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된 서류를 척척 꺼내들며 자신만만해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수많은 여야 협상을 이끌며 여당의 뜻을 관철시켜온 노련미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날 선 기자들의 질문에 “청문회에서 얘기하겠다”는 말만 무표정한 얼굴로 반복했다. 지난 11일 오전 9시25분, 인사청문회를 위해 국회에 도착한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는 몰려드는 기자들을 피해 본관에 마련된 대기실로 서둘러 자리를 옮겼다. 카메라 셔터 소리가 그의 등 뒤로 길게 이어졌다.
하루 앞서 열린 청문회에서는 이 후보자와 관련한 부동산 투기 의혹, 병역 기피 의혹, 언론 통제 의혹 등이 중점적으로 제기됐다. 특히 이 후보자의 발언이 담긴 녹음파일이 일부 공개되면서 파문이 일었다. 지난달 27일 기자들과의 점심식사 자리에서 녹음된 내용이다. 이 후보자는 당시 이 자리에서 “언론인을 대학 총장과 교수로 만들어줬고, 언론사와 기자들이 곤욕을 치르도록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법 제정안)을 통과시키겠다”고 말했다. 그는 청문회장에서 이런 내용을 묻는 야당 의원들의 질문에 애초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가, 녹음파일이 공개되자 “착오가 있었다”고 말을 바꿨다. 사실상 위증을 한 것이다.
가장 걸림돌 없으리라던 초기의 낙관
야당 의원들에 의해 녹음파일이 공개되면서 그는 급격히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청문회장에 들어서며 비틀댔고, 자리에 앉은 뒤 물잔에 물을 따르면서 손을 심하게 떨기도 했다. 야당 의원들의 녹음파일 공개에 대한 여당 의원들의 반발로 청문회가 중단됐을 때, 그는 눈 둘 곳이 없어서인지 한참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곤혹스러움이 묻어났다.
시작은 늘 그렇듯, 순조로웠다. 이 후보자가 총리로 지명된 것은 지난달 23일이다. 이날 오전 10시 청와대는 정홍원 국무총리 후임의 새 총리에 이완구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내정했다고 발표했다. 낙마한 안대희 후보자(전 대법관), 문창극 후보자(전 <중앙일보> 주필)에 이어 이른바 ‘도로 정홍원’(정홍원 총리 유임) 결정은 언론에서 봤을 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으나, 이 후보자 지명은 시기가 갑작스러웠지 지명 자체는 크게 놀랄 만한 일이 아니었다. 이 후보자는 언론에 수차례 총리 후보자로 거론됐고, 후보자 스스로도 기자들과 만난 자리 등에서 총리직에 대한 의지를 직간접적으로 드러내왔기 때문이다.
총리 지명 직후 국회에서 만난 이완구 후보자는 표정을 꾹꾹 눌러 감췄다. 굳은 얼굴로, 엄중한 시기에 무거운 직분을 맡았다는 부담감을 내비쳤다. 오랫동안 고대해온 총리직을 제안받은 데 대한 기쁨과 감동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전날 밤 청와대로부터 전화를 받고, (수락 여부를) 고민하느라 밤잠을 설쳤다”며 눈도 충혈돼 있었다. “축하한다”는 기자들의 인사에 “축하를 받아야 할지, 위로를 받아야 할지…”라고 말하기도 했다. 가볍게 행동하지 않은 것이다. 총리 지명 직후 더할 나위 없이 환하게 웃으며 기자회견장에 나타난 문창극 후보자와 확연히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새해 기자회견 뒤 나타난 지지율 하락, 지난해 말~올해 초 불거진 청와대 공직기강 해이 문제, 연말정산 파동 등 최근 잇따라 터진 악재로 민심이 등을 돌리는 상황에서 국면 전환을 위한 승부수로 ‘이완구 총리 카드’를 꺼내든 것으로 보인다. 지지율 급락세를 반전시키려면 당·정·청은 물론 대야 관계까지 두루 원만하게 유지하는 게 절실하다는 판단에서다. 이 후보자는 지명 직후 그런 기대에 사뭇 잘 부응했다. 이 후보자는 내정 발표 직후 기자회견에서 “저의 마지막 공직이라는 각오로 신명을 바쳐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겠다”며 “야당을 이기려고도 않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헌신’은 그렇다 쳐도, 그동안 어떤 총리 후보자가 지명 첫 일성으로 ‘야당을 이기려고 하지 않겠다’는 말을 할 수 있었단 말인가.
총리 지명 첫 행보도 야당을 찾아가서 인사를 하는 일이었다. 그는 총리 내정 사실도 언론에 공식 발표되기 전에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에 미리 알렸다. 야당을 배려한 것이다. 야당으로부터 덕담이 흘러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문희상 당시 새정치연합 비상대책위원장은 “모처럼 정치인 출신 총리가 나와 기분에는 (청문회) 합격”이라고 말했다. 이 후보자는 또 총리 후보자에게 지원되는 차량과 운전기사 등 의전 편의도 사양했다. 호의적인 언론 보도들이 마구 쏟아졌다. ‘충청권 맹주’ ‘차기 대선 주자로 급부상’ 등의 보도들도 이어졌다.
