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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김덕권 칼럼]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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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김덕권 칼럼]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 것들

김덕권 기자 duksan4037@daum.net 입력 2016/12/03 02:15

▲ 덕산 김덕권 선생, 원불교 문인협회 회장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 것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저는 젊은 시절 주색잡기(酒色雜技)에 빠져 살 던 때가 있었습니다. 얼마나 후회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허랑방탕하게 살아온 결과는 가난과 고통뿐이었습니다.  
 
천만다행인지 제 나이 45세에《일원대도(一圓大道)》의 기연(奇緣)을 만나 세상 살아가는 이치를 배웠습니다. 그로부터 인생을 180도로 전환하여 수행일념으로 달려왔지요. 그 결과 비로소 황혼의 낙조를 관조(觀照)하며 이렇게 안빈낙도(安貧樂道)하며 살아갑니다.  
 
그 안빈낙도를 하는 방법은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하지 않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한 번 알아볼까요?  
 
첫째, 현재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 가지를 고민합니다. 과거 문제, 현재문제,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문제들이지요.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고민도 한 가지만 하는 것이지요. 
 
둘째, 우울증에 빠지지 않는 것입니다.

우울증에 무릎 꿇으면 안 됩니다. 꾸준히 우울감에 맞서 이겨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울증은 어느 새 습관처럼 되어 우리의 삶을 파괴시킬 것입니다.  
 
셋째,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을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나이가 들었다고 일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무슨 일이든지 일을 해야 됩니다. 그래야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신바람 나게 일하면 인생의 질이 높아지는 것이지요. 
 
넷째, 좋은 인간관계를 맺는 일을 게을리 하면 안 됩니다.
 
복 중의 제일은 인연 복입니다. 좋은 인연을 맺는 방법은 내가 먼저 정신 육신 물질로 주는 것입니다. 상생의 선연을 가져야 우리의 인생이 술술 풀립니다. 
 
다섯째, 남을 비판하지 않는 것입니다.
 
칼로 입힌 상처는 곧 아물지만 말로 입힌 상처는 평생을 갑니다. 그래서 구시화복문(口是禍福門)인 것입니다. 말은 잘 쓰면 복문이지만 잘 못 쓰면 화문인 것이지요. 
 
여섯째, 옳은 일을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정의(正義)는 죽기로써 행하고 불의는 용맹 있게 버리는 것입니다. 불의를 행하거나 눈감아주면 두 다리 쭉 뻗고 잠을 잘 수 없는 것이니까요.  
 
일곱째, 누군가를 ‘전부’로 삼지 않는 것입니다.

그가 떠나버리면 깊은 상처만 남습니다. 인연이 언제까지나 그 자리를 지킬 것이라 생각지 않는 것입니다.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게 마음을 담담하게 길들입니다. 
 
여덟째, 원망생활을 감사생활로 돌리는 것입니다.
 
감사생활 하는 사람은 천지 부모 동포 법률 사은(四恩)의 도움을 받고, 원망생활 하는 사람은 미물에게서도 해독을 입습니다.  
 
아홉, 용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타인의 잘못을 용서하는 사람이 '관인대덕(寬仁大德)'입니다. 용서만 받고 용서를 하지 못하는 사람이 소인이지요. 우리도 알게 모르게 많은 죄를 저지르지 않았는지요?

  
열째, 한결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가다가 멈추면 아니 감만 못합니다. 변덕이 심하면 세상이 신뢰하지 않습니다.《지성여불(至誠如佛)》입니다. 지성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롯한 정성이고, 그 정성이 바로 부처입니다. 
 
어떻습니까? 어찌 인생이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이 열 가지에 한하겠습니까? 그러나 이 열 가지만 실천해도 아마 우리는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아 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게 바로 가난에도 안분하며 도를 즐기며 살아가는 안빈낙도의 모습이니까요.  
 
‘삼천갑자 동방삭(東方朔)’으로 알려진 ‘동방삭’이 아들에게 써준 ‘계자시(誡子詩)’라는 것이 있습니다. ‘동방삭’은 우리나라에서는 장수(長壽)를 상징하는 가상의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한(漢) 무제(武帝) 때의 조정 관료라고 합니다.  
 
그 ‘계자시’에 보면, 그는 귀신같은 처세술로 인생을 즐기며 살았다고 해서 처세의 달인으로 불립니다. 그가 말한 안빈낙도란 그야말로 모든 ‘물(物)’로부터 벗어나서 오직 자연을 벗하며 살아가는 삶으로 알고 있지만, 그는 그런 인식을 일소(一笑)에 붙여 버렸다고 합니다. 
 
그의 논지(論旨)는 ‘백이(伯夷)’, ‘숙제(叔齊)’처럼 너무 고고하지도 말고, 그렇다고 너무 영화롭지도 말며, 그 중간에서 적당하게 사는 것이 바로 안빈낙도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크게 해를 입을 일도 없고 적당히 보호받으며 그만그만한 세상 즐겁게 사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합리적 입장에서 보면 맞는 말일지 모르지만 윤리적 입장에서는 위험한 주장이 아닐까요?  
 
동양 사상사(思想史)는 대개 성인의 길에 이르기 위해 죽는 순간까지 자기계발을 해야 한다는 유가(儒家)적 입장과, 세상을 등지고 자연과 벗하고 사는 도가(道家)적 입장이 맞서고 있습니다. 하지만 ‘필부필부(匹夫匹婦)’들의 삶은 이 중 어느 것도 정답이 아닙니다.  
 
보통 사람들은 동방삭처럼 그저 적당하게 물 흐르듯 원만한 것이 최선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안빈낙도는 가난해도 안분하고 도를 즐기는 것이야말로 인생을 잘 사는 것입니다. 
 
여하간 욕심으로 구하는 것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바라는 마음이 없어야 크게 와 지는 것입니다. 그리하려면 우리의 마음을 찾아서 잘 닦고 잘 쓰는 것입니다. 큰 바다는 백 천 골짜기 물을 다 받아들여도 흔적이 없는 것입니다. 마찬 가지로 우리 인생을 잘 살려 하는 사람은 공부나 사업 간에 흔적이 없습니다.  
 
또한 모든 사리(事理)에 다 통달(通達) 했어도 흔적이 없고, 만 생령을 두루 구원해도 흔적이 없는 사람이 인생을 가장 잘 사는 사람이 아닐 런지요!  
 
단기 4349년, 불기 2560년, 서기 2016년, 원기 101년 12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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