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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김덕권 칼럼] 버리고 떠날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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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김덕권 칼럼] 버리고 떠날 인생

김덕권 기자 duksan4037@daum.net 입력 2016/11/20 21:19

▲ 덕산 김덕권 선생, 원불교 문인협회 회장버리고 떠날 인생  
 
우리네 인생이 집착하는 마음이 강해지면 강해지게 될수록 본인만 괴롭습니다. 그래서 불교에서 윤회(輪廻)하는 것은 중생들의 집착 때문이라고 합니다. 태어나고 죽음을 거듭하는 것이 괴로움의 근본이지요. 그런 집착을 가리켜 갈애(渴愛)라고도 말합니다.  
 
즉, 타는 듯한 목마름이 애착(愛着) 탐착(貪着) 원 착(怨着)입니다. 이걸 삼독심(三毒心)이라 하지요. 이 집착을 여의지 못하기 때문에 인생이 괴로운 것입니다. 집착하는 마음만 버리려면 우리의 인생이 물처럼 바람처럼 자유롭게 됩니다. 그렇게 다 내려놓아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가 않은 것이지요. 사랑은 좋아해서 내려놓기 어렵고, 미움 또한 괘씸해서 내려놓을 수 없으니 그래서 세상이 고통의 바다인 것입니다. 
 
며칠 전 우리 부부가 점심을 먹으면서 지금 살고 있는 집에 대해서 말을 나눴습니다. 지금 우리 두 식구가 사는 <덕산재(德山齋)> 50평 아파트가 너무 커서 고통이 심합니다. 청소하기도 힘들고, 관리비도 많이 나오고, 우리 부부의 건강이 몸을 추스르기도 어려운데 너무 벅찹니다.  
 
궁리 끝에 우리가 사는 <덕산재>는 작은 딸애가 들어와 살게 하고, 우리 부부는 한 20평 정도의 작은 아파트로 이사를 가기로 의논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역시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닙니다. 천정까지 쌓여 있는 책은 어떻게 할 것이며, 거의 매일 찾아오는 손님은 어떻게 맞을 것인지 걱정이 큽니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저 넓고 광활한 강과 평야, 산들! 이 역시 집착이 아닌가요?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생의 집착을 여의고 웃으며 저 세상으로 떠나갈 수 있겠는지 심히 우려가 됩니다.
  
<인생육연(人生六然)>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명(明)나라 학자 최선(崔銑 : 1478~1541)이 지은 ‘여섯 가지(六) 그래야 할(然)’ 것들이지요. 이대로만 살면 우리 인생에 집착은 사라지지 않을까요?  
 
첫째, 자처초연(自處超然)입니다. 
이것은 세상일에 너무 구속되지 말고 일정한 거리를 두라는 의미입니다. 사람이 세상을 산다는 것은 곧 일과 사람과 사물과 교섭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자칫하면 그것들에 얽매여서 끌려 다니기 쉽습니다. 그 까닭은 사물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이기적 욕망 때문입니다. 불가(佛家)에서에는 그릇된 전제에서 벗어나는 것이 자아에 대한 집착을 여의는 길로 보는 것입니다.

 
둘째, 처인애연(處人然)입니다.

애연(然)에서 ‘애()’자는 본래 초목이 무성하고 과일이 풍성하게 열리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천지자연의 따뜻한 온기에서 사람에 대한 부드럽고 온화한 태도를 의미하게 된 것이 아닐까요? 사람에게는 시비지심(是非之心)이 있어서 남의 단점과 불선(不善)까지 포용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도 사람을 대할 때 따뜻하고 편안하게 대하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지요.  
 
셋째, 유사참연(有事斬然)입니다.

무슨 일이건 무 자르듯이(斬) 깔끔하고 단호하게 처리를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결연(決然)이라든가 단연(斷然)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목을 벨 때(斬首)나 쓰는 참(斬) 자를 쓴 것은 참(斬)을 새롭고 참신(斬新)하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될 것 같습니다. 구태(舊態)나 습관에 빠지지 말고 항상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자세로 일을 처리하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넷째, 무사징연(無事澄然)입니다.

당면한 일이 없을 때는 고여 있는 물과 같이 맑게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채근담(菜根譚)>에 이른 바, “군자는 일이 닥치면 비로소 마음을 쓰고, 일이 지나가면 마음도 따라서 비운다(君子事來而心始現, 事去而心隨空)”고 할 때의 빈 마음이 곧 맑은 마음이 아닐까요?  
 
다섯째, 득의담연(得意澹然)입니다. 
인간이 세상사가 마음먹은 대로 잘 이루어질 때는 세상이 돈짝 만하게 보여 기고만장(氣高萬丈)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주역(周易)>에서 가장 강한 건괘(乾卦)의 괘사(卦辭)가 ‘항룡유회(亢龍有悔)’입니다. “높이(亢) 나는 용(龍)은 후회할 일(悔)이 있다(有)”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잘 나갈 때 조심하라는 뜻입니다. 
 
여섯째, 실의태연(失意泰然)입니다.

세상일이 마음 같지 않고, 좌절을 겪게 되면 자포자기(自爆自棄)하거나 불평불만을 일삼게 되기 쉽습니다. 쓸데없이 자기를 높이는 것도 문제지만 과도하게 자신을 낮추는 것도 경계해야 할 일입니다. 사실 절망의 구렁텅이 속에서 태연자약(泰然自若)하기란 어렵습니다. 매사가 뜻과 같지 안 된다고 앙앙불락(怏怏不樂)할 수는 없습니다. 오는 업(業) 달게 받고 다시 갚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태연하게 마음을 가지면 일도 자연 잘 되기 마련입니다. 
 
어떻습니까? 이 <인생육연>만 잘 실행하면 우리가 낭패를 볼 일은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며 살아도 너무 짧은 시간입니다. 베풀고 또 베풀어도 남는 것들인데 웬 욕심으로 그 무거운 짐만 지고 가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때가 되면 다 버리고 갈 인생입니다. 무거운 물질의 짐도, 화려한 명예의 옷도, 천하를 떨게 하는 권력도 다 버려야만 하는데 왜 그리도 사람들이 악다구니를 쓰고 살아야 하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습니다.  
 
더 주고 싶고, 보고 또 보고, 따뜻이 위로하며 살아야 하는 삶이 성공적인 인생입니다. 우리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베풀며, 더 맑고 밝고 훈훈한 세상을 만들어 가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제 애착 탐착 원착을 여의고 다 버리고 떠날 때가 가까워집니다. 이제 작은 집으로 이사가 홀가분하게 떠날 때를 맞이하고 싶습니다. 사랑한 만큼 사랑 받고, 베푼 만큼 도움을 받습니다. 심지도 않고 거두려고만 몸부림쳤던 그 부끄러운 나날들을 여의고 이제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고마워하고,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합니다. 
 
우리는 다 길 떠날 나그네들입니다. 세상을 떠나는 사람의 가장 중요한 일은 최후의 일념을 청정히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에 나서는 이의 가장 중요한 일은 최초의 발원을 크게 세우는 일입니다. 마지막 길 더떠날 인생, 최후의 일념을 청정히 하고 내생의 서원이니 크게 세우고 가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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