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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김덕권 칼럼] 일일시호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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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김덕권 칼럼] 일일시호일

김덕권 기자 duksan4037@daum.net 입력 2017/01/12 09:03

▲ 덕산 김덕권, 원불교 문인협회전회장일일시호일 
 
 
몇 해 전 한 친구가 제 건강이 안 좋다는 소식을 듣고 <덕산재(德山齋>로 찾아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때는 그 친구가 부인과 사별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습니다.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부인의 물건들을 정리하다가 실크스카프 한 장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 스카프는 뉴욕을 여행하던 중에 유명 백화점에서 구입한 것이었습니다. 아주 아름답고 비싼 스카프여서 애지중지하며 차마 쓰지를 못 한 채 특별한 날만을 기다렸답니다.  
 
친구는 이야기를 여기까지 하고 말을 멈추었습니다. 저도 아무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잠시 후 친구가 말하더군요. “절대로 소중한 것을 아끼고 두었다가 특별한날에 쓰려고 하지 마. 우리가 살아있는 매일 매일이 특별한 날들이야!”  
 
옳은 말씀입니다. 지난 12월 16일 <덕화아카데미> 창립식과 저의 졸저 <사람아, 사랑아!> 출판기념회 때 아내가 못 보던 옷을 차려 입고 나왔습니다. 우리 큰 딸 애가 뉴욕에서 조금 잘나가는 의상디자이너이라 가끔 좋은 옷을 보내주었나 본데 평소 그 옷을 아끼다가 특별한 날이라 입고 나온 모양입니다.  
 
그런데 우리네 인생에 과연 특별한 날이 얼마나 될까요? 아주 특별한 날은 오지 않습니다. ‘앞으로’ ‘언젠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무슨 즐거운 일이 생기거나 기분 좋은 일이 생기면 바로 그때가 좋은 것이지요.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 : 1489~1546)은 일찍이 이런 노래를 불렀습니다.  
 
「존재하는 만물은 오고 또 와도 다 오지 못하니/ 다 왔는가 하고 보면 또 다시 오네,/ 오고 또 오는 것은 시작 없는 데로부터 오는 것/ 묻노니, 그대는 처음에 어디로부터 왔는가?/ 존재하는 만물은 돌아가고 또 돌아가도 다 돌아가지 못하니/ 다 돌아갔는가 하고 보면 아직 다 돌아가지 않았네,/ 돌아가고 또 돌아가고 끝까지 하여도 돌아감은 끝나지 않는 것/ 묻노니, 그대는 어디로 돌아 갈 건가?」  
 
그러니까 우리는 왔다가 가고 마는 것이 아니라 영생(永生)을 돌고 도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슨 특별히 좋은 날이 있겠습니까? 날마다 좋은 날입니다. 일시호일(日日是好日)이지요. 이렇듯 ‘날마다 좋은 날’이 되려고 한다면 마음에 근심과 걱정, 번뇌가 없어야 할 것입니다. 무차별(無差別)과 무분별(無分別)의 중도(中道)생활을 해야 일일시 호일이 됩니다. 
 
중도란 어정쩡한 마음자세나 마음가짐을 일컫는 것이 아닙니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정열적으로 뛰는 절대적인 마음입니다. 이 ‘일일시호일’이라는 말은 <벽암록(碧巖錄)>에 나오는 화두(話頭)로 운문문언(雲門文偃 : 864~949) 선사(禪師)의 말씀입니다.  
 
어느 보름날 운문선사(雲門禪師)께서는 대중들을 모아놓고 다음과 같이 말씀했습니다. 
 
“그대들에게 지나간 15일 전의 일에 대해서는 묻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15일 이후의 일에 대하여 한마디씩 해 보라.” 그러고는 정작 대중들의 말은 들어보지도 않은 채, 조실 방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도대체 이것이 무슨 뜻일까요?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즉, 날마다 좋은 날이란, 날이면 날마다 항상 즐거운 날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정말로 날마다 좋은 날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날마다는 고사하고 이따금씩 좋은 날도 얼마 되지 않습니다. 항상 어렵다고 징징 짜는 날이 더 많습니다. 어떻게 하면 날마다 좋은 날을 보낼 수 있을까요?  
 
한문에서 똑같은 글자가 겹치면 복수입니다. 그러므로 ‘일일(日日)’은 ‘날마다’이고, ‘호일(好日)’은 ‘좋은 날’ ‘길일(吉日)’ ‘생일(生日)’을 가리킵니다. ‘시(是)’는 ‘바로 너’라는 뜻이지요. 생일날은 왠지 기분이 좋고 잘 먹는 날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생일’이라고 해도 되고, 날마다 즐거운 날‘이라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날마다 좋은 날’이란 사실 생일도 길일도 운수가 좋은 날도 아닙니다. ‘날마다 좋은 날’이란 바로 ‘번뇌 망상이 없는 날’ ‘근심 걱정 등 번민이 없는 날’ 또는 마음이 평온하고 활기찬 날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날마다 좋은 날’이 되려면 근심과 걱정 등 번뇌가 없어야 합니다. 번뇌가 있으면 그날은 괴로운 날입니다. 이런 날이 겹치면 ‘날마다 좋은 날’은 간데없고 ‘우울한 날’의 연속입니다. 만사가 싫어지고 삶에 의욕이 없어집니다. 지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좋은 날이 되려면 마음이 평온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날마다 좋은 날’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날마다 좋은 날은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즐거움이라는 것은 무언가 운수나 재수 등 일진(日辰)에 좌우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체적인 행복, 주체적인 즐거움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날마다 좋은 날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이 된다는 것은 근심이나 걱정, 번뇌 망상이 없는 마음상태를 말합니다. 즉, 무집착(無執着), 공(空)의 상태, 깨달은 상태이지요. 그런데 ‘15일 이전의 일에 묻지 않겠지만 15일 이후의 일에 대해서 한 마디씩 해 보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깨달음의 세계는 무차별. 무분별의 세계입니다. 중도(中道). 공(空)의 입장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둘로 나눈다면 중도(中道)가 될 수 없습니다. 15일 이전은 과거입니다. 과거사를 생각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입니다. 날마다 즐거운 나날을 보내자면 먼저 번뇌에 휘둘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어제가 별 날이 아니고 오늘이 별 날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날마다 좋은 날이지요. 좋은 옷, 좋은 그릇, 금은보패 꼭 꼭 숨겨놓고 아끼다가 가면 무슨 소용입니까? 입고 쓰고 베풀고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공덕이고, 내생을 잘 살기 위한 일일시호일이지요!  
 
단기 4350년, 불기 2561년, 서기 2017년, 원기 101년 1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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