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
언론의 자유
언론이 본질적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전제가 됨→ 자유로운 의사 표현,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 구현
시민의 알 권리에서 파생되는 권리임. 그러므로 다른 권리보다 항상 앞서는 무조건적인 권리가 아니라 생명권과 같이 더 상위의 권리 앞에서 유보되어야 할 성질의 것임
필요성
민주 정치의 토대 : 권력의 감시와 비판
사회 안정과 발전 : 시민이 사회적 토론과 결정에 참여함→ 열린 사회의 필수 조건
헌법 제21조 제1항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를 갖는다 → 사상·의견의 자유로운 표명과 그것을 전파할 자유를 의미내가 이 글에서 인간의 신체를 예를 들어 좌우대칭을 설명한 것은 바로 모든 것에 있어서 ‘균형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좌우대칭
인간의 신체(身體)를 살피면 척추를 중심으로 좌우가 대칭이다. 이 같은 좌우 대칭 현상은 비단 인간의 신체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지구상에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동물, 곤충 등)’들에게서 나타나는 공통적 현상이다. 대부분의 식물 역시 이런 경향을 보인다. 식물의 경우 발생초기에는 완전히 좌우 대칭을 이루지만 성장이 본격화되면 좌우 대칭이 일부 깨진다. 그러나 냉정히 따져보면 이 또한 줄기를 중심으로 모든 방향에서 거의 대칭을 이룬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지 그 이유를 누군가가가 밝힌다면, 발견자로서 그의 위대함은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 경과 버금간다고 할 것이다.
앞서 제기한 문제에 대해 나는 모든 생물의 발생과정에 중력이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을 평소 하고 있다. 즉 대부분의 생물이 지표면과 수직상태에서 생활하게 되는 데, 이는 중력 작용에 대한 일종의 반작용이다. 따라서 생물의 신체가 좌우 대칭을 이루지 않을 경우 중력에 의해 균형상태를 이룰 수 없다. 만일 좌우 비대칭형인 생물이 발생하면 지표면에서 균형을 회복하기 위해서 이 생물체는 엄청난 에너지를 사용해야 한다. 이처럼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개체는 지구상에서 결코 오래 생존할 수 없다. 결국 인간을 포함하여 지상 생물의 신체가 좌우 대칭을 이루는 것도 중력 작용으로 인해 사용되는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 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한다.
인간의 신체와 중력균형
앞서 인간을 포함하여 지상 생물 신체 대부분이 좌우 대칭인 것과 이 같은 좌우 대칭이 지상에서 에너지 사용을 최소화 할 수 있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이유로 모든 생물은 발생초기 꼭 좌우 대칭을 이룬다고도 설명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생물은 발생 이후 성장과정에 발생 초기의 좌우대칭이 깨어진다. 특히 식물의 경우는 그 현상이 더 심하다. 다만 동물이나 기타 곤충 등과 같이 이동이 자유로운 개체는 발생시부터 이룬 좌우 대칭을 일생동안 유지한다. 다만 상해라든가 기타 아주 특별한 이유로 좌우대칭을 잃게 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인간의 경우 신체는 발생 후 죽음에 이르기까지 좌우대칭을 유지하나 상해 등에 의해서 좌우대칭이 깨어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이 경우에 일어나는 변화를 살펴보면 우리는 매우 신기한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신체의 개별기관의 기능과 관련이 있으며, 발생 이후 성장에 따른 환경의 작용이 신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그리고 (상해 등에 의해) 변화된 신체기관은 신체기관 자체의 변화를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 지를 보여 준다.
