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통신넷= 이진용기자] 일반 상조회사의 장례비용이 너무 비싸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온 한 비영리 재단이 '상조 다단계' 영업을 벌여온 사실이 시사저널 취재 결과 확인됐다. 세제 혜택이 주어지는 비영리 재단이 본연의 설립 목적에 어긋나는 불법 행위로 거액을 편취해온 것이다. 각종 비리·유착 및 소비자 피해로 몸살을 앓아온 상조업계의 혼탁한 시장 구조가 다시 한 번 도마에 오르게 됐다.
2010년 설립된 비영리 재단 아름씨에스는 출범 당시 '죽음을 지나치게 상업화해서는 안 된다'는 모토를 내세웠다. 지나치게 상업화된 상조 서비스의 거품을 빼 올바른 장례문화를 정착시키겠다고 선언했다. 재단 홈페이지에서도 '기업주의 이익이 아니라 공익을 추구하는 재단이다' '일반 상조회사와 달리 상조 서비스를 통한 수익 발생이 전혀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시사저널이 접촉한 복수의 아름씨에스 관계자들은 "비영리 재단임에도 다단계식 영업을 토대로 대규모 영리 활동을 해왔다"고 증언했다.
3년 만에 회원 8천명에서 8만명으로
일반 상조회사는 대부분 '선불식 할부 계약'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소비자는 장례가 발생하기 전 미리 상조회사에 회원으로 가입한다. 매달 3만원 이상의 금액을 100여 개월에 걸쳐 할부로 낸다. 이렇듯 선불로 나눠 낸 돈으로 추후 장례가 발생했을 때 상조 서비스를 제공받게 된다. 아름씨에스는 선불식 할부 계약을 바탕으로 형성된 상조 서비스 가격에 '현실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일반 상조회사의 서비스에는 소비자에게 불필요한 것이 다수 포함돼 있어 필요 이상으로 고액이라는 것이다.
아름씨에스는 재단에 기금을 출연한 회원들에게 특정 상조업체를 연결해주는 방식을 도입했다. 출연금 11만원(2013년 이후 15만원)을 납부해 재단 회원으로 등록하면 나중에 장례가 발생했을 때 재단의 '장례문화 개선'에 동참하는 특정 상조업체로부터 거품을 뺀 가격에 실리적인 서비스를 제공받게 해준다는 것이다. 일반 상조회사의 경우 선불로 나눠 내는 금액의 총합이 최소 300만원대에서 800만원대 수준에 육박하는 데 반해, 아름씨에스를 통해서는 100만~200만원대의 금액만으로 기본 서비스를 제공받는다.
아름씨에스의 '뜻'에 동참하는 업체는 박리다매를 통한 수익을 보장받는다. 재단에 기금을 출연한 회원은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상을 치를 수 있다. 서로 '윈윈'하는 셈이다. 겉으로만 보아선 '장례비용 현실화'라는 비영리 활동의 목표를 훌륭하게 달성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속내는 달랐다. 저렴한 상조 서비스에 목마른 소비자와 회원 유치가 생존과 직결되는 상조업체를 연결해주는 과정에서 아름씨에스가 편법·불법을 동원해 막대한 수익을 거뒀다는 것이다.
"약 3년 사이에 8000명 수준이었던 재단 회원이 8만명으로 불어났다. 그 과정에 다단계식 영업이 있었다." 2012년 1월부터 2014년 11월까지 아름씨에스 출연 회원을 대상으로 상조 서비스를 제공했던 상조업체 대표 임 아무개씨(54)의 말이다. 임씨는 출연 회원들의 개인정보를 재단과 공유했는데, 매달 수천 명씩 회원 수가 늘어나는 것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회원 수가 늘어나면서 상조 서비스 제공 빈도도 자연스레 높아졌다. 2012년 초 1개월당 20~30건 수준이었던 장례가 2014년 즈음엔 120~130건 수준이 됐다. 임씨는 "장례가 월 130건 정도면 전체 상조업체 가운데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다단계 영업을 진행했던 복수의 전직 영업사원들로부터 좀 더 구체적인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이들은 "현재 재단 회원은 약 10만명 수준으로 추정된다"고 입을 모았다. 재단 출연금이 2013년 이전까지 1인당 11만원, 이후 15만원임을 감안하면 현재까지 회원들로부터 줄잡아 수십억 원 이상의 출연금을 받았다는 말이 된다. '장례문화 개선'이라는 고유 목적 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받은 돈치고는 지나치게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막대한 출연금은 사실상 영리 활동에 해당하는 돈으로, 상당액이 다단계 판매 대가 및 성과 보너스로 쓰이고 나머지는 재단으로 흘러갔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전직 영업사원들은 기자에게 아름씨에스 대표이사 명의로 작성된 '홍보비 지급 방법' 내부 문건을 보여주며 "3단계 이상의 수당 지급 체계를 바탕으로 한 다단계식 영업이 있었다"고 밝혔다. 2011년 작성된 해당 문건에 따르면 회원 등급은 일반회원, 홍보팀장, 과장, 부장, 이사 등 5등급으로 나뉘어 있다. 회원 한 사람을 모집할 경우 3만원이 지급됐다. 자신이 직접 모집한 회원 및 하위 판매원이 모집한 회원 수가 일정 기준을 넘어설 때마다 상위 등급으로 올라가면서 다른 성과급 체계를 적용받았다. 결국 회원 1인당 11만원의 출연금 중 8만원이 수당 및 각 등급별 성과급 지출에 쓰이고, 나머지 3만원이 재단 몫이었다고 한다. 전국 주요 거점에 15개 이상 '센터'를 두는 등 체계적인 면모를 갖추기도 했다.
