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이후 4년, 다양해진 탈핵 이슈
후쿠시마 사고 이후 만 4년이 다 되어 간다. 그동안 우리는 핵발전소의 숨겨진 진실들을 볼 수 있었다.
웬만한 뜨거운 이슈도 2주만 지나면 사그라진다는 한국 사회에서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씁쓸하게도 하루가 멀다 하고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야 우리 눈이 뜨이기 시작했고, 한 번 눈이 뜨이자 문제가 자꾸 보이고, 문제를 자꾸 파헤쳐보게 되고, 또 그런 우리가 많아졌다. 어쨌든 덕분에 한국 사회에서도 핵발전소와 관련된 이슈는 아주 다양해졌다.
가장 먼저 대중화된 이슈는 역시 노후 핵발전소 폐쇄다. 낡은 것은 위험하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쉬울 뿐만 아니라 후쿠시마의 사고 핵발전소가 모두 노후 핵발전소였던 만큼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게다가 충격과 경악의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후로는 가장 오래된 고리 1호기가 제2의 세월호가 되는 게 아니냐는 불안과 공포가 확산됐다. 고리 1호기에 이어 최근에는 월성 1호기가 후쿠시마 사고 이후 첫 수명 연장 허가 여부를 두고 뜨겁다.
한편으로 지난 지방 선거에서 더욱 화제가 되었던 것은 사실 삼척 신규 핵발전소다. 2012년 9월, 삼척과 영덕은 신규 핵발전소 예정 구역으로 지정 고시되었다. 이에 꾸준히 반대 의사를 표해 오던 삼척 시민들이 2014년 지방 선거에서 급기야 신규 핵발전소 유치 철회를 주장하는 탈핵 시장을 선출했다. 삼척은 뒤이어 핵발전소 유치 반대 주민 투표까지 성사시켰다. 삼척의 탈핵 흐름은 영덕으로 이어져, 유치 전면 재검토를 위한 군의회 특위가 구성되고 국무총리가 당근으로 제시한 원자력 발전소 자율 신청 특별 지원금을 거부하며 불씨가 커지고 있다.
이렇게 핵발전소의 시작(노후)과 끝(신규)을 옥죄는 운동이 힘을 얻고 있는 가운데 2014년 12월에는 새로운 지역이 추가되었다. 바로 동해안에 비해 거의 관심을 받지 못했던 호남권 유일의 핵 발전 단지, 영광이다.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가 영광군의 한빛 3·4호기 가동 정지를 촉구하며 국민 서명에 나선 것이다(지난 12월에 시작된 이 서명에는 2월 3일 기준 9742명이 참가했다). 한빛 3·4호기는 1970년대 중반 치명적인 내구성 결함이 밝혀져 해외에서는 관련 핵발전소가 대부분 교체되거나 일부 폐쇄된 바 있는 부실 재료 '인코넬600'이 사용되고 있다. 그 결과 사고 및 고장만 7번이나 발생했는데도 말이다.
나열해 놓고 보니 더욱 강렬한 4년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지난 4년간 시작하지 못해 아쉬운 것이 있다. 아니, 강한 아쉬움 이상이 남는다. 바로 신고리 3·4호기 때문이다.
이권에서 시작해 이권으로 끝난 비리 집합체
가동 중지와 폐쇄 이유로 보자면 신고리 3·4호기는 고리·월성 1호기나 한빛 3·4호기 그리고 삽도 뜨지 않은 삼척과 영덕의 신규 핵발전소 못지않다.
무엇보다 첫 번째, 비리로 얼룩진 부실 공사임이 수차례 드러났다. 출발은 위조 부품이었다. 시험 성적서가 위조된 전력·제어·계장 케이블이 118억 원어치 납품된 것으로 드러났다. 그래서 신고리 3·4호기는 이 어마어마한 케이블에 대해 재시험과 교체에 들어갔는데, 이것이 2013년 5~6월의 일이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 1일 한국전력은 밀양 송전탑 공사를 재개했는데, 이때 공사 재개 호소문에서 신고리 3·4호기를 가동해 송전을 시켜야 전력난이 없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이상한 변명이다. 신고리 3·4호기는 밀양 주민이 아니라 바로 스스로의 비리로 멈춰 있는데 말이다.
그런데 더 가관은 그 후 며칠 간격으로 터진다. 시험 성적서만 위조한 게 아니라 핵발전소에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기기가 기능을 유지할 수 있는지 입증하기 위한 안전성 등급(Q)의 기기검증에서 공급 업체 스스로 셀프 검증해 납품한 것이 드러났다. 또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결과에서는 신고리 3·4호기에 납품한 LS전선 등에서 핵발전소용 케이블 구매 입찰 담합이 있었음이 밝혀졌다.
