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사태’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예고되면서 한국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에 대한 검찰 조사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내란과 외환의 죄를 제외하고는 형사소추를 받지 않는다는 헌법 규정에 따라 박 대통령이 법의 처벌을 받지는 않는다. 하지만 하야를 외치는 국민의 요구에 따라 탄핵 대상이 될 수는 있다.
각종 불법과 비리로 법의 심판대에 올랐던 외국 정상 가운데도 험하게 물러난 경우가 적지 않다. 끝까지 무죄를 주장하다 탄핵을 당한 대통령이 있는가 하면 검찰이 성역 없는 수사에 나서면서 법의 심판을 받은 경우도 없지 않다. 대체로 여론을 거스른 비리 지도자들의 말로가 그리 순탄치는 않았다.
버티다 ‘험한 꼴’ 당한 비리 지도자
각국 정상 중 비리 혐의에 대한 검찰 수사에 끝까지 저항하며 정치권력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대표적 인물이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다. 1994년부터 2011년까지 총리를 세 번 역임하는 동안 탈세와 뇌물, 직권남용, 부패, 미성년 성관계 등의 혐의로 무려 30건이 넘는 재판을 받았지만 번번이 빠져나갔다. 2011년에는 총리와 내각 각료의 재판출석 의무를 18개월 동안 자동 면제해주는 법안을 제정하는 현직 총리라는 막강한 정치권력을 악용해 검찰의 칼날을 무력화 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1년 11월 총리에서 물러난 후 재개된 검찰의 전방위 수사로 그도 결국 파국을 맞았다. 이탈리아 법원은 2013년 8월 탈세 혐의로 징역 4년과 2년간의 공직 활동을 금지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탈리아 상원은 그해 11월 그의 상원의원직을 박탈했다.
비리 혐의에 대해 끝까지 무죄를 주장하다 탄핵을 받고 권좌에서 쫓겨난 정상도 있다. 브라질 상원은 올 9월 당시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을 통과시켰다. 브라질 군부 독재정권에 맞선 민주투사인 호세프는 브라질 사상 첫 여성대통령이 돼 재선까지 성공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브라질 국영석유기업 페트로브라스의 대규모 정경유착 비리에 연루된 데다 2014년 재선 당시 경제 적자를 숨기기 위해 브라질 회계를 조작했다는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호세프는 “야당의 정치탄압” “민주주의를 위해 탄핵을 막아달라” 등을 호소하며 관련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지만 소용없었다. 미셰우 테메르 부통령이 브라질 대통령으로 정식 취임한 가운데 호세프는 여전히 정계복귀를 노리며 탄핵을 비난하는 반(反) 정부 시위를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다는 관측도 적지 않다.
검찰의 성역 없는 수사에 자진사퇴도
검찰이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현직 대통령의 비리 수사에 박차를 가하면서 ‘하야’로 이어진 경우도 많았다. 지난해 9월 당시 오토 페레스 몰리나 과테말라 대통령은 세관뇌물 비리로 체포영장이 발부되자 의회에 사임서를 제출하고 법원에 자진 출두했다. 과테말라 검찰이 세관 비리를 수개월 간 조사한 끝에 2014년 10월 본격적으로 대통령을 정조준 하면서 벌어진 결과다. 검찰은 수입업체의 세금을 깎아주고 대가로 370만 달러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수십 명의 각료와 공무원을 체포한 뒤 대통령이 그 정점에 있다고 보고, 수사를 위해 대통령의 면책특권 박탈을 의회에 전격 요청했다. 과테말라 역사상 현직대통령의 면책특권이 박탈당하기는 처음이었다. 몰리나는 이후 구속됐고 돈세탁 등 추가 부패 혐의가 드러나면서 과테말라 법원은 올 7월 검찰에 수사를 명령한 상황이다.
2012년 크리스티안 불프 당시 독일 대통령도 비슷한 최후를 맞았다. 불프는 독일 니더작센 주지사 시절 자동차회사 폴크스바겐과 포르쉐의 파산 구명을 위한 정책 편의를 제공한 대가로 해당 기업으로부터 휴가비 지원과 별장 제공, 저금리 대출 등의 특혜를 받은 의혹이 제기됐다. 독일 언론과 시민들의 거센 반발에도 불프가 아랑곳하지 않고 대통령직을 계속 수행하려 하자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를 촉구하는 여론이 비등해졌다. 결국 독일 검찰은 2012년 2월 16일 독일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의 면책특권 취소를 연방하원에 공식 요청했다. 불프는 바로 다음날인 17일 오전 11시 대통령직 사임을 공식 발표했다.
자백이나 면책특권으로 구사일생하기도
탄핵 위기에서 자백을 통해 용서를 구한 정상도 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재임시절인 1998년 1월 ‘르윈스키 섹스 스캔들’이 불거지면서 탄핵 위기에 몰렸다. 클린턴이 르윈스키에게 성관계를 부인하는 위증을 교사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특검 수사가 본격화됐다. 특검팀은 1998년 9월 수사 결과 클린턴이 위증과 사법방해, 권력남용 등 11개 항의 탄핵사유에 해당한다는 특별보고서를 하원에 제출했다. 클린턴은 이에 대국민담화를 통해 르윈스키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전적으로 시인하고 국민에게 사과했다. 부정적이었던 여론이 클린턴의 진실 어린 사과로 반전되면서 클린턴의 민주당은 그 해 11월 3일 실시된 상ㆍ하원 중간선거에서 예상을 뒤엎고 승리했고, 상원에서 클린턴의 탄핵안이 최종 부결되면서 클린턴은 임기를 채울 수 있었다.
자크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은 면책특권으로 현직에서 수사를 회피한 경우다. 파리 시장 시절 측근 인사들을 파리시 직원으로 허위 등록해 공금을 유용한 혐의가 드러나 현직 대통령 신분으로 검찰 조사에 직면했다. 하지만 시라크는 재임 기간인 12년 동안 면책특권을 누리다가 퇴임 후 수사를 받았고 2011년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