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유산 등재 추진중인 '한양도성' 내 문화재 점검
숭례문 화재 사건이 일어난 지 7년. 2008년 2월 10일 불타던 국보 1호는 정부와 국민들에게 문화재 보호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지만 7년이 지난 지금, 우리 문화재는 안녕할까.
5일 황평우 문화재청 문화재 전문위원과 함께 서울 한양도성 내 대표 문화재들을 돌아보며 문화재 보호의 현주소를 점검해보았다. 사적 10호인 한양도성은, 문화재청이 내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 중인 대상이다.
◇토사물에 동물 분뇨, 담배꽁초…홍지문은 '몸살'
이날 오전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서울 종로구 홍지동의 '홍지문(弘智門)'이었다. 서울성곽과 북한산성을 연결해주는 탕춘대성의 성문으로, 서울성곽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현재는 서울 서대문구와 종로구의 경계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인왕산 등산로 옆 도로에 바로 인접해 평소 많은 주민들이 드나드는 문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홍지문은 사람들이 무심코 버린 담배꽁초 등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이날 홍지문 대문 바로 앞에는 토사물이 떨어져 있었고 동물의 분뇨도 점점이 눈에 띄었다. 새벽에 관리자가 청소를 했는지 쓰레받기는 문 근처 아무데나 내팽개쳐져 있었으며 곳곳에는 담배꽁초가 널부러져 있었다.
황평우 위원은 "문화재가 있는 곳은 흡연이 금지된 구역"이라며 "금연 팻말이 있어도 담배꽁초가 곳곳에 놓여있는 것을 보면 이 근처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담배를 피운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홍지문은 북한산성으로 연결되는 굉장히 중요한 문으로, 각별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지문과 탕춘대성이 이어지는 곳은 흉물스런 철조망으로 막혀있는데, "도대체 어디 국적인지 모를 철제 울타리"라는 게 그의 말이다.
'삼선 어린이공원'의 놀이기구 너머 삼군부 총무당이 보인다. (사진=홍영선 기자) ◇놀이터에 갇힌 조선의 '국방부' 삼군부 총무당
홍지문을 지나 이번엔 서울성곽 내의 조선시대 관청을 살펴보기로 했다. 대상은 성북구 삼선동에 위치한 삼군부 총무당. 조선의 군사업무를 담당하던 삼군부 청사로, 이를테면 현재 국방부의 전신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맞닥뜨린 것은 파랑 보라 형형색색의 놀이기구가 가득찬 '삼선 어린이공원'. 그 가운데 삼군부 총무당이 자리잡고 있었지만 기대했던 조선시대 국방부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황 전문위원은 "조선시대 국방부가 놀이시설에 갇힌 꼴"이라고 비판했다.
문화재청 홈페이지에는 삼군부 총무당을 "조선시대 관아건물로서 희귀한 문화재"라고 평가하면서도, 그 쓰임새조차 알 수 없도록 '전혀 희귀하지 않은' 문화재처럼 관리하고 있었다.
황 위원은 "일제시대에 일본이 군 본부 건물을 일부러 안 보이는 곳으로 옮긴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제대로 복원하려는 움직임이 없는 것도 문제지만, 건물의 역사적 의미에 맞게 보호하려는 움직임조차 없는 건 더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
◇ "동묘가 보물인가요?"… 노점상 옷가지에 화재 위험성↑
마지막 대상은 한양도성의 정신적 수호신 역할을 했던 동묘. 동묘는 중국 촉한의 명장 '관우'를 숭배하며 제사지내는 묘로,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과 명군이 왜군을 물리칠 때 관우 신령에 덕을 얻었다 해서 선조 32년에 착공한 건축물이다. 보물 제142호로 지정돼 있기도 하다.
지하철 동묘역 1번 출구에서 내리자마자 동묘가 자리잡은 동묘공원까지 줄지어 늘어선 노점상들은 짐보따리를 풀고 장사에 여념이 없었다. 문화재인 동묘 옆에는 담장 하나를 경계로 구제옷부터 그릇, 골프채 등 각종 중고물품이 즐비했다.
동묘공원 앞 노점상에서 옷을 보고 있던 조모(23) 씨는 "중고물품 등 특이한 것이 많다고 해 놀러왔다"며 "이곳이 보물인지는 몰랐다"고 말했다.
