "악마는 어디에나 있지"라고 말하는 동료의 대사가 인상 깊다.

영화는 마치 거울에 비춘 것처럼, 크리스 카일과 흡사한 이슬람의 '올림픽 메달리스트 출신' 저격수를 배치한다. 둘은 라이벌처럼 서로를 노리면서 싸우는데, 실상 각각 다른 위치에 있을 뿐이라는 듯 감독은 두 사람을 대비시킨다.
 

물론 영화가 미국인의 시선이라는 한계를 모두 넘어선 것은 아니다. 또한 영화가 이라크인을 그려내는 자세가 타자화에 기인한 배제라는 비판도 무사히 피하기는 힘들 것 같다. 하지만 정치적인 견해를 넘어서, 전쟁을 묘사하는 노년 감독의 진중함이 영화의 무게를 더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신과 가족, 조국에 헌신하면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싸우는 주인공을 보면, 보수주의자를 자처하는 감독 영화답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다른 관점을 함께 보여주고, 신념에 매몰되지 않는 태도를 표현했다. '이것이야말로 옳다'고 강력하게 주장하지 않고, '과연 이것이 최선일까'하는 물음을 던진 셈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던져주는 묵직함은, 정당성 확보를 위한 합리화에 매달리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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