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권능(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실장)
최근 성과연봉제와 이를 막기 위한 공공 부문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온 나라가 들썩거리고 있다. 정부는 성과연봉제를 120개의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에 적용하고 203개의 기타 공공기관에도 준용하는 작업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에 대해 공공 부문 노동자들은 법적 대응과 파업으로 맞서고 있다.
표면화된 사회 갈등은 언제나 원리와 원칙들 사이의 충돌을 저변에 깔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갈등 양상은 지나치게 이해타산적인 모습이어서 갈등의 원천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이쯤에서 이를 끄집어내 숙고해보는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무엇보다도 삶에 있어서 노동의 의미와 노동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고려가 성과연봉제의 도입과 관련해서 필요하다. 왜냐하면 현재 우리나라의 노동과 선진복지국가의 노동이 바로 이 차원에서 각기 다른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특히 공공 부문의 노동과 임금은 이 차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기 때문에 성과연봉제는 이 틀에서 논의될 필요가 있다.
# 노동으로 사는 인간은 어디에?
오늘날 모든 인간은 일상 속에서 ‘인간에게 필요한 유.무형의 재화(서비스 포함)를 만들어내는 육체적 또는 정신적 활동’, 즉 노동을 하면서 살아간다. 인간은 노동을 통해 자연을 제어하고 변형시킬 뿐만 아니라 노동을 통해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만들어내고 인간의 행위를 규제하면서 공동체를 형성.유지하고 살아간다. 이런 노동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바로 생존과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이다. 그것도 일정 수준 이상의 질이 보장되는 생존과 적응이다. 이런 맥락에서 노동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고 인간적 삶의 영위와 불가분하게 연결되어 있다.
전기를 만드는 노동이 없다면, 아이를 키우는 노동이 없거나 노인을 보호하는 노동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매우 피폐해질 것임이 명확하다. 노동의 이런 차원은 우리의 노동이 사용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 더 나아가 우리 모두를 위한 것임을 보여준다. 노동의 이런 본연의 속성들이 현실에서 제대로 실현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 오늘날 우리 국민 대부분은 삶의 현장에서 매일 행하는 노동이 자아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그 보다는 단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한다.
요컨대 우리나라에서는 ‘돈을 위한 노동’과 ‘자아실현을 위한 노동’이 구별된다. 하루 24시간 중에서 ‘돈을 위한 노동’에 할당된 시간은 출퇴근 시간을 포함해 보통 10시간을 훌쩍 넘는다.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함에도 대부분의 국민들은 그 시간 동안의 노동 속에서 삶의 의미나 자아실현 등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현재 나타나고 있는 현실일 뿐이며, 그렇게 사는 것이 정답인 것은 아니다. ‘자아실현을 위한 노동’이 보다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상황은 이미 선진복지국가에서는 일상이 되어 있다. 돈을 벌면서 동시에 자아를 실현하는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노동은 이미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국가가 보장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그런데 노동의 결과인 성과를 기준으로 함께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등급을 매기고 임금을 차별적으로 제공하는 성과연봉제는 노동을 철저하게 ‘돈을 위한 노동’으로 전락시킨다. 당장의 임금이 성과에 의해 좌우되고 그 성과라는 것이 사용자의 이익에 직접적으로 결부된 것이라면,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직장에서 노동과정을 통해 자아를 실현시킬 꿈을 꾸기 어렵다. 자아실현이 떠나버린 노동 현장에서 남는 것은 돈밖에 없게 되고,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 되어 삶에 있어서 주객전도가 일어나게 된다.
# 임금의 사회적 의미를 제거하는 성과연봉제
‘돈을 위한 노동’을 야기하는 성과연봉제는 임금 자체의 성격도 왜곡시켜 버린다. 임금이란 노동자가 노동의 대가로 사용자로부터 받는 봉급, 수당, 상여금, 그리고 현물 급여 등의 반대급부를 의미한다. 그러나 ‘노동의 대가’ 또는 ‘반대급부’라는 측면만을 가지고 임금을 논하는 것은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임금 체계는 노동이 갖는 인간적.사회적 측면 또한 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노동의 대가로 얼마나 많은 돈을 받는지도 중요하지만 노동이 현실에서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지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노동 조건이 매우 열악한 상황에서 노동을 제공하고 직무, 역할, 성과 등의 기준들을 가지고 대가를 산정한다면, 열악한 상황이 주는 불이익은 그대로 노동자가 감수해야 한다.
더 나아가 노동하는 동안 괴로움이 크다면, 그리고 임금을 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런 괴로움을 감내해야 한다면, 그 임금은 ‘눈물 젖은 빵’이 되어 의미가 퇴색된다. 앞서 말한 노동 자체의 의미 중 ‘자아실현을 위한 노동’이 상실되어 사회적 문제가 발생한다.
일반적으로 자아실현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보다 용이해진다. 혼자의 힘으로 자기만의 공간에서 개별적인 것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소통과 협업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달성한다. 그리고 타인과의 이런 ‘주고받음’ 자체가 자기 삶의 일부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이런 속성이 가장 잘 발현되는 장소가 바로 노동이 일어나는 작업장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성과연봉제는 임금의 사회적 의미를 담아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사회적 의미를 해친다. 이런 임금 체계는 노동자들 사이의 협업과 협동을 저해하고 상호간의 소통을 최소화하며 과도한 내부 경쟁으로 인해 노동자들을 개별화시키고 다른 노동자들로부터 담을 쌓도록 만들기 때문에 이 체계 내에서는 사회적 의미가 발붙일 곳이 없게 된다. 요컨대 임금은 단순히 노동의 대가로만 보기 보다는 노동의 조건을 포함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노동 조건이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또는 부정적 영향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성과연봉제는 이런 측면에서 매우 부정적인 평가를 피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성과연봉제는 노동자가 노동의 과정에서 투여한 노력과 역량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다. 성과가 임금 책정의 기준이 되면, 소비의 양을 사전에 예측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여러 가지 다른 조건과 요소들에 의해 소비의 양 자체가 변하기 때문에 많은 노력을 들여 생산했다 하더라도 이 노력이 소비의 크기를 온전하게 규정하지 못한다. 즉 노동 과정이 아무리 좋았을지라도 그것이 성과를 완전하게 규정하지 못해 양자 간에 불일치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런 이유에서 성과만을 기준으로 또는 성과를 핵심적 기준으로 노동의 대가를 측정하는 것은 심각한 오류를 낳을 수 있다.
