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광주시 북구 망월동 5·18 구 묘역에 5일 들머리에 고 백남기 농민을 기리는 펼침막들이 걸려 있었다. 6일 오후 평생을 생명과 평화, 민주화를 위해 헌신해 온 백남기 농민은 이 묘역에 안장된다. 지난 2일 광주시는 백남기 농민의 주검을 5·18 구 묘역에 안장하도록 허가했다. 광주시는 백남기 농민의 유족이 구 묘역 안장을 요청하자 관련자 회의를 열어 안장 허가를 결정했다. 일제강점기 피해자문제 해결을 촉구했던 고 최현열(1935~2015) 묘지 백남기 농민의 안장 묘지는 바로 옆이다. 5·18민주화운동 광주시는 관련자 보상심의위원회는 백씨 유족이 신청한 5·18관련 보상자 인정 여부를 심의 중이다.
망월동 구 묘역은 5·18항쟁 직후 ‘폭도’로 몰린 희생자들이 처음 묻혔던 19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됐던 고 이한열 열사도 이 곳에 안장 시립묘지다. 5·18 유공자들이 1997년 5·18민주화운동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고 구 묘역 인근 운정동에 이장된다. 이후 이 곳은 5·18 구묘역으로 불렸다. 이 곳엔 고 이한열·강경대 등 민주화운동 관련자 46명이 묻혀 있어 민족·민주열사 묘지로 불린다. 5·18 구 묘역엔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을 지낸 고 정광훈(1939~2011)도 안장돼 있다. 정광훈 의장의 옆 자리엔 고 김남주 시인이 묻혀 있다.
그리고 6일 백남기 농민의 유해는 ‘전두환 비석’을 밟고 지나간다. 1982년 전남 담양군 마을을 방문한 전두환 전 대통령이 세운 비를 광주·전남 민주동지회가 1989년 부숴 구 묘역 들머리에 묻어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도록 했다. 5·18 구 묘역 들머리에 있는 ‘전두환 기념비’. 민주열사들이 묻혀 있는 구 묘역에 들어가는 이들은 모두 이 비를 밟고 지나간다.
백남기 농민은 1984년 전두환 정권이 수매를 중단한 뒤 우리밀이 사라져가자 후배 농민들과 우리밀 종자를 찾아 전국을 돌며 2년 동안 모은 이름 모를 종자 24㎏을 다시 각 지역으로 내보냈다. 백남기 농민도 1989년 보성군의 ‘우리밀 1호 농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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