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오종준 기자
[뉴스프리존=김재현 기자]면적 23.46㎢, 해안선길이 42.2km이다. 1999년 12월 말 현재 674세대에 1,840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인천항에서 남쪽으로 26km 해상에 위치한다. 최고봉은 중앙에 솟은 국사봉(國思峰:127.7m)이고, 동쪽에 대부도(大阜島), 북쪽에 무의도(舞衣島), 서쪽에 자월도(紫月島)가 있다.
원래 명칭은 연흥도(延興島)였으나 고려 말 익령군(翼嶺君) 기(奇)가 정국의 불안으로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온 식구를 이끌고 이곳으로 피신하면서 익령군의 영(靈)자를 따서 영흥도(靈興島)라고 칭했다.
사진/오종준 기자
1975년과 1984년에 신석기시대의 조개무지와 23점의 빗살무늬토기, 원시농업의 흔적이 엿보이는 농경도구들이 발견되면서 이때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것이 증명됐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에 속했고, 1018년(고려 현종 9) 수주(수원)에 속군됐고, 뒤에 인주(인천)에 속했다.
조선시대에는 남양부에 속했고, 1914년 3월 1일 경기도 부천군에 소속됐다. /1973년 지금의 옹진군에 편입됐다가 1995년 인천광역시로 통합, 편입됐다. 1270년(고려 원종 11) 배중손이 이끄는 삼별초가 강화도에서 진도로 근거지를 옮기면서 영흥도를 기지로 삼아 70여 일 동안 항몽전을 벌였고, 6.25전쟁 때에는 인천상륙작전의 전초기지로 활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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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은 대체로 굴곡을 이루고 있어 어장이 발달했고, 간조 때에는 넓은 개펄 위로 바지락.굴.소라.낙지 등의 해산물이 풍부하게 채취된다. 산이 낮고 농경지가 많아 주민의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면서, 지역 특산물로 포도와 흑염소 엑기스가 유명하다. 섬 전체에 상수리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고, 십리포해수욕장·장경리해수욕장 등의 해변에는 노송이 우거져 있어 피서철이 되면 사람들로 붐빈다.
김재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