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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급이 3급 되려면 평균 33년인데…", 공무원들 "살아..
사회

"9급이 3급 되려면 평균 33년인데…", 공무원들 "살아온 세월이 허망"

김현태 기자 입력 2016/11/02 08:43

대한민국이 ‘최순실 쇼크’ ‘순실증’을 앓고 있다. ‘뭐 하러 열심히 사나’라는 말 한마디에 집단 감염됐다. 허탈감과 분노는 빠르게 번지고 있다. 정치경력도, 대단한 지식도 없는 일반인이 정부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비선실세’였다는 의혹이 점차 사실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원 최모(26·여)씨는 “일제 강점기에 살았던 우리 선조들의 심정이 이랬을까 싶다. 나라를 빼앗긴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어 속상하다”고 말했다. 전형적인 ‘정치 냉담자’였던 회사원 김모(31)씨는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를 통해 최순실씨의 존재를 인정하는 장면을 보고 충격에 빠졌다”고 했다.

여기에다 ‘최순실 일가’의 재산이 수천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박탈감과 좌절감이 더해지고 있다. 지난 31일 검찰에 소환된 최씨가 신고 있던 신발, 들고 있던 가방은 하루 종일 온라인과 SNS를 달궜다.

최순실(60)씨의 측근인 30대들이 청와대 2~4급으로 일해온 것이 알려지면서 공직 사회와 공시생(공무원 시험 준비생)들이 술렁이고 있다. 최씨 측근들의 특혜 채용 의혹은 최씨의 딸 정유라(20)씨의 이화여대 부정 입학 의혹과 겹쳐 한국 사회의 불공정성 논란을 확대시키고 있다.

최씨 측근 30대들이 청와대 국장·과장급

'벼락출세' 의혹을 받는 최씨의 측근은 현재까지 알려진 것만 3명이다. 청와대 뉴미디어비서관실 선임행정관(2급)인 김한수(39)씨는 지난 2013년 2월 박근혜 정부 출범과 함께 3급으로 청와대에 들어왔다. 최근 2급으로 진급한 김씨는 최씨 국정 농단의 결정적 증거가 된 태블릿PC를 개통해줬다는 혐의로 지난 29일 검찰 조사를 받았다.

배우 전지현씨 등의 개인 헬스 트레이너로 알려진 윤전추(여·36)씨도 김씨와 같은 시기에 청와대 제2부속실 3급 행정관으로 채용됐다. 3급은 부이사관으로 중앙 부처 국장급이다. '역대 최연소' 3급 행정관으로 알려진 윤씨는 청와대 입성 전에 최씨가 VIP 회원으로 다녔던 서울의 한 특급 호텔 피트니스클럽의 헬스 트레이너였다. TV조선이 입수해 공개한 '대통령 의상 샘플실' 영상 속에서 최씨의 비서 역할을 한 인물이 바로 윤씨다.


 ▲ 박원순 시장이 올린 어느 초등생 시험지 -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31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한 초등학생의 시험지 사진. 국가 살림을 위한 돈을 어디에, 어떻게 나눠 쓸지 계획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문제에 ‘최순실’이라는 오답(정답은 예산)이 적혀 있다. 이 사진의 진위(眞僞)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박원순 서울시장 인스타스램


같은 영상에서 자신의 셔츠로 휴대전화 액정을 깨끗이 닦아 최씨에게 건넨 이영선(37)씨는 청와대 경호실 4급(서기관) 행정관이다. 유도 선수 출신인 그는 박 대통령 후보 시절 경호원을 하다 2013년 청와대에 들어왔다. 원래 제2부속실 소속이었지만 지난해 경호실로 옮겼다. 이씨와 윤씨도 지난 29일과 31일 각각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9급 공무원이 3급까지 올라가려면 보통 33년을 근무해야 한다. 행정고시 합격 후 5급으로 시작해도 20년 넘게 걸린다. 법무부 김모(30) 사무관은 "죽자 살자 5년 공부해서 겨우 5급 공무원이 됐는데, 공직 경험이 전무한 30대가 정권 실세 측근이라는 이유로 3급을 달았다"며 "좌절을 넘어 분노를 느낀다"고 말했다. 경찰청 소속 A 총경은 "20년 넘게 가정도 돌보지 못하고 죽도록 일만 하고 살아온 내 지난 세월이 허망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서울 노량진에서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박모(여·25)씨는 "우리 사회에서는 노력하면 된다고 믿어왔는데, 이번 사태를 보니 내가 헛된 꿈을 꾸고 있었다"며 "'빽'이 능력보다 중요한 사회는 정상이 아니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공시생은 26만명 수준이다.

최순실 게이트 풍자시와 게임도 봇물

일부 대학생은 페이스북 익명 게시판에 최씨의 국정 농단 사태를 풍자하는 시와 소설을 올리고 있다. 연세대 페이스북에는 지난 27일 '공주전'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스물셋 되던 해 어머니를 잃은 공주에게 최씨 성(姓)을 가진 무당이 "돌아가신 중전마마에게 빙의하는 미천한 재주를 보여 드리겠다"며 접근하는 내용을 고전소설 문체로 썼다. 31일 오후 고려대 페이스북에는 '박공주헌정시(朴公主獻呈詩)'라는 한시(漢詩) 형식의 글이 올라왔다. 한자로 쓰인 이 글을 독음(讀音)해 보면 "근혜가결국 해내시어타. 나라골이참 잘도라간다 …(중략)… 대한민국은 제정사회다"로 읽힌다.

최순실 게이트를 풍자하는 휴대전화 게임들도 등장했다. '순실이 빨리와'라는 게임은 최씨로 보이는 캐릭터가 말을 타고 수갑 등 장애물을 피하는 내용이다. 이 게임은 지난 28일 공개돼 이틀 만에 5000건 이상 다운로드됐다. 한 대학 IT 동아리가 만든 '최순실 게이트'란 게임은 이용자가 대통령의 연설문을 완성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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