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을 보내면서 최순실 사태에서 사상 최대 지진까지 큰 일 많았던 한 해였다.
안좋은 일이 터지면 사회 전체가 스트레스를 받고 좋은 일이 있으면 기뻐하게 마련이다.
정신과 전문의들이 올해 국민들 정신건강에 영향을 준 10대 뉴스를 선정했다.
[뉴스프리존= 김현태기자] 국민들에게 스트레스나 기쁨을 준 대표적인 사건들은 무엇인지 정신과 전문의들이 정신건강의학 측면에서 짚어봤다. 거짓말로 뒤덮인 최순실 사태가 우선 꼽혔다.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이란 기상천외한 사태에 국민들은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고있다. 9월 한반도 사상 최대규모 지진이 경주 일대를 덮쳤고, 지진을 직접 겪은 사람들은 물론, 겪지 않은 사람들까지 불안을 느끼기는 마찬가지였다.
망상에 빠진 남성이 젊은 여성을 살해한 서울 강남역 사건도 선정됐다.
‘사회가 중증 정신질환자를 어떻게 포용해야 하는가’라는 고민을 던져줬다.
반면, 성숙한 의식을 보여준 일들도 있었다. 복면을 쓴 연예인들이 노래 실력을 겨룬 TV 프로그램 인기에는 공정성을 높게 평가하는 사회의식이 투영됐다는 분석이다.
부조리한 사회를 바꾸려는 촛불집회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됐다.
▶ "절망의 끝이 희망의 시작"
전문가들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실체적 진실 규명까지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일단 한국사회가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 분노를 다스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특검 수사로 진실이 밝혀지고 잘못한 사람이 처벌받아야 스트레스가 풀리겠지만, 시간이 걸린다"라면서 "지금은 '우리나라 다 망했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됐나' 하는 자조적인 생각들을 경계할 때"라고 말했다.
자조적인 생각들이 필요 이상으로 무력감과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는 만큼 개인이 스스로 감정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정신과 전문의인 국립중앙의료원 김현정 교수도 "우리의 선택지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오로지 '내'가 잘못해서 벌어진 일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면서 "이번 사태도 결국 역사의 흐름 속에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촛불집회가 탄핵안 가결에 영향을 주고 국회 청문회에서 시민 제보가 의원들에게 실마리를 제공해주는 등 국민의 분노가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냉정하게 표출된, 정제된 분노가 이 시국에서 한국사회가 한 단계 성장토록 하는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이희수 교수는 "우리는 그간 경제적으로 괄목할 성장을 이뤘으나 사회의 품격과 정의, 시민의식은 그만큼 성장하지 못했다"면서 "쌓여온 부조리와 잘못된 관행이 이번 게이트를 통해 적나라하게 까발려졌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국민이 (촛불집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분노를 혼란이 아닌 성숙한 치유의 힘으로 바꾸고 있다"면서 "절망의 끝이 희망의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곽 교수도 "한국사회는 지금 정신적인 성장통을 겪고 있다"면서 "이 고통이 끝나면 더 나은 사회가 될 거라는 희망을 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불 밝힌 광화문 촛불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8차 촛불집회가 열린 1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참가자들이 촛불을 흔들고 있다.
▶ "'최순실 트라우마' 근본적으로는 올바른 투표로 극복해야"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로 인한 분노와 좌절감을 근본적으로 풀려면 결국 "앞으로 투표를 잘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터져 나오는 국민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민주주의 가치를 구체적으로 구현하려는 정치인과 정당을 잘 선택해 우리 사회가 실제로 나아질 때야 비로소 '최순실 트라우마'를 완전히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앙대 사회학과 이나영 교수는 "이번 게이트는 개인의 충격적인 범죄가 아닌 구조적인 여러 문제가 복잡하게 얽히고 쌓여 벌어진 것"이라면서 "마음을 편하게 다스리고 종교에 몰두하는 등의 방법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씨가 감옥에 간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며 결국 우리가 투표를 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도 "정치인들이 끊임없이 속인다 하더라도 더 똑똑한 투표로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건국대 의대 정신의학과 하지현 교수는 "정신의학적으로도 이 분노를 해소할 방법은 없다"면서 "투표를 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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