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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김덕권 칼럼] 지혜(智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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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김덕권 칼럼] 지혜(智慧)

김덕권 기자 duksan4037@daum.net 입력 2016/11/24 17:09

▲ 덕산 김덕권 선생, 원불교 문인협회 회장지혜(智慧)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면서 무엇이 가장 소중할까요? 그건 아마도 지혜(智慧)일 것입니다. 복(福)도 다하면 타락(墮落)한다 하였습니다. 지식(知識)도 오래 되고 녹 쓸면 없어집니다. 그러나 지혜는 영원히 살아 있습니다. 지혜란 사물의 이치나 상황을 제대로 깨닫고 그것에 현명하게 대처할 방도를 생각해 내는 정신의 능력입니다. 
 
그러면 지혜는 선천적으로 타고 나는 것일까요 아니면 어디서 배워야 하는 것일까요? 어떻게 하면 지혜를 많이 얻을 수 있고 언제 어디서라도 지혜롭게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요? 그리고 지혜는 머리 좋은 사람만이 낼 수 있는 것인가요? 지혜는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지혜를 가르쳐 주는 곳도 없습니다. 다만 세상의 지식이나 다른 여러 가지의 다른 내용들을 배우거나 경험하거나 체득할 때 지혜가 하나 둘씩 자신에게 쌓여가는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손빈(孫 : 생몰연대 미상))은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의 전략가(戰略家)입니다. 병가(兵家)의 대표적 인물 중에 한 명이죠. 손무(孫武)의 손자이고, 손무와 같이 손자(孫子)로 불립니다. ‘손빈병법(孫兵法)’은 바로 이 손빈이 저작한 책이죠. 한 번은 제(濟)나라의 ‘위왕’이 여러 대신들과 함께 길을 가다 어느 산 밑에 도착했습니다. 
 
위왕은 한참 산봉우리를 바라보다가 대신들을 둘러보며 말했습니다. “누가 나를 저 산봉우리에 올릴 수 있겠느냐? 너희들 가운데 그런 재주를 가진 자가 있으면 큰 상을 내리겠다.” 위왕의 말을 들은 신하들은 난처하기 짝이 없었지요. 어떻게 왕을 산봉우리로 올릴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신하들은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이었죠. 
 
그러자 위왕은 신하들 사이에 서있는 손빈을 지목하며 물었습니다. 손빈은 난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습니다. “저는 임금님을 산 밑에서 산봉우리로 올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임금님이 만약 산봉우리에 계신다면 산 밑으로 내릴 수는 있습니다.” “그게 정말이냐?” 위왕은 ‘손빈이 아래에서 위로 오릴 수는 없다고 하면서 어떻게 위에서 아래로 내릴 수 있다는 말이지?’하는 의구심이 들면서도 그 방법이 너무 궁금해서 산봉우리로 향해 걸어갔지요.  
 
한참을 걸어 드디어 왕과 신하들이 모두 산봉우리에 이르자 손빈은 임금의 앞으로 나가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습니다. “임금님! 저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는 이미 전하를 산봉우리로 올려놓았습니다.” 그제야 위왕은 손빈이 자신을 깨우쳐 주기 위해 지혜를 발휘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럼 지혜는 어떻게 얻는 것인지요? 배움을 추구하는 한 젊은이가 어느 날 현자(賢者)에게 찾아가 물었습니다. “선생님!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제가 어떻게 하면 되나요?” 현자는 답변을 주지 않았죠. 젊은이는 계속해서 같은 질문을 던졌지만 현자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젊은이가 다시 현자에게 찾아와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현자는 답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날, 젊은이가 찾아와 또 물었습니다. “선생님,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제가 어떻게 해야 하나요?” 
 
현자는 비로소 자리에서 일어나 근처에 있는 강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현자는 강 속으로 걸어가며 젊은이에게 자신을 따라오라고 손짓을 했지요. 충분한 수심(水深)에 이르자, 현자는 갑자기 젊은이의 어깨를 잡고 그의 머리를 물속으로 처박았습니다. 젊은이가 발버둥을 쳤지만 현자는 그를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얼마 정도 시간이 경과된 후에 현자는 젊은이를 물속에서 꺼내줬습니다.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젊은이에게 현자가 물었습니다. 
 
“이 보게 젊은이! 물속에 있었을 때 자네가 가장 바랐던 것이 뭔가?” 젊은이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습니다. “공기요! 저는 공기를 바랬습니다!” “부(富)와 쾌락, 권력, 그리고 사랑은? 그런 것들을 갖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나?” 젊은이가 즉각적으로 대답했습니다. “아뇨! 제가 원했던 것은 오로지 공기였습니다! 공기에 대해서만 생각했습니다!” 
 
현자가 대답했지요. “자네가 지혜를 얻고 싶다면, 물속에서 공기를 원했던 것만큼 지혜를 갈구(渴求)해야 한다네. 삶의 다른 목표들을 모두 제쳐두고서라도 지혜를 얻기 위해 싸워야 하지.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내가 추구하는 유일한 것이 되어야 한다네. 그 정도의 열정으로 지혜를 구한다면, 반드시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네.” 
 
아셨습니까? 지혜를 구하려면 생사도 불고(不顧)하고 수행하여 깨달음을 얻지 않으면 지혜는 얻을 수 없습니다. 그 옛날 서가모니 부처님은 설산(雪山)에 들어가 6년간 죽음도 불사하는 수행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원불교 소태산(少太山) 부처님께서도 온 몸에 적()이 들고 식음(食飮)도 잊은 대 적공(大積功) 끝에 우주의 진리를 대각(大覺)하신 것입니다. 
 
그럼 그 지혜 얻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 요지(要旨)만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정신수양(精神修養)입니다.
 
정신이라 함은 마음이 두렷하고 고요하여 분별 심(分別心)과 주착 심(住着心)이 없는 경지를 이름입니다. 그리고 수양은 안으로 분별 심과 주착 심을 없이 하며 밖으로 산란(散亂)하게 하는 경계(境界)에 끌리지 아니하여 두렷하고 고요한 정신을 양성하는 수행법이지요. 
 
둘째, 사라연구(事理硏究)입니다.
 
사(事)라 함은 인간의 시 · 비 · 이 · 해(是非利害)를 이름입니다. 그리고 이(理)라 함은 천조(天造)의 대소유무(大小有無)를 말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대(大)라 함은 우주만유의 본체를 이름이요, 소(小)라 함은 만상(萬象)이 형형색색(形形色色)으로 구별 되어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유무(有無)라 함은 천지의 춘하추동 사시순환(四時循環)과 풍 · 운· 우 · 로 · 상 · 설(風雲雨露霜雪)과 만물의 생로병사(生老病死)와 흥망성쇠(興亡盛衰)의 변하는 모양을 이름이지요. 또 연구라 함은 사리를 연마(硏磨)하고 궁구(窮究)함을 이르는 것입니다. 
 
셋째, 작업취사(作業取捨)입니다.
 
작업이라 함은 무슨 일이나 안 · 이· 비· 설· 신· 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을 작용함을 이름입니다. 그리고 취사는 정의는 취(取)하고 불의(不義)는 버리는 것을 이름이지요. 
 
어떻습니까? 대강이라도 지혜 얻는 방법을 터득하셨는지요? 이 지혜를 얻고 우주의 진리를 깨치기 위해서는 보통의 노력을 기울여서는 안 됩니다. 우리 함께 <대적공 대적공 대적공>하여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지혜를 얻어 가면 어떨 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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