애초 기자들 사이에서는 이 후보자가 인사청문 과정에서 큰 걸림돌은 없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평소 이 후보자 발언에 비춰 봤을 때, 그를 오랫동안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해온 ‘준비된 공직자’로 생각하기 충분했기 때문이다. 이 후보자는 자신의 병역 회피 의혹을 해명할 엑스레이 사진들을 50년 동안 자택에 보관해왔고, 40년 전 공직생활을 시작할 때의 첫 월급명세서도 갖고 있었다. 충남도지사 시절 도청 이전 예정지인 홍성에 증조부가 일제 때인 1934년 아버지에게 물려준 땅이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 토지 보상금 2400만원을 국고로 귀속시킨 일화는 유명하다. 도지사 시절, 장남 결혼식은 물론 장모상도 언론에 알리지 않고 조용히 치렀다. 그는 이런 이야기들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수시로 언급했다.
이완구 후보자를 사석에서 만나보면, “나는 ‘간단치’ 않은 사람이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는 것을 알 수 있다. 철저히 자기 관리를 해왔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한다. 2009년 이명박 대통령의 세종시 수정추진에 반발해 원안추진이라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도지사직을 내던질 정도로 ‘자리’에 연연하지 않았다는 말도 많이 한다. 기자간담회나 식사 자리에서 이 후보자를 만나거나, 취재를 위해 전화통화를 할 때면, 이 ‘간단치 않은 사람’ 발언에서 시작해 50년 된 엑스레이 사진, 첫 월급명세서, 증조부 토지 보상금 국고귀속, 장남 비공개 결혼, 도지사직을 던진 일화 등은 ‘노래방 18번’처럼, 그의 단골 레퍼토리로 자주 등장한다. 오죽하면, 정치부 국회출입 막내급 기자들인 언론사 ‘말진’들 중에는 “나는 간단치 않는 사람이다”로 시작해 이 후보자의 레퍼토리를 줄줄이 읊는 이들도 여럿 있을 정도다.
‘반쪽 총리’의 문턱에서 그는
공직생활 자료 모은 쌍둥이가방까지 준비?
그러나 실제 상황은 정반대였다. “간단치 않은 사람”의 의혹은 정말이지, ‘간단치’ 않았다. 부동산 투기 의혹, 본인 및 차남의 병역 기피 의혹, 교수 특혜채용 의혹, 논문 표절 의혹, 건강보험료 탈루 의혹, 재산신고 축소 의혹, 삼청교육대 관련 의혹, 언론 보도 통제 의혹 등 의혹이란 의혹은 죄다 터져나왔다. 그동안 낙마했거나 문제가 된 총리 후보자들의 의혹 ‘종합판’ 격이었다.
2013년 1월 말,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이긴 했으나 당선자 신분으로 새 정부 초대 총리로 지명한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은 전관예우 특혜 의혹과 부동산 투기 의혹 등이 불거지면서 총리 후보자 지명 닷새 만에 자진사퇴했다. 지난해 5월 물러난 안대희 전 대법관의 경우는 이 후보자와 같은 부동산투기·병역 관련 의혹은 없었다. 다만 2013년 변호사 개업 이후 열달 동안 최대 27억원에 이르는 거액의 수임료를 받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전관예우’ 논란과 함께 자진사퇴했다. 이어 지명된 문창극 전 주필은 친일사관을 그대로 드러낸 교회 강연이 드러나면서 낙마했지만, 이 후보자와 같은 의혹들이 문제가 되진 않았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김태호 총리 후보자가 2010년 인사청문회에서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과의 회동 사실을 속였다가 거짓말이 탄로나면서 청문회 도중 사퇴했다. 인사청문회법이 처음 도입된 김대중 정부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장상 전 이화여대 총장이 부동산 투기 의혹과 위장전입 문제 등이 불거져 국회 인준 과정인 표결에서 최종 낙마했다. 뒤이어 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장대환 <매일경제> 회장 역시, 부동산 투기 및 세금 탈루 의혹과 자녀 위장전입 등으로 국회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이완구 후보자는 총리 지명 이틀째인 지난달 24일 “차남 병역 의혹에 대해 공개 검증을 받겠다”고 선제적으로 밝혔다. 별다른 의혹 제기가 없는 상황에서 사전에 의혹을 털고 가겠다는 포석이었다. 이후 불거진 경기도 성남 분당구 대장동 땅투기 의혹에 대해서도 그는 지난달 27일 기자들에게 토지 매매 계약서와 13년 전 장인 병원 입원 기록 등을 꺼내들며 적극적으로 해명에 나섰다. 후보자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으로 출근하는 길에 기자들과 만나 이야기를 한 것이다. 이 땅은 이 후보자의 장인과 장모가 2001년 매입한 토지로 이 후보자의 부인(62)을 거쳐 차남(34)에게 최종 증여되면서 투기 의혹이 일었다.
