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 안데레사기자] 오늘 26일, 5차 주말 촛불집회가 열린 서울 광화문광장에 시민 150만명이 운집해 ‘비선실세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책임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전국적으로 190만개의 촛불이 불타오르면서 역대 최다 인원을 기록했다. 특히 이날 촛불집회도 평화로운 축제의 한마당으로 진행되면서 성숙된 시민의식이 밝게 빛났다. 시민들은 노래와 공연을 보며 집회를 즐겼고, 곳곳에는 박 대통령과 최순실씨를 비판, 풍자하는 기발한 작품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26일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제5차 촛불집회가 열린 서울 광화문광장은 한때 암흑으로 변했다.
이날 주최 측은 오후 8시부터 ‘저항의 1분 소등’ 퍼포먼스를 펼쳤다. 주최 측은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오늘 대한민국은 암흑의 세상과 다르지 않다. 어둠 속에 있던 검은 권력자들이 줄줄이 드러나고 있다”며 취지를 설명했다. 시민들은 불이 꺼진 상태에서 “박근혜는 퇴진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집회에 참가하지 못한 시민들도 소등 퍼포먼스에 참가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소등 참가 인증샷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중국집인데 소등을 했다. 사장님 너무 멋있다”는 글과 함께 불이 꺼진 식당을 찍은 사진을 올렸다. 불이 꺼진 아파트 사진을 올린 시민들도 있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1분 소등’ 참여 인증샷 갈무리
이 시각 기준 주최 측은 130만명이 집회에 참여했으며 인원은 더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부산 10만명, 광주 5만명 등 전국에서 160만명이 집결했다고 했다. 지난 12일 사상 최대 인원이 모인 집회 규모를 뛰어넘었다.
전국에서 한 목소리, 서울 150만명 운집, 평화로운 축제 분위기
150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연대한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은 이날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박근혜 즉각 퇴진 5차 범국민행동’을 열었다.
주최 측 추산 시민 150만명(경찰 추산 27만명)이 몰려들면서 광화문광장을 비롯해 율곡로, 사직로 일대는 어둠을 밝히는 촛불로 가득 찼다. 퇴진행동은 이날 지방에서 40만명이 모였다고 밝혔다. 전국 190만명은 지난 12일 촛불집회 당시 100만명을 훌쩍 뛰어넘는 규모이며, 3주 연속 100만명을 돌파한 것이다. 전 세계 20개국 50개 지역에서도 동시에 촛불이 켜졌다.
이날 집회는 노래와 공연, 자유발언 등이 이어지면서 평화로운 축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첫눈이 내린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저마다 손에 촛불과 피켓을 들고 “박근혜는 퇴진하라” 구호를 외쳤다.
오후 6시부터 진행된 본 집회에는 양희은과 안치환, 밴드 노브레인 등 가수들이 무대에 올라 마치 콘서트장을 방불케 했다.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노래를 따라 부르며 흥겨운 축제 분위기를 즐겼다.
오후 8시에는 시민들이 1분 동안 동시에 촛불을 끄고 어둠 속에서 함성을 외치는 장관이 연출됐다. 퇴진행동은 “오늘 대한민국은 암흑의 세상과 다르지 않다. 어둠 속에 있던 검은 권력자들이 줄줄이 드러나고 있다”며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고 1분 소등 퍼포먼스 취지를 설명했다.
이후 시민들은 8개 경로를 이용해 청와대를 향한 2차 거리행진에 나섰다. 다행히 경찰과의 충돌 없이 질서 있게 평화 행진이 이어졌다. 거리행진 이후 일부 시민들은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자유발언을 하며 밤샘 일정을 이어갔다.
대학생 박수은씨(24·여)는 “매주 새로운 게 터지는데도 너무 답답하고 답이 없어서 거리에 나왔다”며 “학교에서도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많은데 동맹휴업을 한다면 반드시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생 최소연씨(23·여)는 “탄핵이든 퇴진이든 대통령이 빨리 내려오는 것이 맞다. 현실적으로 안 된다면 국정 운영을 멈춰야 한다”면서 “지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체결도 그렇고 국민의 지지가 없는 대통령이 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중학생 권성원군(15)은 “학교에서 친구들끼리도 이번 사태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눈다”며 “초등학생들이 정치를 해도 박 대통령 보다는 잘 하겠다”고 꼬집었다.
