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오종준 기자
[뉴스프리존=김재현 기자]벨리댄스(영어: Belly dance, Bellydance)는 중동 및 그 외의 아랍 문화권에서 발전한 댄스 스타일을 가리키는 용어로 이들을 호칭하기 위해서 만든 서양의 호칭이다.
아랍 문화권에서는 라크스 샤르키(Raqs Sharqi, ‘동방의 춤’이라는 뜻), 라크스 발라디(Raqs Baladi ‘민족 무도’라는 뜻)으로서 알려져 있고 터키어에서는 오리안탈 단스(Oryantal dans, ‘동방의 춤’이라는 뜻)로 알려져 있다.
벨리댄스의 기원에는 여러 가지 설이 존재하지만, 지중해 세계, 중동,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12세기부터 13세기에 걸친 페르시아 제국의 정밀화에서 벨리댄스를 묘사한 그림이 있어 그 역사를 짐작케 한다. 중동 이외의 지역에서는 18세기부터 19세기 사이에 낭만주의가 유행하는 동안에 오리엔탈리즘의 예술가들이 오스만 제국의 하렘 생활을 해석해 그린 회화 속에 등장하면서 일반에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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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중동 제국의 무용수들은 다양한 세계 박람회에서 무용수들의 놀라운 기술과 연기가 이목에 공개돼 지지를 받으면서 벨리댄스는 널리 알려졌다. 무용수 중에서는 영화화된 경우도 있었다. 대표적인 경우가 단편 영화 <파티마의 춤(Fatima's Dance)>으로, 이 영화는 니켈로디언 극장에서 처음으로 개봉됐지만 ‘파렴치한 행동’이라는 비판을 받게 되면서 검열 조치를 당한다.
중동이 서양 열강에 의한 식민주의의 대상이 되고 있었던 시대에 서양의 여성 중에는 중동의 춤을 배운 뒤에 이를 모방하는 사람도 나오기 시작했다. 마타 하리가 가장 유명한 경우이지만 프랑스의 작가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도 이를 모방했다. 많은 뮤직 홀의 공연자들이 ‘오리엔탈 댄스’에 종사하고 있었지만 가끔 독자적인 해석을 그만두고 본래의 민간 전승적인 스타일로 되돌아와서 실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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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무용수로 평가받는 루스 세인트 데니스 또한 중동의 춤에 영감을 받은 무용수로, 춤에 대한 그의 접근 방식은 서양의 춤인 발레에 이방의 무도인 ‘오리엔탈 댄스’를 혼합한 것이었다. 그의 목표는 보다 뛰어난 경의를 표하기에 적합한 춤을 창출하는 것에 있었다. 이는 1900년대 초반의 서양 사회에서 여성 무용수는 이슬람 세계와 마찬가지로 도덕성이 부족한 존재라고 해서 백안시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벨리댄스와 관련된 대부분의 춤은 성별마다 따로 행해지고 있었다. 남녀가 함께 추는 춤은 매우 보기 드문 존재였다. 이는 ‘좋은 여자’는 남편 이외의 남자와는 춤추지 못하고 근친이나 여자 동료와 함께 춤추는 정도밖에 없는 관습에 따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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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습관은 악단에도 마찬가지였다. 이 때문에 여자 악단원만이 여자 무용수를 위해서 연주를 실시하게 됐던 것으로, 이것은 현재도 많은 중동의 여러 나라에서 계속되고 있다. 악단 중에는 프로 무용수가 악단과 함께 여자들의 모임에 가서 여자들이 춤을 보여주게 하고 물담배 가게의 남자들을 데리고 가서
남자 관객이 있는 연회에서 보여주는 경우도 있다.
벨리댄스는 여성의 ‘둥근 육체’ ‘부드러움’을 앞세운 스타일을 표방한다. 이는 날씬한 몸을 이상적인 것으로 여기는 다이어트 스타일과는 대조적으로, 벨리댄스에서 사용되는 대부분의 기본적인 스텝이나 테크닉은 몸의 부분마다 나뉘는 원운동이다. 이는 허리나 어깨를 바닥과 평행하게 따로 움직이는 것이다.
벨리댄스에서 포핑과 로킹은 일반적으로 무용수가 시미를 하지 않았을 때나 허리나 어깨의 움직임이 정지된 상태일 때, 유연성을 살린 곡예를 할 때의 악센트로서 사용된다. 이 움직임을 따라 복근을 회전시켜 균형을 잡고 시폰 베일이나 실크 베일 등 각종 소품으로 지탱해서 바구니나 검, 채찍처럼 보이게 한다.
김재현 기자, jaehyun32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