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간수마저 감동시킨 안중근 의사의 이야기가 공개됐다.
[뉴스프리존= 김현태기자] 18일 오전 방송 된 MBC '신비한 TV서프라이즈'에서는 안중근 의사와 일본인 간수 치바의 이야기가 그려졌다.
1909년 뤼순 형부소에서 일하던 일본인 간수 치바는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에 대한 증오심을 키워갔다. 며칠 뒤, 안중근이 그가 일하는 감옥으로 들어왔고 그는 수차례 총을 겨눴다. 결국 1910년 3월 26일, 안중근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런데 한 장의 종이를 꺼내놓고 눈물을 흘리는 치바였다. 이유가 있었다.
이에 안중근 의사는 치바에게 유묵을 써줬고, 치바는 안중근 의사가 죽은 뒤 간수일을 그만 두고 일본으로 돌아가 그 유묵을 가보로 간직했다.
이후 치바의 후손들은 지난 1980년 안중근의 유묵을 한국에 반환했다.
단둘이 있을 때 안중근은 총을 겨누는 치바에게 방아쇠를 당기라 했다. 안중근은 "나는 나의 조국를 위해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고 당신은 당신 조국을 위해 나를 죽인 것뿐이오. 우리는 조국을 위해 할 일을 하는 것이오. 당신을 이해하오. 어서 방아쇠를 당기시오"라고 했다. 흔들리지 않고 신념을 가진 그에게 치바는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그의 인격과 성품에 큰 감동을 받아 안중근을 마음 깊이 존경하게 됐다.
그러나 안중근의 사형 집행 소식이 전해졌고 치바는 안중근에게 인사를 한 뒤 사과했다. 그는 일본이 침략자라면서 "내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미안하오"라고 했다. 이에 안중근은 붓을 들고 글을 쓴 뒤 "내 마지막 선물이오"라고 건넸다. '위국헌신 군인본분'이란 글이었다.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침은 군인의 본분이다'란 뜻. 안중근이 미안해하는 그를 위로하며 유묵을 써준 것.
이후 치바는 스스로 간수 일을 그만 두고 일본으로 돌아가 매일 아침저녁으로 안중근의 명복을 빌었으며, 사망할 때도 "안중근 선생의 유묵을 가보로 삼고 그의 위패를 모셔주시오"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의 말대로 유묵을 지켜오던 후손은 1980년 원본을 한국으로 반환했다고 한다.
일본 미야기 현의 작은 마을에는 안중근 기념비가 세워졌고 현재까지도 그의 정신과 업적을 기리는 의식을 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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