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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자살보다 섹스
문화

칼럼] 자살보다 섹스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기자 입력 2015/02/14 13:15

[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자살보다 SEX>
무라카미 류 지음, 한성례 옮김, 이룸, 2003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연합통신넷=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제목을 주의 깊게 살펴보는 것이 읽기의 첫걸음이건만 ‘낚싯줄’에 끌린 책이 적지 않다. 최근에도 몇 권 ‘당했다’. 은둔 생활 안내서인 줄 알았더니 전직 정보기관 종사자가 쓴 신분 위조 책이었다. 제목이 내 신세 같아 샀더니 그 부분은 달랑 한 쪽이었다. <자살보다 섹스>(自殺よりはSEX)는 자살과 섹스에 대한 ‘한 말씀’을 기대했는데, 외로운 현대인의 나아갈 길을 제시하겠다는 당황스러운 책이었다.

 


일본 사회의 맥락을 고려한다 해도 ‘꽝’이다. 게다가 여러 곳에서 번역 출간되다니. 무라카미 류나 출판사에 대한 감정은 없다. 그가 여성지 등에 기고한 짧은 에세이를 모은 책으로 부제는 ‘무라카미 류의 연애와 여성론’. 이럴 때 ‘ㅠ’는 정말 정확한 단어다. ‘자살보다 섹스’는 서른 살이 넘어서도 미팅에 나가는 ‘쓸모없는’(저자의 표현) 여성들에게 그렇게 살지 말라고 조언하는 세 쪽 분량의 글 제목이자 표제작(?)이다. 매력적인 남자는 미팅에 안 나온다고 한다. “극단적인 비유일지는 모르지만 자살하는 것보다는 미팅에 나가서 남자를 찾는 편이 낫고, 아이를 학대하는 것보다는 전화방에서 남자를 찾는 편이 낫지 않을까.”(96쪽) 이 책에는 ‘테러보다 퇴폐’라는 내용도 있다. “연애 열등생들이 전쟁을 일으킨다”(155쪽)는 것이다. 그의 요지는 관계를 통한 인간성 회복인 듯한데, 오해의 여지가 있다.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은 연애 ‘열등생’이 아니라 정치 경제 ‘우등생’이다.

 


하지만 나는 ‘자살보다 섹스’라는 말 자체가 흥미로웠다. 자살과 섹스는 사용 빈도에 비해 이해도가 낮은 단어다. 이 책도 자극적인 제목에 비해 내용은 안이하다. 고독을 탐구하는 작가치고는 자살과 섹스에 대한 인식은 ‘섈로 그레이브’(얕은 무덤) 수준이다. 자살할 바에야 규범을 깨고 자유롭게 살라지만, 섹스에 그런 약효가 있고 널리 복용(?)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일단 섹스(연애)를 못해서, 섹스할 기운이 없어서, 상대가 없어서 자살하는 경우라면 이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섹스는 인간의 보편적인 행위가 아니며 ‘좋은 섹스’의 조건은 흔치 않다. 사정(남)과 자원(여)을 넘어선, 자살을 극복할 정도의 치유가 되는 섹스라면 더욱 그렇다. 평생, 안전, 만족. 세 가지를 갖춘 파트너가 실재하는지 모르겠다. 있더라도 내 짝일 확률은 적다. 매력도 섹스의 기회도 양극화 시대다. 섹스를 할 수 있는 자원은 계급, 성별, 연령, 외모, 성 정체성, 개인의 가치관 등에 따라 격차가 크다.

 


남녀 통틀어 마흔이 넘도록 연애나 섹스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섹스도 시민권의 일부라서 성적 행위를 시도·실행하기 어려운 조건의 ‘성적 소수자’들이 있고 섹스리스 부부도 흔하다. 여성의 섹스는 아직도 위험하다. 모르는 사람과의 하룻밤(casual sex), ‘원 나잇’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강도를 당할 수도 죽을 수도 있다. 요는, 자살보다 섹스가 결코 쉽지 않다는 얘기다.
 
자살은 더 복잡하다. 삶이 명령이고 자살은 의지의 영역이라고 가정한다면, 의지의 폭이 얼마나 넓겠는가. 가장 일반적인 사례는, 의지도 아닌 질병(우울증)의 결과다. 우울증은 정신력의 면역 결핍으로 사소한 일도 죽을 이유가 된다. 설거지가 밀려서, 시험에 떨어져서, 실연당해서, 내 존재가 민폐이므로…. 이러한 사고 방식은 뇌 질환 때문에 생기는 증상, 인지 장애의 결과다. 질병사로서 자살 외에 의거, 순교, 소통으로서 자살도 있다. 자살과 사고사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 느린 진행형 자살(오랜 자포자기 생활), 평생 죽을까 말까를 고민하다가 육체가 그 길항을 감당하지 못해 감정의 과로로 죽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프로이트의 죽음 충동(death drive)은 잘못된 번역이다. 이 욕구는 비계획 충동이 아니라 고통을 벗어나려는 “드라이브를 거는” 강력한 열망이다.

 


대개 자살을 최악의 인생으로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사는 것은 만만한가? 사는 게 가장 어렵다. ‘자살보다 여행’도 가능하지만 기왕 ‘자살보다 섹스’라면, 자살만큼이나 섹스도 쉽지 않다.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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