동묘공원에 들어가기 전 입구에는 '금연' 표시가 무려 10개 정도 붙어 있었지만, 담배를 입에 물고 진입하는 사람들은 어렵지 않게 목격됐다. 또 대부분의 노점상인들 역시 담배를 피워대 화재 위험성은 더욱 높아 보였는데, 황평우 위원은 "팔려고 내놓은 옷가지에 자칫 불이라도 붙어 공원내로 넘어간다면 막을 길이 없다"고 안타까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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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안에서 근무중인 관리인은 "우리는 동묘공원 안만 관리할 뿐, 밖은 관리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면서, "장사하러 오는 사람들을 막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가까운 곳에 있어 오히려 소중함을 놓치고 마는 홍지문과 삼군부 총무당 그리고 동묘에서 접한 모습들이 오늘 우리 문화재의 현주소인 셈.
"숭례문 화재로 잃었다고 슬퍼할 게 아니에요. 우리 스스로 주변에 문화재를 정말 문화재처럼 대하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어요".
정부의 노력뿐 아니라 문화재에 대한 시민의식이 각성될 필요가 있다는, 황평우 전문위원의 탄식이다.
1890년대. 숭례문 밖(채색사진)
숭례문 밖
1895년 숭례문
1900년대초 숭례문
1910년대. 초기의 전차는 남대문 홍예로 통과했다.
한일합방 직전,대한제국 시절 숭례문
1910년 무렵 촬영된 남대문(南大門. 숭례문). 이미 양쪽 성벽은 헐려져 도로가 나 있다. 사진 출처는
'한국병합' 관련한 1910년대 일본측 사진자료집인 '일본의 조선'(日本之朝鮮. 有樂社. 도쿄).
사진 타이틀은 '경성 남대문'이며 그 설명은 "원래 양쪽에 성벽이 있고 중앙의 굴로 왕래했던 것으로
동물의 분뇨가 길에 넘쳐나 발을 디딜 곳이 없었으나 지금은 성벽을 허물고 따로 도로를 내서
이와 같이 멋지게 보존하고 있다"라고 했다 ▒▒☞[출처]충청일보
상가들을 철거하고 공원과 가로등을 설치하였다
일제 강점기때
↑출처 중앙일보
일제시대 숭례문의 모습이 담긴 미공개 유리건판 사진이 공개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은 2007년12월28일부터 2008년2월10일까지 개최할 예정이던
'宮-국립중앙박물관소장 유리건판 궁궐사진'전을 3월2일까지 연장하면서,
미공개 숭례문 사진 3장도 추가 전시했다 ▒▒☞[출처]동아일보
1935년
남대문에 결려있는 '미해군을 환영합니다.'라는 플래카드가 인상적입니다.
1951년 3월 20일, 한국전쟁 중 두 차례나 공산세력에게 수도를 점령당하는 바람에 서울의 상징인
숭례문도 어쩔 수 없이 전화(戰禍)를 입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모양은 간직한 채 남아 있었습니다.
당시 서울에 떨어진 폭탄의 양도 엄청난 양이었을텐데 하게 제 자리를 지킨 남대문이
우리민족의 정신을 상징하는 듯 합니다
서울 시내도 전 년도에 비해 다소 안정을 찾은 듯 합니다.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당시 시민의 발이었던 전차가 다시 운행되고 숭례문 옆 정거장에서 손님을 태우고 있습니다.
차량번호 214 노량진행 전차이군요. 반대편 379호는 왕십리 방면일거라 생각됩니다.
또는 청량리, 돈암동일수도...
2003년 일제가 1907년에 숭례문을 도로속에 고립 및 헐어버린
숭례문 좌우의 성곽을 10m씩 복원하였고
그 후 2005년 5월 27일에는 숭례문 주변에 광장을 조성 단장하기에 이른다.
2006년 3월 3일부로 중앙통로를 시민들에게 개방 일반인 출입이 가능하게 되었다.
생각은 좋았는데 이벤트만 강하고 관리는 나몰라라 하는 官
개방후의 숭례문 모습
2006년 12월 25일
2007년 모습
양녕대군이 쓴 숭례문(崇禮門)의 현판
바로 위의 현판주변의 단청 모습과 다른 색조로 단청한모습이군요.
2007년 2월
207년 9월25일
2007년 10월
2007년 11월
2008년1월10일 눈오는 아침,
이사진이 숭례문의 마지막 설경일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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