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정치권에 따르면 여야 지도부는 총선과 대선에서 부각될 ‘시대정신’으로 복지, 빈부격차 축소, 불균형완화 등을 들고 있다. 새누리당은 비박(비박근혜)계로 분류되는 유승민 원내대표 체제가 들어서자마자 박근혜정부가 추구해온 ‘증세없는 복지’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등 경제정책 전반에 대해 차별화된 색깔을 드러냈다.
유 원내대표는 취임 직후 “증세를 한다면 당연히 가진자한테 세금을 더 부과해야 한다. 세금을 언제, 어떻게 올릴지는 사회적정의, 형평성을 충분히 감안해 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도 “법인세 인상이 성역이 아니다”고 밝히는 등 연일 강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동안 박근혜 대통령이 고수해온 ‘줄푸세’ 원칙에서 벗어나 ‘복지 지출 확대를 위한 적정한 조세 부담 논의’ 등 기존과 다른 다양한 담론에 대한 논의에 나선 것.
새정치민주연합의 새 지도부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 경선 레이스가 오는 8일 대의원 현장투표로 막을 내린다. 당원과 국민은 아름다운 경쟁과 축제 분위기를 요구했지만, 결과적으로 포연만 자욱이 남긴 채 마무리되는 분위기다. 누가 당 대표가 되더라도 새 지도부는 전대 후유증 치료와 함께 4월 보궐선거 ‘벼락치기’라는 과제를 안고 출발하게 됐다.
◇흥행·감동 없고 논란과 네거티브만 남아=이번 전당대회는 이른바 ‘빅3’(문재인 박지원 정세균 의원)간 승부로 예상되면서 시작 전부터 흥행요소가 반감된 채 출발했다. 지난해 12월 17일 비상대책위원이었던 세 의원이 비대위원직을 동반사퇴하자, 현역의원 30명이 불출마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여는 등 당내에서는 출마 반대 요구가 쏟아졌다. 그러나 문·박 의원이 출마의지를 굽히지 않으면서 당 대표 경선은 일찌감치 양강 구도로 정리됐다.
논란은 새해 첫날부터 시작됐다. 박 의원이 먼저 “당명이 너무 길고 부르기 어렵다”며 ‘당명 변경’을 시사하자, 문 의원도 ‘새정치민주당’으로의 변경을 제안했다. 이어 전병헌 의원 등 최고위원 후보들도 당명 변경 주장에 가세했다. 그러자 새정치연합의 공동창업주인 안철수 전 대표가 즉각 “당명 때문에 우리 당이 집권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발끈했다. 이에 후보들이 꼬리를 내리며 당명 변경 논란은 일단락 됐다. 지난달 26일에는 문 의원의 ‘호남 총리’ 발언이 지역주의 조장 논란으로 이어졌다. 박 의원과 이 의원은 “계파주의도 모자라 지역주의까지 선거에 이용한다”며 문 의원을 거세게 몰아붙였다.
문·박 의원은 지난달 말 불거진 ‘룰 변경 논란’에서 격돌했다. 일반당원과 국민 여론조사에서 ‘지지후보 없음’ 항목을 무효표로 볼 것인지를 놓고 서로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했던 것. 박 의원은 친노(친노무현) 진영을 향해 “선거 하루 전에 룰을 바꾸는 비열한 집단”이라고 거친 말을 내뱉었고, 문 의원은 “잘못된 것을 바로잡았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결국 전당대회준비위원회가 문 의원 측의 손을 들어줬지만 여진은 선거 막판까지 가라앉지 않았다.