급기야 10월 16일에는 5월 이후 시험 성적서 위조에 따라 재시험에 들어가려던 전력·제어·계장 케이블이 재시험도 아니고 그 전 단계로 시행되는 화염 시험에서 실패했음이 발표되었다. 그냥 비리가 있었던 것이 문제이지 비리 결과 납품된 부품들에는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대응하던 한국전력, 한국수력원자력의 마지막 꼼수가 좌절된 것이다.
더욱이 이러한 비리와 꼼수는 핵발전소 수출과도 깊이 연관돼 있어 우려스럽다. 꽤 알려졌듯이 신고리 3·4호기(APR 1400)는 이명박 정부가 수차례 자랑해 온 한국형 핵발전소로 가동 중인 곳이 없는 최초 모델이자 아랍에미리트(UAE) 수출 모델이다. 따라서 UAE와는 제대로 가동하는지 검증을 위해 신고리 3·4호기를 2015년 9월 이전에 상업 운전해야 한다는 약속이 계약서상에 명시되어 있다. '한국형'이라는 특징이 한국 핵 마피아의 비리 구조와 필연적으로 만나고, 약속 기한을 지키기 위해 기존의 비리 관행에 가속도가 붙은 것이다.
증명이라도 하듯, 그 뒤로도 비리와 꼼수 목록은 줄줄이 이어진다. 신고리 3·4호기의 설계 수명은 60년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도 거짓으로 밝혀졌다. 원자로 냉각재 펌프, 밸브·배관, 재생열교환기의 설계 수명만 60년이고, 터빈 설비와 보조 기기 등 나머지 부품은 전부 설계 수명이 40년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특히 핵발전소를 가동한 이후 사실상 교체 불가능한 격납 건물 철판, 포스트텐셔닝시스템, 시멘트까지 40년 수명으로 밝혀졌다. 이 경우 설계 수명 40년에 부품을 전부 교체 시 1조1600억 원이 소요돼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당연히 이 돈은 세금에서 나간다.
해를 넘겨 2014년에도 품질 서류 위조가 추가로 드러났으며, 신고리 3·4호기에 위조 부품을 납품한 업체가 UAE에도 부품을 납품했고, 이중 6개 업체가 위조 부품과 동일한 부품 납품이었음이 드러났다. 불량 케이블 대신 교체하는 미국 업체에도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되었다.
이것으로 끝일까? 아직도 수사는 끝나지 않았고, 그 수사마저 비리 전부를 겨냥하고 있지 않다. 기가 찰 노릇이다.
핵 마피아들의 숙원사업 신고리 3·4호기가 가동되면…
그런데 이러한 비리는 그냥 나쁜 놈들의 돈 잔치에 불과할까? 앞서도 보았듯이 한국전력, 한국수력원자력의 논리가 그렇다. 그냥 비리가 있었던 것이 문제이지 비리 결과 납품된 부품들에는 문제가 없다는 식이다. 당연히 그럴 리가 없잖은가. 핵발전소뿐 아니라 각종 안전사고는 부정과 비리에 연결되어 있다.
핵 마피아들의 돈 잔치는 부실공사로 이어지고, 부실점검으로 이어지며, 결국 국민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한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신고리 3호기 건설 현장에서는 결국 지난 해 말, 다른 이도 아니고 '안전 순찰'을 하던 노동자 3명이 질소 가스에 질식해 사망했다.
더 상징적인 것은 노동자들의 사망 사고에 대한 한국수력원자력과 정부의 입장과 대응이다. 3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이번 사고가 가스 누출에 따른 질식 사고이기 때문에 핵발전소의 안전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것이고, 둘째, 사고 핵발전소는 현재 건설 중인 가동 전 핵발전소로 방사능 누출과는 관련이 없다는 것이고, 셋째, 이 때문에 핵발전소 수출에 지장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그들이 신고리 3·4호기를 밀양 송전탑 공사 강행의 명분으로 삼았던 것까지 종합해 보자면 한국전력과 한국수력원자력 그리고 정부, 즉 핵 마피아들에 대한 다음의 명확한 결론으로 이어진다.
우선 핵 마피아들에게 국민의 안전이나 건강권, 재산권 등은 별로 신경 쓸 문제가 아니다. 전반적인 부실 공사가 인정되긴 하지만 질소 가스는 누출됐어도 방사능 누출은 안 됐으니 그들에게 핵발전소는 여전히 안전한 것이다. 사람이 한 번 죽어나든(2012년 1월 밀양 주민 故 이치우 어르신), 두 번 죽어나든(2014년 12월 안전 관리 노동자 3명), 국민들의 혈세가 막대하게 낭비되든, 무슨 일이 있어도 핵발전소 수출은 막히면 안 된다. 이건 거의 중독도 심각한 중독이다. 핵 발전 외엔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수준이다. 그래서 그들의 비리와 꼼수는 괘씸한 것보다 섬뜩하다.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