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상군의 통곡
정유년(丁酉年) 새 해가 밝았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새 해에 어떤 소망을 세우셨는지요? 저야 이제 모든 일을 정리하고 내려놓는 일을 해야 하겠지요. 그야말로 <넓고 깊고 느리게> 말이지요. 그런데 아직 무슨 미련이 남았는지 제게도 한 가지 소원이 또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이생을 마감하기 전에 아직 만나보지 못한 우리 [덕화만발가족]을 모두 만나보고 가고 싶은 것입니다. 복 중의 제일은 인연 복(因緣福)이라 했습니다. 그 인연을 골고루 만나고 싶은 것입니다. 제가 옛날의 맹상군은 못 되더라도 <덕산재(德山齋)>의 문은 언제나 활짝 열려 있습니다. 대접할 것이 별로 없어 그저 차 한 잔, 따뜻한 식사 한 끼 대접하는 것이 고작입니다.
옛날에 맹상군(孟嘗君 : ?~279)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전국시대(戰國時代)의 제(劑)나라의 정치가로서, 전국사군(戰國四君)의 한 사람이지요. 성은 규(), 씨(氏)는 전(田), 휘(諱)는 문(文)이며, 맹상군은 그의 시호(諡號)입니다.
맹상군이 진(秦) 소양왕의 초빙으로 재상이 되었으나 곧 의심을 사게 되어 죽음을 당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식객 중에 좀도둑질[狗盜]을 잘하는 사람과 닭울음소리[鷄鳴]를 잘 흉내 내는 사람이 있어 그들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탈출했다고 합니다. 그 고사를 ‘계명구도(鷄鳴狗盜)’라고 하지요.
맹상군 하면 뭐니 뭐니 해도 대단한 식객(食客)들을 거두고 잘 대접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일단 무슨 재주든 자랑할 만한 것이 있는 자는 모두 받아주기로 이름이 나서 사람들이 끊임없이 모여들었지요. 그 결과 문하(門下)에 식객이 바글바글했다고 합니다. 적게는 1,000명이었다고 하고 많게는 3,000명이라는 설까지 있습니다.
그런 맹상군이 자신의 생일을 맞아 호화로운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높은 권세에 넘치는 재물을 가진 맹상군은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음식을 차렸고, 손님들이 들고 온 선물은 방을 가득 채웠습니다. 아름다운 풍악과 미희(美姬)들의 춤을 감상하며 더없이 유쾌해진 맹상군은 술잔을 높이 들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좋다, 정말 좋구나! 이렇게 좋은 날, 나를 슬프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만약 나를 슬픔으로 눈물 흘리게 할 수 있는 자가 있다면 그에게 후한 상을 내리리라.”
그때 한 장님이 ‘앵 금’을 들고 맹상군 앞으로 나왔습니다. “비록 재주는 없으나 제가 한 번 해보겠습니다.” “좋다, 어디 한 번 해보아라! 재주껏 나를 슬프게 만들어 보아라!” 장님은 줄을 가다듬은 후 앵 금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천상(天上)의 소리처럼 아름다운 선율로 시작되었으나 점차 지옥을 헤매는 듯한 고통스러운 음률로 바뀌어갔고, 이윽고 사람의 애간장을 녹이는 듯한 연주가 이어졌습니다.
모두들 넋을 잃고 앵 금 연주에 빠져들었을 때, 장님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나니/ 세상의 모든 일 뜬구름과 같구나!/ 무덤을 만들고 사람들이 흩어진 후/ 적막한 산 속에 달은 황혼이어라」
노래가 끝나는 순간 장님이 앵 금을 세게 퉁기자 줄이 탁 끊어졌고, 앵 금 줄이 끊어지는 소리와 동시에 맹상군은 통곡을 했습니다. 인생의 무상함이 절절이 사무쳐오면서 마치 평생을 살 것처럼 행동해온 자신의 삶이 헛되기 그지없었지요.
그 날 이후 맹상군은 커다란 식당을 만들어, 매일 아침 천 명에게 국밥을 제공했습니다. 그 국밥은 누구든지 와서 먹을 수 있었으며, 천 명의 식객이 먹는 소리는 20 리 밖에까지 들렸다고 하네요.
어떻습니까? 복 중의 제일은 인연 복이고, 공덕(功德) 중의 으뜸은 보시(布施)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인연을 맺는데도 차별을 두려합니다. 자기보다 못한 사람은 기피하고 자기 보다 좋은 위치에 있는 사람만을 골라 만나려 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좋을 때가 있으면 나쁠 때도 있습니다.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고 하지 않던가요?
사람은 차별 없이 두루 만나야 합니다. 맹상군은 심지어 도둑놈과 닭 울음 잘 하는 사람과도 인연을 맺어 죽을 위기에서도 목숨을 건졌습니다. 사람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습니다. 사람은 전생에 지은 업(業)에 따라 때가 되면 받을 것은 다 받고 빼앗길 것은 다 진리께서 회수해 갑니다. 영원히 부귀영화를 누릴 것 같은 최순실도 업이 다하면 타락을 면치 못하는 것을 우리는 확연히 보고 있지 않는가요?
그리고 공덕을 짓는 데에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는 가진 것이 없어서 베풀지 못한다고 핑계를 댑니다. 불경에 ‘무재의 칠시(無財七施)’라는 것이 있습니다. 재물이 없어도 베풀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무재의 칠 시’를 알아봅니다.
1. 사신시(捨身施) : 남을 위해 자신의 몸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2. 화안시(和顔施) : 남에게 웃음으로 부드러운 표정을 짓는다.
3. 자안시(慈眼施) : 자애와 애정이 가득한 눈으로 사람을 접한다.
4. 심려시(心慮施) : 남을 염려하고 배려하고 생각한다.
5. 애어시(愛語施) : 남에게 인사를 하거나 부를 때 사랑이 넘쳐야 한다.
6. 방사시(房舍施) : 바람과 비를 피하고 마음을 편안케 하는 장소를 제공한다.
7. 사좌시(仕座施) : 옆자리에 앉을 의자를 준다든가 좌석을 양보한다.
이렇게 우리는 재물이 없어도 베풀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만약 자신이 땀 흘려 번 재물이 없으면 튼튼한 몸을 던져서라도 공덕을 쌓을 수 있습니다. 만약 몸이 말을 듣지 않으면 마음으로라도 상대방이 잘 되라고 진리 전에 빌어주는 것도 훌륭한 보시입니다. 이와 같이 공덕을 짓는 방법은 정신 육신 물질 세 방면으로 얼마든지 베풀 수 있는 것이지요.
참다운 덕인은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더 조심하는 법입니다. 우리 정유년 새 해에는 차별 없이 인연을 맺고, 어째서라도 공덕을 산처럼 쌓는 한 해가 되면 좋겠습니다. <덕산재>의 문은 올 해도 활짝 열려 있습니다. 맹상군이 집만은 못하더라도 우리 2000명의 덕화만발가족 모두가 다녀가시면 얼마나 좋을 까요!
단기 4350년, 불기 2561년, 서기 2017년, 원기 102년 1월 3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