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관심을 안갖은 부산에서 3인조 강도가 검거되었는데, 삼례 나라슈퍼 강도 사건이다. 1999년 2월 6일 찬바람이 불던 한겨울이었다. 항상 문을 열어 놓고 살던 인심 좋은 동네 작은 슈퍼에 강도가 들었다. 인기척에 깬 엄마 최성자씨는 불행하게도 강도와 마주해야했다.
“소리 지르지마. 새끼와 서방 다 죽여버릴테니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깨지 않고 곤히 잠들어있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범인은 차분한 경상도 말씨를 썼다. 그 때 그 목소리를 17년이 지난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엄마는 범인에게 돈이 될 만한 물건의 위치를 직접 알려줬다. 제발 살려달라는 의미였다. 다시 적막이 찾아오자 다른 방에 계셨을 시어머니가 떠올랐다. 이미 숨이 끊어진 상태였다. 제압 과정에서 노쇠한 노파는 숨지고 말았다. 비극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범인이 검거됐다. 그런데 수상했다. 3명 모두 지적장애인이었고 경상도 말씨도 아니었다. 이상한 것은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성자씨가 잘못 말한 진술이 그대로 피의자 진술로 둔갑되어 있기도 했다. 성자씨는 단언코 이들은 범인이 아니라 확신했다.
허위자백이었다.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사람의 진술서인데도 맞춤법이 기가 막히게 딱 들어맞아 있었다. 하도 두들겨 맞아 너무 아파 허위자백을 할 수 밖에 없었노라 울먹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수감됐다.
같은 해 11월, 부산에서 이상한 낌새가 새어나왔다. 부산에서 3인조 강도가 검거되었는데, 삼례 나라슈퍼 강도 사건의 진범이라고 자백했다고 했다. 혹시나 해 성자씨는 목소리를 들어봤다. 소름이 끼쳤다. 범인이 확실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백을 했는데도 판결을 결코 번복할 생각이 없어보였다. 잘못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뜻일까? 판단 사유가 우스웠다. “진술이 오락가락하기 때문” 그들은 정말 진범이 아니었을까?
이 사건을 박준영 변호사가 맡았다. 아는 사람은 모두 알정도로 박 변호사는 ‘이런 사건’만 찾아다닌다. 그러다 보니 수입이 있을 리 만무했다. 변호사라는 사람이 파산을 했단다. 그에겐 정말 남은 돈이 없었다.
그는 박상규 기자와 손을 잡았다. 국민에게 도움을 요청해보기로 했다. 1억을 목표로 하는 스토리펀딩은 지금, 모금액이 5억을 넘어섰다. 대한민국은 알게 모르게 박 변호사를 응원하고 있었다.
박 변호사의 의뢰인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가난하고, 못 배웠으며, 지적장애가 있거나, 자기표현을 잘 못하는, 게다가 살인누명까지 쓴 사람들이다. 둘은 밤낮없이 뛰어다녔다. 증인을 확보했고 증거를 수집했으며 진범을 설득했다.
진범의 전화번호를 받아들고 며칠 밤을 지새우며 번호를 눌렀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경찰이 조사했던 부산 3인조는 진범이 맞았다. 당시 판결은 진범조차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수사과정에서의 위법행위을 찾아 계속해 법원 문을 두드렸다. 이번 사건은 유죄 확정 판결 및 한 차례 재심 기각 결정까지 나온 사건이었기에 어찌 보면 말도 안 되는 과정이었다. 난다 긴다 하는 판사의 오판을 인정해야하기 때문이다.
마침내 재심이 받아들여졌고, 삼례 3인조 강도의 무죄가 선고되었다. 무려 17년만이었다. 순간 이곳저곳에서 울음 섞인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윽고 검찰도 항소를 포기하면서 무죄가 확정되었다. 기적 같았다.
박 기자와 박 변호사는 진범 이씨와 함께 슈퍼 할머니의 묘에 다녀왔다. 이씨는 절을 하며 한동안 일어서지 못했다. 왜 그렇게 까지 하냐는 물음에 박준영 변호사는 우리사회에 진심으로 사죄하고 반성하는 모습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진범도 이렇게 반성하고 사죄하는 마당에 살인범을 조작한 사법당국은 무엇을 하고 있냐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고.
무죄판결 후 모두 변호사님 덕이라는 유족의 감사에 “나는 한 게 없다”며 손 사레를 쳤다. 사실 그 말이 맞다. 당연한 일을 제자리로 돌려놓은 것뿐.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은 벌을 받지 않는 순리조차 지키지 못한 사회에 대한 비수였을까. 앞으로 더 힘든 여정을 걷게 될 수도 있지만 그가 도중에 멈추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진실은 승리합니다. 계속 진실을 위해 싸우겠습니다”-박상규 기자
“법은 약자를 보호해야 합니다. 그 일을 계속 하겠습니다”-박준영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