그는 당시 기자들에게 “질문할 게 더 없느냐, (질문이) 그게 다인가”라고 물어보기도 했다. 해명할 자료가 충분히 준비돼 있다는 자신만만한 태도였다. “내가 ‘별놈’의 자료를 다 갖고 와서…”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 후보자가 공직생활 초기부터 온 가족의 자료를 모아놓은 여행용 가방과 분실에 대비해 사본을 넣어둔 ‘쌍둥이 가방’까지 마련했다는 이야기를 미담처럼 다뤘다. ‘해명 자판기’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적극적인 해명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한 것이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후보자와 관련한 의혹은 사그라들지 않고 되레 늘어갔다. 이튿날에는 이 후보자가 대장동 땅을 매입하는 과정을 직접 관할했고, 토지 매입을 권유받았다는 이 후보자 지인의 진술이 여러 언론에 보도됐다. 서울 강남 도곡동 타워팰리스 투기 의혹까지 불거지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자판기’ 해명을 듣기 위해 기자들이 통의동 사무실 앞으로 몰려들었지만, 이 후보자는 돌연 “오늘은 마음이 무겁다”고 입을 뗀 뒤, 이날 오후 2시30분에 차남의 병역 면제 의혹과 관련한 공개검증을 하겠다고 밝혔다. 더욱이 이 후보자는 “아직 장가도 안 간 자식의 신체 부위를 공개하면서 까지…. 내가 공직에 가기 위해서 비정한 아버지가 됐나 하는 생각 때문에 마음이 많이 아프다”며 눈물을 보였다. 의혹은 부동산 투기인데, 이에 대해서는 침묵한 채 아들 병역 공개검증에 나서겠다고 하니, 기자들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간단치 않은 사람’이다”라는 탄식이 기자들 사이에서 우스갯소리처럼 터져나왔다.
물 아래 가라앉아 있던 의혹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물 위로 떠올랐다. 1970~80년대 강남 아파트 투기 의혹(2월6일), 언론보도 통제 의혹(2월6일), 경기대 조교수 특혜채용 의혹(2월7일), 1차 징병검사 1급 현역 판정에 따른 본인 병역기피 의혹(2월10일), 충남도지사 시절 국외 출장에 부인 동반 의혹(2월11일), 부친 강남 아파트 우회투기 의혹(2월11일), 재산신고 누락 의혹(2월11일), 차남 건보료·소득세 탈루 의혹(2월11일) 등,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의혹들이 불거져 나왔다. 공직자로서의 기본이 완전히 무너지는 수준의 의혹들이었다. 이 후보자는 자택에 머물며 통의동 사무실로 출근을 하지 않거나, 오후에 출근하는 일이 잦아졌다. ‘완구 (의혹)백화점’, ‘이완구라’ 등의 조어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국무총리실 인사청문 준비단 관계자는 관련 의혹들에 해명을 요구하는 말에 “일일이 다 해명할 수 없다. 후보자가 청문회에서 직접 밝힐 예정”이라고 답했다. 한 총리실 관계자는 “의혹에 일일이 대응하기가 너무 벅차다”고 털어놨다.
차기 대선주자 급부상에서 바닥까지
이 후보자는 인사청문회 첫날인 지난 10일 각종 의혹에 대해 한껏 몸을 낮췄다. “통렬히 반성한다” “깊이 사죄한다” “용서를 부탁 올린다” “송구하다”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사죄드린다”며 허리를 굽히기도 했다. 다만 이튿날 오후에는 적응한 모습을 보이며 며느리 국적회복 증명서를 비롯해 자신에게 유리한 자료 등을 제출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하지만 사인간 채무와 관련한 은행거래 자료와 차남의 재산 의혹을 완전히 해소할 국세청 자료 등은 끝내 제출하지 않고 ‘뭉개기 전략’을 구사해 야당 의원들의 질타를 받았다.
총리 지명 뒤 20일 가까이 이 후보자는 롤러코스터를 탔다. 총리로 지명되며 ‘차기 대선주자로 급부상’한 그는 이후 등락을 반복하다, 각종 의혹 탓에 지금은 바닥까지 추락했다.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는 말도 과한 말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낙마까지는 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여당이 오는 16일 단독으로 본회의에서 표결해 총리로 인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가 그토록 바라던 고지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물론 야당의 동의를 받지 못한 ‘반쪽 총리’로 전락할 공산이 크다.
그는 지난해 8월10일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활약상을 그린 영화 <명량>을 보고 ‘콜백’(다시 전화 걸기)을 해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이었다. “<명량>을 보면서, (나도 이순신 장군처럼) 고통스럽고 고독하다고 느꼈다. 정치는 고독한 일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 눈치, 저 눈치 안 본다. 훗날 정치를 떠난 뒤에 나는 후세들에게 ‘이완구, 그때 지혜로운 정치인이었다’는 말을 듣고 싶다.” 과연, 후대인들은 그에 대해 어떤 말을 하게 될까. ‘반쪽 총리’의 문턱에서 이 후보는 자신의 재산 형성 과정을 밝혀줄 자료와 사인간 채무 상환 자료 등 수많은 관련 의혹들에 대한 소명 자료를 여전히 제출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