# 공공 부문의 고유한 속성과 대립되는 성과연봉제
공공 부문은 시장 원리에 기초해서 작동하는 민간 부문과는 다른 원리와 원칙에 의해 생산과 소비의 과정이 이뤄지는 특징을 갖는다. 따라서 노동 또한 민간 부문의 그것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우선 공공 부문에서 노동을 통해 생산하는 재화는 공동체의 구성원 모두를 위한 것이 대부분이다.
한국전력에서 생산하는 전기는 특정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다. 수자원 공사에서 생산하는 물도 국민을 구성하는 불특정 다수를 위한 것이다. 행정서비스 또한 비록 행정구역별로 나뉘어 있긴 하지만 종합적으로 보면 모든 국민이 소비자가 된다.
넓은 의미에서 보면 공공기관이 생산하는 재화는 국민 전체에 의해 공유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공공 부문에서 노동을 한다는 것은 노동의 결과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펼쳐지는 셈이 된다. 이런 연관은 노동이 갖는 또 하나의 속성인 ‘사회성’을 보다 잘 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국민 전체가 공유하는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일하는 것이므로 노동 자체가 ‘돈을 위한 노동’만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노동’이 될 조건을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공공 부문의 노동은 민간 부문의 ‘돈을 위한 노동’과는 성격이 달라진다.
그리고 공공 부문 노동자들은 노동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고 즐거움을 누릴 수 있으며 동시에 사회적 기능 또한 제대로 수행할 수 있게 된다. 공동체 구성원들의 기본적인 삶을 위한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며, 이것들이 공유됨으로써 구성원들을 서로 연결해주고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사회적 망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해준다. 국민이 내는 세금은 공공 부문 노동자들의 임금이 되고, 이들의 활동을 통해 구성원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연대의 고리’가 맺어지는 것이다. 이런 고리가 강할수록 해당 공동체는 보다 강력한 사회적 자본을 갖추게 되며, 이는 공동체의 유지.발전에 밑거름이 된다.
하지만 성과연봉제는 공공 부문 노동의 이런 사회적 기능을 최소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연대의 고리’를 맺는 작업은 개인 혼자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해당 조직 구성원들의 협동과 협업을 통해 이뤄진다. 뿐만 아니라 외부와의 소통을 통해서도 만들어지는데, 이는 국민에게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생산 과정에 국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개방함으로써 이뤄진다. 이는 지방자치가 공고한 유럽에서는 이미 실현되고 있는 바이기도 하다. 성과연봉제는 이런 작업들을 막아서는 걸림돌이 된다. 조직원의 성과를 개별적으로 측정하므로 협업이나 협동 그리고 주민들의 참여 등을 측정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측정하더라도 특정 개인에게 성과로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공공 부문에서 생산되는 재화와 서비스는 소비자가 국민인 관계로 순수한 손익계산의 차원에서 보면 공공 부문의 수익은 국민의 손해가 된다. 즉 공공기관의 수익이 높으면 높을수록 국민은 손해를 보게 된다. 올해 한국전력의 수익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반면, 국민들은 전기요금 폭탄을 맞았다. 성과연봉제가 적용된다면, 한국전력의 종사자들의 성과는 높게 나타나는 반면 국민은 불만만 쌓일 것이다. 이런 관계는 공공병원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공공병원이 많은 수익을 내서 높은 성과를 올렸다면, 반대급부로 국민들은 그만큼 진료비나 병원비를 더 지불했다는 것이 된다. 이처럼 공공기관이 성과만을 쫓는다면 국민의 입장에서 그 결과는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 공공 부문의 속성을 실현시킬 새로운 개혁이 시급하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공공 부문이 개혁의 대상으로 지목되는 것은 공공 부문이 공동체 내에서 필연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고유한 속성들을 제대로 발현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과연봉제나 저성과자 퇴출제 등은 이 부문에서 고유 속성의 발현을 오히려 더 막을 뿐이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개혁은 공공 부문의 고유 속성이 반영되는 노동 조건을 마련하는 것이어야 한다. 내적인 협업을 강화하고 외부와 상시적 연결을 가능하도록 하는 제도들이 더 시급하며, 이를 반영하는 인사관리 시스템과 임금 체계가 들어서야 한다.
그래야 공공 부문의 노동자들로 하여금 공익을 실현한다는 사회적 소명의식과 책임의식을 갖게 만들 수 있고, 나아가 그것을 자신들의 노동 관련 정체성 또는 직무 관련 정체성으로 정립시킬 수 있다. 이것이 선결돼야 공공 부문 노동자들은 지금의 부정적인 모습에서 탈피하여 보다 적극적인 활동의 동기를 가지게 되며, 그 결과로서 공공서비스의 질이 향상되어 국민의 신뢰도와 만족도가 올라갈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확립된 변화는 우리나라를 복지국가로 바꾸기 위한 전면적인 변혁의 초석이 될 것이다.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