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 안데레사기자] 25일 교육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철회 방침을 일방적으로 발표하면서 ‘식물 청와대’의 실상이 적나라하게 노출된 셈이다.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청와대는 이날 오후 국회에서 “국민 의견을 들어 보고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결정하겠다”는 취지로 말한 것을 언론 보도를 통해 뒤늦게 들었다고 한다.
지난 21일 오후부터 시작된 '국정교과서 폐기와 이준식 장관 사퇴 촉구' 서명에는 나흘만에 전국 학생·교사·학부모 등 9만 7천여명이 동참했다.
서명을 주도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국정교과서를 강행하는 이 장관과 현 정권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내용상의 문제 이전에 역사를 국정으로 가르치겠다는 발상 자체가 반문명적"이라고 비판했다.
26일 '200만 촛불'이 예상되는 대규모 집회에서도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요구와 함께 국정화 중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올 전망이다.
전국역사교사모임 등 480여개 교육·시민단체가 참여한 '한국사국정화저지네트워크'는 이날 5차 촛불집회에 앞서 '국정교과서 폐기를 위한 시민대행진'을 열기로 했다.
교육부가 이같은 여론을 무시한 채 국정교과서 제작을 강행한다 해도, 당장 현장검토와 배포 단계부터 일선 교육청과 교사들의 강력한 거부에 직면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지지율 4%'로 내려앉은 정권 막판에 또다른 국가적 낭비를 불러오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교육부가 '오기'를 접고 국정화 방침을 철회해야 한다는 지적에 힘이 실리고 있다.
실제로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가 '리얼미터'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성인 응답자 1004명 가운데 62.5%가 국정화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특히 성인 대학생은 4명 가운데 3명꼴인 75.5%가 반대 입장을 표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법무부에 이어 교육부도 붕괴 중인가? 교육부가 박근혜 대통령이 가장 공들인 정책 가운데 하나였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방침을 사실상 철회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면서 교육 현장이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청와대는 당혹스러운 상황에 처했다. 김현웅 법무부 장관에 이어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사표 제출 가능성까지도 거론된다. 김 장관은 청와대가 사의 철회를 설득하고 있으나 김 장관의 사퇴 의사가 강해 25일 현재까지 여의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일보>는 이날 익명을 요구한 교육부 고위 관계자가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국민 지지가 20% 밑으로 떨어진 상황에서 국정 역사 교과서를 일정대로 강행할 경우, 감당할 수 없는 교육 현장의 혼란이 예상된다"며 "국정화 강행이 아닌 다른 대안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는 말을 했다고 보도했다.
여기서 '다른 대안'은 국정 교과서 제작을 예정대로 추진하되, 국정 교과서 채택을 학교 자율에 맡기는 방안을 의미한다. 즉 국·검정 체제 혼용 방안이다. 이렇게 되면 국정 교과서는 기존 검정 교과서와 함께 '원 오브 뎀(one of them)'이 되면서 '정부가 집필한 교과서'로 취급받는다. '단일 역사 교과서를 이용한 교육'이라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의 근본 취지가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앞서 교육부 고위 관계자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지지율이 20% 밑으로 떨어졌다고 언급한 배경에는 지난 24일 발표된 리얼미터 여론 조사 결과가 있다. 이 조사에 따르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한다'는 응답은 60.4%로 나타났고, '찬성한다'는 응답은 19.9%로 나타났다.
더불어민주당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리얼미터에 의뢰해 이날 발표한 결과에 따르더라도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한다'는 의견은 62.5%, '찬성한다'는 의견은 23%로 나타났다. 올 초만해도 50%를 웃돌던 찬성 여론이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 여파로 뚝 떨어진 것이다.
이같은 보도가 나가자 교육부는 발칵 뒤집어졌다. 교육부는 "역사 교과서 현장 검토본을 계획대로 28일 국민들에게 공개할 예정"이라면서 "국정화 철회나 국·검정 체제를 혼용하는 방법 등에 대해서는 결정된 바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검정 체제 혼용이 "결정된 바 없다"고 밝혔을 뿐, 검토되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하지 못하고 있다.
이준식 장관도 이날 오후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 회의서 "현장에서 (이 교과서를) 적용할 방법을 강구하겠다"고만 말했다. 이는 국정 교과서를 전국 중·고교 6000곳에 배포한다는 기존 방침을 철회하는 안까지도 고려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교육부 내부에서도 '붕괴'가 진행되고 있다는 징후다.
박 대통령이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올 수밖에 없다"고 말하면서까지 강력하게 추진한 정책이 정면으로 뒤집힐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문화일보>는 이날 "이준식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이런 방안을 건의한 다음,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사의 표명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만약 이 장관이 국정 교과서 철회를 건의한 후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사표를 던지면, 김현웅 법무부 장관에 이어 두 번째 이탈자가 된다. 법무부와 교육부가 동시에 무너지는 것이다.
청와대는 이와 관련해 "국정 교과서는 큰 변화 없이 그대로 간다"며 "국정 교과서 철회나 혼용에 대해서는 교육부로부터 전혀 건의가 들어온 적도 없다"는 입장을 냈다. 그러나 교육부 내부 상황 등과 관련해서는 당혹스러운 표정이 읽히고 있다.
'혼이 비정상'이라는 역사 교과서, 최순실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박 대통령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정책 추진에 유독 공을 들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지난 4월 총선에서 '진박 논란' 끝에 새누리당이 참패했을 때도 국정화 추진은 강하게 밀어붙였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1일 국무회의에서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생각하면 참으로 무서운 일"이라며 국정화를 정당화했다. 같은 달 13일에는 AP 등 외신과의 인터뷰에서도 "역사 교육은 국민의 혼과 같은 것이라서 올바른 역사관과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새누리당의 총선 참패 직후인 지난 4월 26일 있었던 청와대 출입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오찬에서 "통일이 됐을 때 자유민주주의에 기반을 둔 올바른 통일이 되어야지, 지금과 같은 교과서로 배우면 정통성이 오히려 북한에 있기 때문에 북한을 위한, 북한에 의한 통일이 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같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에 대해 최순실 씨의 그림자가 아른거렸다는 의혹들은 계속 제기되고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는 이날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 회견을 열고 "최순실의 최측근인 차은택의 외삼촌 김상률 씨가 국정화 강행 당시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이었던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라며 "국정 역사교과서는 박근혜 교과서이자 최순실 교과서이며, 비정상적 권력에 의한 비정상적인 교과서"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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