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탄핵심판소추위원단·대리인단 첫 회의에서 공개된 박근혜 대통령 대리인 탄핵심판 답변서 요지가 공개 되면서 양승태대법원장의 사생활을 사찰 하는등, 엄격한 시간을 체크했다. 박근혜 정권 최대 미스터리인 ‘세월호 7시간’은 더 이상 미스터리만은 아니다.라는 제목으로 선데이저널은 조목 조목 7시간에 대한 보도를 하였다.
단순히 그 시간 동안 한 일에 대한 사실 관계를 따지는 수준을 넘어서 박근혜 정권을 상징하는 시대의 단어가 됐다. 박근혜 정권의 불통과 무능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세월호 7시간의 미스터리는 그동안 청와대의 금기어였다. 감출 일이 없이 떳떳했다면 과연 그 시간에 무엇을 했는지 당당하게 이야기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일종의 대통령 업무 일지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 될 일이다. 2년8개월 동안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은 그날의 대통령 행적에 대한 의혹을 해소해 달라고 꾸준히 요구했다. 국민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청와대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정윤회 밀회설, 최태민 천도재 참가설, 성형시술설, 약물 처방설 등 온갖 소문이 떠돌았지만, 청와대는 늘 ‘부인’만 할 뿐 ‘적극적인 해명’에 나서진 않았다. 박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불리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조차 국정감사장에서 “모른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대통령이 침묵하고 최측근들이 ‘모르쇠’로 일관해도 그날의 행적은 차츰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2014년 4월16일 박근혜 대통령을 직접 목격한 제3의 인물들이 차츰 입을 열고 있어서다. 최근에 드러난 일련의 증언들을 쫓아가다보면 오히려 세월호 7시간 이후 처음 모습을 드러낸 중앙대책본부 방문 후의 일정에서 힌트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세월호 7시간과 관련한 의문점들 현재 드러난 새로운 증언들을 바탕으로 다시 추적해봤다.
청와대의 설명과 본국 국회 국정조사 등을 통해 새롭게 드러난 내용 등을 토대로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을 재구성해 보면 일단 박 대통령은 이 날 오후 5시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하기 전까지 청와대 관저에 머물렀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청와대에서 중앙대책본부까지의 거리는 차로 5분도 걸리지 않는다. 중대본의 위치는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안에 있다. 중대본에 방문하기 전까지는 비서실장이나 국가안보실 등으로부터 관저에서 유선 보고를 받았다. 거꾸로 유선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이후 중대본에 모습을 드러내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고 있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드냐”고 엉뚱하고 뚱딴지같은 질문을 하기도 했다. 뭐가 뭔지 전혀 모르고 하는 듯한 발언이었다. 당연히 의문점은 그녀가 그 시간까지 관저에서 무엇을 했는지, 제대로 된 보고를 전혀 받지 못했다는 증거다.
침몰 7시간만에 중대본 나타나 생뚱맞은 질문
2년 8개월 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진실은 의외의 인물들의 입을 통해 한 꺼풀씩 밝혀지고 있다. 우선 ‘미용실 원장이 참사 당일 관저에서 박 대통령의 머리를 손질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대통령의 머리 손질과 메이크업을 위해 계약직으로 채용된 2명이 이날 오후 3시 22분부터 4시 47분까지 청와대에 머물렀다. 단원고 학생들이 세월호에 갇혀 생사를 오가는 순간, 머리 손질을 위해 최대 80분에서 최소 20분(청와대 주장) 이상 시간을 허비한 셈이다.
올림머리또 다른 증언도 나왔다. 2008년부터 올해 7월까지 청와대에서 근무한 전직 조리장은 여성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참사 당일 “관저에 딸린 주방에서 낮 12시와 오후 6시에 각 1인분의 식사를 준비했다”고 밝혔다. 그는 “(박 대통령은) 식사는 평소처럼 했고, 중대본 회의 참석 후 관저로 돌아와 식사했다”고 덧붙였다. “박 대통령은 회의나 외부 일정이 없으면 늘 관저에 머물렀다”는 증언도 이어졌다.