현행법에서는 당국에 등록하지 않고 행해지는 다단계 판매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등록된 판매 조직이라 하더라도 판매원에게 하위 판매원 모집 자체에 대해 성과급을 지급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금지돼 있다. 상품 및 서비스의 공정한 거래를 가로막아 시장 질서를 교란한다는 이유에서다. 무등록 다단계 판매인 데다 하위 판매원 모집에 성과급을 지급한 아름씨에스의 운영 행태는 명백히 위법인 셈이다. 이미 이에 대한 사법처리가 진행되고 있다. 2012년 경찰 조사를 시작으로 임준확 아름씨에스 이사장과 재단 부산센터장·경상본부장·전라본부장 등이 1·2심 재판에서 방문 판매 등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곧 대법원 선고가 있을 예정이다.
사법처리 진행 중에도 버젓이 '다단계' 영업
이에 대해 임준확 이사장과 함께 재판을 받고 있는 전직 간부급 판매원들은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다단계 판매를 주도해온 핵심 멤버들은 사법처리 대상에서 제외되고 자신들만 덤터기를 썼다는 것이다. 이들은 검찰 기소 및 재판 등 사법처리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다단계식 영업이 계속돼왔다고 밝혔다. 기자와 접촉한 한 전직 본부장은 "설립 당시부터 다단계 판매를 해온 많은 본부장, 전국 각지의 센터장들은 지금까지도 활발히 회원들을 모집하고 있다. 주변에 재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려 하면 회원 유치에 방해된다며 나를 비난한다. 왜 우리 세 사람만 이렇게 법의 심판을 받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항변했다. 부산에서 활동했던 한 판매원은 "수사를 받고 재판이 진행되면서 수당과 성과급을 한 달에 한 번씩 정산하는 식으로 시스템이 바뀌긴 했다. 하지만 다단계식으로 영업을 하는 것은 지금까지도 매한가지"라고 증언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3년간 재단 출연 회원들에게 장례 서비스를 제공한 상조업체 대표 임씨는 "장례 발생 1건당 15만원씩을 아름씨에스 측에 입금해야 했다. 함께 일하는 동안 송금한 돈의 총액이 2억8000만원 상당"이라고 밝혔다. 재단 출연 회원들을 연결해주는 대가로 건네주도록 약속된 돈이었다는 것이다. 임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상조 서비스를 통한 수익 발생이 전혀 없다'던 비영리 재단 아름씨에스는 회원들에게 특정 상조업체를 알선해주며 수억 원 규모의 수수료를 받은 셈이다. 이에 대해 임씨는 "계산서를 전혀 발행하지 않았고 심지어 계약서조차 작성하지 않았다. 그래서 계약이 일방적으로 해지됐을 때도 아무런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 하지만 돈을 송금한 내역이 계좌에 남아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름씨에스 재단으로 흘러들어간 돈이 어디에 쓰였는지도 의문이다. 재단 측은 순수하게 장례문화 개선 관련 사업에 출연금을 사용한다고 공언한 바 있다. 하지만 전직 판매원들은 "사회적 기업 서너 개, 자연장·사업장 8~10개를 전국적으로 만들어 평생직장을 보장하겠다는 재단의 호언장담에 이끌려 일을 시작한 판매원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 어떤 것도 진행된 것이 없다"고 밝혔다. 재단이 벌어들인 수익이 어디에 쓰였는지 의혹이 제기된다는 의미다. 시사저널은 이상의 내용에 대한 아름씨에스 측 입장을 듣기 위해 임준확 이사장에게 수차례 연락을 취했으나, 기사 마감을 앞둔 1월30일까지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고객 등치는 상조 서비스
'올바른 장례문화'를 표방한 아름씨에스가 다단계 영업으로 빠르게 회원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일반 상조업체의 서비스가 소비자의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선불식 할부 거래로 각 서비스 항목들을 일괄 구매하는 탓에 고비용이 들면서도 자신이 원하는 장례를 '맞춤형'으로 설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전직 상조업자 유 아무개씨는 "없는 사람들은 없는 형편대로, 있는 사람은 있는 형편대로 장례를 치를 수가 없다. 다들 비싼 돈을 내면서도 소비자 선택 면에서 다양성을 가질 수 없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월7일 한국소비자원이 발표한 '2014 한국의 소비자 시장 평가지표'에 따르면, 상조업계는 소비자들의 마음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시장으로 인식되고 있다. 지난해 9월 전체 가구 소비 지출의 54.6%에 해당하는 주요 시장에 대한 소비자 평가를 6개 항목에 걸쳐 조사한 결과(1개 시장당 전국 20세 이상 성인 남녀 소비자 500명씩 표본 조사), 상조 서비스는 전체 35개 시장 중 32위를 차지했다. '비교 용이성' '만족도' '신뢰성' '사업자 선택 가능성' 등 4개 항목에서 '적신호'(경고) 등급을 받고 하위 5위권에 포함됐다. 시장 기능이 균형적이고 효율적으로 작동되도록 하기 위한 구조 개선이 시급하다고 진단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