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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김덕남 칼럼] 실낙원의 건설..
오피니언

[덕산 김덕남 칼럼] 실낙원의 건설

김덕권 기자 duksan4037@daum.net 입력 2016/12/27 07:43
원불교 문인협회 회장

▲ 덕산 김덕권 선생, 원불교 문인협회 회장실낙원의 건설 

 

저는 이번에 [덕화만발]에서 창립한 <덕화아카데미>의 교육방향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헬 조선을 외치는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맑고 밝고 훈훈한 진짜 낙원(實樂園)을 찾아 줄 수 있을까요? 그 교육방향을 저는 ‘영육 쌍 전(靈肉雙全)’에서 찾아보기로 한 것입니다.
 

인생의 참다운 행복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인간의 완전한 행복은 정신과 육신의 행복을 함께 얻어야 합니다. 과거에 육신은 죄업의 덩치 혹은 욕심이 뭉쳐진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육신의 낙을 얻는 것에 대해서는 금기시해 온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몸은 만사만리(萬事萬理)의 근본’입니다. 모든 일과 이치는 몸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기에 중요하다고 본 것이지요.
 

우리의 몸을 ‘사은의 공물(四恩公物)’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몸은 우리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사은(四恩 : 天地 父母 同胞 法律)의 공적(公的) 몸뚱이라는 뜻이지요. 몸이 있어야 성불도 하고, 봉공(奉公)도 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정신적인 면 혹은 도덕적인 면만을 추구하느라 육신 돌보는 데 등한시해서 의식주를 해결하지 못하면 가난하게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육신의 안위와 안락만을 추구하느라 정신적인 부분을 채우지 못하면 부패하거나 타락한 사회가 되고 말지요. 그것이 작금의 ‘헬 조선’ 사태가 일어난 원인이 아닌가요? 그래서 우리가 참다운 행복을 누리려면 영육을 함께 닦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덕화아카데미>를 창립한 것은 개인 · 가정 · 사회 · 국가 · 세계가 다 함께 번성해서 참다운 행복을 누리는 맑고 밝고 훈훈한 낙원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덕화아카데미>가 정신적인 면만 추구한다면 그것도 절름발이 사회가 되기 쉬운 것입니다.
 

제아무리 잘난 사람도 죽은 사람이 인류사회에 아무런 역할을 할 수가 없습니다.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좋은 교리를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수도(修道)와 생활이 분리된 종교는 죽은 종교나 마찬 가지입니다.
 

그렇다면 정신과 육신을 온전하게 갖추는 영육 쌍 전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요?
 

첫째, 육신의 의식주를 얻는 것입니다.

우리가 먹고 입고 자는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은 육(肉)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의식주를 욕심으로 구하려고 하면 끝이 없습니다. 욕심으로 구하면 어느 정도의 의식주는 구할 수 있을지 몰라도 진리의 길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그 부(富)가 영원한 것은 아닙니다. 의식주를 얻되 진리에 맞게 구하는 재물이 진정한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둘째, 정신의 의식주를 얻는 것입니다.

의식주는 먹고 입고 자는 것을 통틀어 말합니다. 그러나 의식주는 몸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정신에도 있습니다. 그 정신의 의식주는 생활 가운데 일심도 들이대고(精神修養), 알음알이도 얻어가고(事理硏究), 실행력도 갖추다 보면(作業取捨) 절로 심대력(三大力)을 얻게 되어 진정한 영육 쌍 전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육신의 의식주와 정신의 의식주만 얻으면 영과 육이 절로 쌍 전되어 개인 · 가정 · 사회 · 국가 · 세계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인간이 되고 진정한 인생의 행복을 영위하게 되는 것이지요.
 

눈에 보이지 않는 나를 '영(靈)'이라 하고, 눈에 보이는 나를 '육(肉)'이라 합니다. 영은 정신, 육은 육신을 말하지요. 따라서 어느 한 방면에 치우치지 말고 정신과 육신 모든 방면에 완전한 생활을 해가자는 것이 바로 영육 쌍 전법입니다. 완전한 생활이란 ‘진리적인 삶’을 말합니다. 그래서 삼학수행으로 육신의 의식주를 구하고, 삼학수행으로 진리적 의식주를 구하여 나와 사회와 나라를 발전시키자는 것이 바로 <덕화아카데미>의 교육방향입니다.
 

육신의 의식주는 물질입니다. 한마디로 돈이지요. 이 물질은 의미 있게 써야합니다. 평생을 좋은 옷 사 입고, 기름진 음식 먹고, 아파트 평수를 넓히다가 어느 순간에 가버리면 그 얼마나 허망하겠습니까? 평생 번 재산 단 한 푼도 가져갈 수 없습니다. 물질 모으는데 온 정신을 쏟고 영적인 성찰을 하지 않으면 죽음이 두려움으로 다가옵니다. 따라서 영과 육 가운데 한 쪽에 치우치면 참으로 허망한 결과가 옵니다.
 

영육을 쌍 전하는 방법으로 살면 삶도 더욱 편안해 집니다. 진리적으로 삶으로 의식주라는 물질을 구하는 일이 더 쉬워집니다. 그럼 그 물질을 더욱 진리적으로 쓸 수 있지요. 또한 진리와 합일하는 완전한 삶이 가능합니다.
 

천지에 있어서 영(靈)의 바탕은 하늘이요, 기(氣)의 바탕은 땅입니다. 그러나 인간에 있어 정신의 바탕은 영이요, 육신의 바탕은 기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영과 기는 둘이 아니요, 정신과 육신도 둘이 아닙니다. 그런데 과거에는 영과 육을 상극(相剋)의 관계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현재는 영과 육이 상생(相生)의 관계로 변한 것입니다.
 

이렇게 영과 육을 일치시키는 일이 인생을 잘 살게 하는 방법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덕화아카데미>에 들어오는 청소년들을 위한 교육의 방향은 자명해 졌습니다. 바로 영과 육을 쌍 전시키는 것이 우리 <덕화아카데미>의 교육 방향인 것입니다. 세상에 먹고 살기 위한 공부를 가르치는 곳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육신이 먹고 사는 방법과 함께 정신의 의식주인 삼학공부를 아우르는 곳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학술공부만 하면 쓰는데 끊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공부를 하여 놓으면 일분 일각도 끊임없이 활용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의 공부 즉, 마음공부는 모든 공부의 근본이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바르지 못한 사람이 돈이나 지식이나 권리가 많으면 그것이 도리어 죄를 짓게 하는 근본이 됩니다. <덕화아카데미>에서는 바로 이 돈과 지식과 권리가 다 영원한 복이 되도록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영육 쌍 전은 ‘실낙원의 건설’을 의미하는 <덕화아카데미>의 교육 방향인 것이지요!
 

단기 4349년, 불기 2560년, 서기 2016년, 원기 101년 12월 27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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