중대본 방문 준비를 고려하더라도 여전히 유선 보고나 지시조차 없었던 221분에 대해선 의혹이 풀리지 않았다. 청와대를 통해 확인된 내용은 박 대통령이 수습을 위한 어떠한 지시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서면 보고를 받고, 띄엄띄엄 전화로 구조 상황을 물은 것이 전부였다. 박 대통령은 오전 10시30분 해양경찰청장과 유선 통화를 한 뒤 오후 2시11분 국가안보실장에게 “구조 상황을 재확인하라”고 지시했다. 3시간41분 동안 박 대통령 행적은 여전히 공백으로 남아 있다. 세월호가 뱃머리 일부만 남기고 거의 침몰(오전 11시18분)한 이후 3시간 가까이 대통령의 목소리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
전직 조리장의 발언에서 새롭게 드러난 사실이 하나 있다. 중대본 방문 후 박 대통령은 관저로 퇴근했다. 구조 상황을 지휘해야 할 대통령이 또 자리를 비웠다. 저녁 식사 사실 외에는 확인되지 않았다.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혼자 저녁식사
김기춘 비서실장 주재로 새벽까지 수석비서관회의를 열었지만 박 대통령은 또다시 모습을 감췄다. 청와대는 대통령은 일어나는 순간부터 자는 순간까지 모든 일상이 업무라고 말했는데, 비서진이 새벽까지 회의를 하는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대통령은 조리장이 가져다 준 식사를 먹고 또 다시 두문불출했다. 당연히 대통령이 그날 또는 그 전 날 무엇을 했는지에 물음표가 달릴 수 밖에 없다. 성형시술설과 수면제 복용설 등 각종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미 12월 14일 국회서 열린 국정조사를 통해 대통령의 시술 가능성은 어느 정도 확인이 됐다. 시술 흔적은 확인됐으나 시술한 사람이 없어서 문제일 뿐이다. 한 언론이 이날 세월호 참사 발생 후인 2014년 5월13일, 입가에 피멍 자국이 선명한 박 대통령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공개하면서다. 이에 박 대통령의 입가 피멍이 필러 주사에 의한 후유증일 수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러나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의료진들은 이에 대해 일제히 모르쇠로 일관했다. 최순실의 단골 성형외과 의사이자, 박 대통령을 ‘비선진료’한 김영재 원장은 자신이 청와대에 들어가 박 대통령을 시술했다는 의혹에 대해 “한 적이 없다”고 강력 부인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 당일에도 오전에 장모님 수술을 하고 골프장에 갔다”고 진술했다. 김 원장은 “(피멍자국은) 필러 같다”고 진술했다가, 나중에는 “마리오넷 라인(아래 입술 양쪽 끝에 패인주름) 시술을 했다면 주름살이 없어져야 하는데, 주름살이 있는 것을 보면 시술을 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을 바꾸기도 했다.
정기양 전 대통령 자문의 또한 “(시술하지 않았다는) 김 원장의 의견에 동의한다”며 “(사진에서) 별 차이가 없다”고 동조했다. 서창석 전 대통령 주치의도 피멍 사진을 본 뒤, “누가 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고, 김원호 전 의무실장과 이병석 전 대통령 주치의 또한 전부 자신이 한 게 아니라는 입장을 피력했다.
‘세월호 7시간’의 핵심인물 지목됐던 신보라 전 간호장교 또한 “(피멍에 대해) 미처 파악하지 못했다”며 “저는 그런 시술을 본 적도 없고, 처치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김장수 전 안보실장까지 “(피멍이 있는지 당시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며 “화면의 그림을 보니 멍이 있다고 지금 느끼는 것이지, 전혀 제가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서창석 전 주치의가 제3의 의료진이 또 있느냐는 질문에 “제가 알기로는 없다”고 답하면서, 의혹은 증폭됐다.
폭탄발언 나올 가능성 높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대통령이 관저에서 무엇을 하는지 몰랐다고 해명한 것도 거짓말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본인은 국가적 재난에 대응하기 위해 새벽까지 대책회의를 하는데 정작 대통령이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하거나 묻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이쯤 되면 대통령이 아예 없어도 된다 말이다.