인간의 신체를 예로 들어 보다. 신체의 경우 왼손이나 오른 손이나, 몸통을 중심할 때, 그것들이 위치한 곳은 다르지만 (물건을) 집거나 들거나 자르거나하는 등의 제 기능은 같다. 다만 어느 쪽을 더 자주 사용하는 가에 따라 그것이 일할 수 있는 능력의 크기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그렇지만 그 최대 능력은 원천적으로 ‘제한적’이다. 그런데 상해 등 기타 이유로 왼 손이나 오른 손 중 어느 한 쪽을 잃은 경우 다른 한 쪽의 기능이 크게 강화된다. 이는 자주 사용하는 데에 따른 것이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신체의 이런 기능 역시 이를 통해 깨진 ‘중력균형(지상의 생물이 새로운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몸체가 지표면과 수직의 균형을 이루는 상태)’을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게 되는 것이다.
유기적 조직으로서의 사회와 언론
정상적인 상태에서 인간의 신체 중 (좌우대칭을 이루는) 두 손의 기능과 능력은 거의 같다. 다만 두 기관이 함께 기능할 때 그 능력은 배가 된다.
이런 이유로 대부분의 일을 좌우기관이 함께 수행한다. 인간의 신체가 이렇게 기능하는 것은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는 신체적 통일성에 기초해있다. 이 신체적 통일성을 관장하는 기관이 우리의 뇌(두뇌)이다. 뇌는 신경망을 통해 신체의 모든 기관을 동시적으로 관장한다. 이 점은 일상에서 우리가 흔히 경험하는 일이므로 누가되었든 굳이 그것에 대한 증명까지 요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또 다른 신체의 대칭기관인 귀의 경우 왼쪽 귀로는 팝을 듣고, 오른 쪽 귀로는 트로트를 각기 따로 동시에 들을 수는 없다.
아무튼 이로써 인간의 신체는 좌우 기관 모두 동시적이며 또한 유기적(有機的)이다. 기능적인 측면에서 왜 하나만 있으면 될 것을 굳이 두 개를 만들었을까? 이 점은 바로 일하는 능력, 곧 생존능력을 배가하기 위한 자연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사회 역시 유기적이기는 하나 통일성 혹은 작용반작용의 동시성 등의 면에서 인간의 신체와는 다르다. 만일 사회의 유기적 관계 정도가 인간의 신체와 같아진다면, 이런 사회야 말로 전 인류가 꿈꾸는 이상사회일 것이다.
이와 더불어 사회가 진화하고 있다면, 사회진화의 내용 역시 사회조직이 인간의 신체구조와 같은 방향, 즉 통일성과 상호 작용 반작용의 동시성을 확보하는 쪽이 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사회적 유기의 정도를 크게 높이는 통신망으로서의 인터넷의 등장이나 기타 ‘로켓(머지않아 이 또한 주요한 이동수단이 될 것이다)’, 고속철도와 같이 매우 빠른 교통수단의 등장 역시 ‘사회조직의 유기체적 요구’에 따른 것이라고 하겠다.
이외에도 사회적 유기(有機)의 정도를 높이는 사회적 도구들 중 대표도구로서 언론사를 들 수 있다. 어쩌면 앞서 말한 인터넷이나 교통수단 등은 사회적 유기의 정도를 높이는 도구로서 기능한다고 할 수 있다. 즉 인류는 이들 도구를 활용해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 혹은 집단의 생각 즉 지식으로서의 정보를 전달하거나 상호 교환한다.
이를 통해 사회의 진화 즉 사회적 유기(有機)의 정도를 높여 간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 도구가 있다고 한들 무조건적으로 사회적 유기(有機)의 정도가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들이 운반하는 지식으로서 정보의 양과 질에 따라 사회적 유기(有機)의 정도를 더 높일 수도 더 낮출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 도구와 함께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앞서 말한 ‘정보의 양과 질’이다. 물론 이 지식으로서 정보를 생산하는 곳은 국가를 비롯하여, 개인, 기업 기타 학교, 각종 연구단체 등이 있다. 물론 이들이 스스로 자신들이 생산한 각종 지식으로서의 정보를 앞서 말한 보조도구를 사용하여 필요로 하는 곳에 직접 전달하기도 하지만 이 경우 시 공간적 제약으로 인해 널리 확산시키는 데에는 실패한다.