◇상처는 깊고 해야 할 일은 산더미=당 안팎에서는 벌써부터 “누가 당 대표가 되도 안정적인 당 운영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따라 새 지도부가 가장 먼저 해야 할 과제는 경선 기간 빚어진 후유증을 치료하고, 계파갈등을 치유하는 일이다. TV토론회에서 서로를 향해 ‘저질’이라고 쏘아붙일 정도로 감정적인 상처를 주고받은 데다 ‘친노 대 비노(비노무현)’의 프레임에서 촉발된 갈등이 자칫 분당의 위기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코앞에 닥친 4월 보궐선거 준비도 부담스럽다. 옛 통합진보당의 해산으로 인해 치러지는 선거인만큼 패배할 경우 시작부터 당권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당해산으로 의석을 잃은 옛 통진당 소속 의원들이 이미 출마를 선언했고, 진보진영 신당 창당을 준비 중인 국민모임도 후보를 내기로 해 야권 표 분산 가능성도 매우 높다. 또 패배를 우려한 시민·사회단체의 야권연대 요구도 매우 거세질 수 있어 새 지도부가 이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도 일종의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본선을 이틀 남긴 6일 세 후보는 모두 대의원 표심 공략 총력을 기울였다. 문·박 의원 측은 저마다 자신이 ‘박빙 우세’라는 판세를 내놓고 있다. 일반 당원과 국민 여론조사는 문 의원이, 권리당원은 박 의원이 우세인 가운데 대의원은 ‘박빙 혼전’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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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에서 30대, 40대는 ‘얼라’ 취급을 받는다. 좋게 말해 실무자급이다. 지난 총선에서 청년대표라며 소수를 발탁했지만, 한국의 늙은 정치에서 이들의 존재감은 없다. 요즘 새정치민주연합 전당대회에서 50대 후보가 세대교체를 들고 나왔지만 유럽 기준으로 한다면 세대교체당해야 할 나이다.
파블로 이글레시아스는 말총머리의 37살 청년이다. 14살 중학생 때 스페인 공산당 청년당원으로 활동했던 그는 2011년 ‘분노하라’ 시위를 주도한 계기로 좌파 정당 포데모스를 창당했다. 포데모스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1위를 기록, 연말 총선 때 승리가 예상되고 있다. 마테오 렌치는 21살에 이탈리아 인민당에 가입했고, 24살에 피렌체 시의 비서, 29살에 피렌체 시의회 의장, 34살에 피렌체 시장이 되었다. 38살에 민주당 대표가 된 뒤 이듬해 총리가 되었다. 알렉시스 치프라스는 고등학생 때부터 공산당 청년연맹에서 활동했다. 25살 때 좌파연합당의 청년조직을 이끌었으며 32살에는 아테네 시장 선거에 출마해 3위를 기록했다. 다음해 33살에 ‘시리자’ 당대표에 올라 지난 1월 그리스 총리가 됐다. 올해 41살이다.
샤를 미셸은 16살 때 정당활동을 시작했다. 21살에 주의원, 25살에 지방정부 장관, 30살에 자유당 대변인, 32살에 개발협력 장관, 35살에 당대표를 했다. 38살인 지난해 10월 벨기에 총리가 됐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22살에 영국 보수당 정책연구소 특별보좌관으로 정치를 시작했다. 31살 때 총선에 나섰다. 30대에 예비내각 교육부 장관, 하원 부의장, 부당수, 당수를 지냈다. 2010년 총리로 선출될 때는 43살이었다.
유럽에서는 중·고등학생 때부터 정치활동을 한다. 20대에 이미 선출직에 오르고, 당직을 맡으며 30대면 당 대표를 넘본다. 나이는 젊지만 어릴 때부터 정치활동을 통해 갈등을 조직하고 타협하며 문제를 해결해 본 경험이 풍부하다. 그래서 40대 초반이라 해도 수십년의 정치경륜을 자랑한다. 반면 한국에서 정치는 사회에서 일정한 지위와 경력을 쌓은 뒤 진출하는 황혼의 잔치다. 특정 분야 전문성과 지식·경험이 많고 그 때문에 늙기는 했지만 정치 초년생에 지나지 않는다. 이게 한국 정치의 문제다.
<이대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