여전히 풀리지 않은 그날의 행적은 청와대 대통령 관저에 머물렀던 이들의 진술을 통해 규명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경호실 내 관저팀은 8시간씩 3개 조로 근무하며 하루 24시간 관저 출입자를 감시하고 대통령의 안위를 살핀다. 안봉근 전 비서관이 발탁한 구모씨와 A씨, B씨 세 경호관이 모두 관저팀 소속이다. 이들 모르게 청와대 관저를 출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셈이다.
이들 가운데 전직 경찰관이었던 구씨는 12월16일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가 실시하는 대통령 경호실 현장조사에 참석하라는 요구를 받은 상태다. 구씨의 증인 채택을 요청한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본인이 양심 고백을 할 마음의 준비가 돼 있다고 한다”고 전했다. 관저 경호를 담당해 온 청와대 구씨의 증언이 더해지면 박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일 일정은 좀 더 구체화될 전망이다.
추가로 드러나는 증언들을 종합해보면 박 대통령이 혼자 관저에서 식사를 한다는 것과 어느 정도의 미용 관련 시술을 받은 것은 거의 확실해 보인다. 일단 박 대통령이 특별한 일이 없을 때는 거의 관저에서 식사를 하고 그것도 혼자 한다는 것은 식사 시간이 누군가와 소통하면서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는 시간이 아니라는 얘기다. 관저에 머물 때도 TV를 보는 것을 즐긴다 하니 민심을 어떻게 파악해 왔는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세간에 ‘박 대통령은 최순실과 TV를 통해 세상과 소통한다’는 말이 돌았는데, 전 조리사의 증언을 보면 이런 말을 그저 소문이라고만 치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박근혜식 소통’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는 증언이다. 전직 조리사와 미용사 증언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대통령은 세월호 사고 당일도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을 영위했다는 점이다. 식사나 미용에서 달라진 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박근혜는 대통령이 아니라 방관자
이제 ‘세월호 7시간’은 위기에 있어서 대통령과 청와대의 대응이 얼마나 무능한가를 보여주는 상징어가 됐다. 청와대는 위기관리 시 보여줘야 하는 일관성과 긴급성을 전혀 보여주지 못한 채, 정반대의 대응을 했다. 그러니 의혹이 증폭되고 꼬리를 물 수밖에 없었다.
2014년 7월7일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한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은 “(참사 당일) 대통령의 위치에 대해서는 제가 알지 못한다”고 답변했다. 애매모호한 답변이었다. 그 이후부터 ‘세월호 7시간’과 관련한 온갖 의혹이 생겨났다. 청와대는 이에 대해 빠르게 당일 대통령 행적을 공개하는 대응을 하지 않았다. 2년4개월이 지난 현 시점에서야 언론 취재로 머리를 손질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마지못해 인정했을 뿐이다. 그저 숨기고 밝히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한 것이 청와대 대응이었다. 현 정부의 무능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에 다름 아니다.
‘세월호 7시간’은 박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에도 들어 있다. 탄핵안은 “국가적 재난을 맞아 즉각적으로 국가의 총체적 역량을 집중 투입해야 할 위급한 상황에서 행정부 수반으로서 최고결정권자이자 책임자인 대통령이 아무런 역할을 수행하지 않았다”며 헌법 10조인 생명권 보장 조항을 위배했다고 기록했다. 야권에서는 앞으로도 기회 있을 때마다 ‘세월호 7시간’을 거론할 것이다. ‘그 시간 동안 무엇을 했느냐’는 논란에서 나아가 ‘왜 대통령은 적극적인 지시를 내리지 않았는가’로 논점이 옮아갈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불통과 무능을 보여주는, 정치적으로 야권에 매우 유리한 정치적인 키워드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특검을 통해서 이 사안이 밝혀질 경우 그동안 숨겨오려 했던 이유까지 드러나면서 대통령은 더 큰 민심의 분노에 직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