경찰은 사상 최대 인원이 집회에 참여함에 따라 총 280개 중대, 2만5000명을 서울광장과 세종대로 사거리 등 곳곳에 배치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또, 외치고,. 또, 모인,. 청와대 에워싼 ‘대통령 퇴진’ 목소리
퇴진행동은 앞서 오후 4시부터는 일명 청와대 포위 행진을 진행했다. 주최 측 추산 시민 35만명(경찰 추산 2만9000명)은 4개 경로를 이용해 행진한 뒤, 청와대 인근 창성동 정부서울청사 별관 앞과 신교동로터리, 새마을금고 광화문지점, 삼청로 세움아트스페이스 앞 등 4곳에서 사전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박근혜는 퇴진하라”, “더 이상은 못참겠다”, “이제는 항복하라” 등 구호를 외치며 집회를 이어나갔다. 청와대에서 신교동로터리는 약 200m, 세움아트스페이스는 약 400m 거리에 불과해 시민들의 목소리가 청와대를 에워쌌다.
대학생 김민영씨(23)는 “청와대에서 비아그라를 샀다는 사실을 듣고 어이가 없어 이 구호를 선정했다”며 “오늘 눈도 오고 쌀쌀한 데 시민들 그만 좀 괴롭히고 대통령이 빨리 사퇴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초등학생 아들과 집회에 참여한 박문형씨(45)는 “아들이 직접 집회를 와보고 싶다고 해서 데려왔다”며 “처음 와보는데 예전 대학생 때 참여했던 집회와 달리 질서정연하고 축제 분위기다. 아이도 구호를 따라하면서 즐거워한다”고 전했다.
이날 청와대 포위 행진은 법원이 전날 청와대 인근 200m 지점까지 행진을 허용함에 따라 가능하게 됐다. 다만 행진은 오후 5시 30분까지, 집회는 오후 5시까지만 허용됐다.
대다수는 오후 5시 30분이 지나면서 광화문광장으로 빠져나갔지만 일부 시민들이 자리에 남아 집회를 계속했다. 이들은 경찰과 대치하며 맞섰지만 경찰이 물리력을 행사하지 않고 해산을 유도하면서 다행히 별다른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차가운 날씨, 간간히 내린 진눈개비 궂은 날씨에도 박근혜 하야 우산·안경 ‘눈길’
이날 오후 서울에 첫눈이 내리고 기온이 3도 이하에 머물면서 시민들은 두꺼운 패딩점퍼에 목도리, 털모자 등을 착용하고 집회에 참가했다. 장갑을 낀 시민들은 한 손에는 ‘대통령 퇴진’ 피켓을, 다른 한 손에는 촛불을 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부 시민들은 우비를 입고 우산을 든 채 집회에 참가했다. 형형색색의 우산들 중에는 ‘박근혜 하야 우산’도 등장했다. 세월호 관련 단체들은 대형 고래 모양의 풍선을 제작해 하늘에 띄웠다. 고래 등 위에 조그맣게 붙인 노란색 종이배와 아이들의 얼굴은 주변을 먹먹하게 했다.
광화문광장 중앙에는 박 대통령과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사진을 붙인 펀치 게임기와 ‘새누리당’, ‘미르재단’, ‘검찰’, ‘대한민국 정부’ 등을 부착한 두더지 게임기가 설치돼 시민들의 발길을 이끌었다.
선명한 ‘하야’라는 모양으로 제작된 검정색 뿔테 안경을 쓴 시민도 눈에 띄었다. 패션디자이너 윤세나씨(37·여)는 “이 시국에 반대하는 한 사람으로서 하야 안경을 제작하게 됐다”며 “붓글씨 모양으로 만들어 국민들의 분노를 담았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 가면을 쓴 채 포승줄에 묶인 시민, 소를 끌고 나온 농민, 사물놀이를 하는 대학생들,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가 말을 타고 있는 사진을 부착한 말머리 가면을 쓴 시민 등도 눈길을 끌었다.
차가운 날씨에 삼청동과 내자동 등 광화문광장 인근 상점과 커피전문점에는 우비와 핫팩, 커피 등을 사려는 시민들이 줄을 이으면 뜻밖의 특수를 누렸다.
우비와 핫팩을 판매하는 상점 주인은 “오늘 날씨가 궂어서 우비, 핫팩을 찾는 사람들로 붐볐다”며 “재고가 모두 동이 났다. 없어서 못 팔았다”고 말했다. 모 커피전문점 관계자는 “지난 주말 집회 당시와 비교해서 테이크아웃으로 따뜻한 커피를 사는 손님들이 많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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