바로 이런 실패를 극복해주는 사회적 도구 중의 또 다른 하나가 바로 언론(사)이다. 언론(사)는 앞서 말한 도구를 사용해 자신들이 가공한 팩트(Facts)인 뉴스뿐만 아니라 지식으로서의 정보 또한 동시 다발적으로 전달한다. 언론(사)의 이러한 기능은 사회조직의 유기적 정도를 크게 끌어올린다. 이런 이유로 언론(사)의 사회적 기능이 점차 강화되는 등 중시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언론(사)의 경우 사회 내외부에서 생산된 지식으로서의 정보에 대해 제일먼저 접근할 수 있는 권한과 함께 그것과 관련된 모든 (회의적) 사항에 대해 일단 사전확인작업 즉 검증 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사회내부에서 생산된 뉴스나 기타 지식정보 등을 진실 여부를 가늠한다.
이를 통해 해당 언론(사)은 관련 뉴스와 함께 지식으로서 정보에 대한 정확성과 안정성 등 그 품질을 검증하게 된다. 이로써 언론기관으로부터 전달받은 각종 뉴스 및 지식으로서의 정보의 정확성, 안정성, 신뢰성 등은 개인 혹은 기타 검증되지 않은 정보생산업체로부터 직접 전달받는 것보다 월등히 우월하다.
언론의 기능
물론 기존 언론의 경우 팩트(Facts)인 뉴스의 전달 기능과 함께 사회현상에 대한 비판과 견제기능을 중시했다. 그런데 최근 언론은 앞서 말한 기능과 함께 뉴스해설 기능 또한 강화하고 있다. 언론은 이를 통해 여론을 조성하는 보다 적극적으로 사회적 역할까지 수행한다.
이와 더불어 정보화 사회의 진전과 함께 최근 언론의 기능 중 보다 강조되는 부문이 바로 앞서 제기한 언론의 지식으로서의 정보에 대한 검증 및 사회현상에 대한 직접 검증, 그리고 그것에 대한 해설기능으로서의 탐사기능이다. 향후 언론은 뉴스전달뿐만 아니라 이 같은 탐사보도의 기능이 오히려 더 크게 강조될 것이다.
한국의 언론시장
언론(사)의 주요 역할 선택은 언론사의 수입구조를 결정한다. 특히 언론시장이 오픈마켓으로 변한 지금 하루에도 수 개의 언론사가 새로 문을 열기도 하고, 또 닫기도 한다. 지금 한국의 언론시장은 조선/중앙/동아를 근간으로 하는 중안 일간지들과 지방일간지, 인터넷 신문, 기타 지역신문을 비롯한 특수신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 물론 방송통신 역시 이 분야에 속하지만 이 부문에는 아직 진입장벽이 많이 남아 있다. 따라서 이 논의에서 방송통신 부문은 제외한다. 지금 국회는 이 부문에 대한 시장개방을 위한 미디관련법 제정을 놓고 여당과 야당이 극렬하게 대치하고 있다. 급기여 야당인 민주당은 만일 여당인 한나라당이 직권 상정의 등의 방법을 통해 미디관련법을 국회본회의에서 의결할 경우 의원전원이 사퇴한다는 배수의 진까지 치고 있다(2009년 7월 21일 현재).
이 외에도 정기간행물로서 잡지 역시 언론기능을 수행하지만, 앞서 말한 일반 신문사와는 그 성격이 약간 다르다. 사실 잡지의 경우 발행목적이 명시되어 있어서 다룰 수 있는 내용 또한 일반 신문과는 사뭇 다르다. 신문 역시 발행목적과 대상, 유가지 여부, 기타 취재대상 등을 종합일간지와 특수지 등에 따라 각기 달리 규정 해놓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신문사는 정치, 경제, 사회, 국제, 연예 부문 등의 뉴스를 중심으로 공통적 내용들을 다룬다. 이 외에도 뉴스를 직접 생산하지는 않지만 그것을 전달하는 각종 포털 사이트의 기능 역시 언론사 못지않다.
문제는 언론사의 수입구조와 관련이 있는 광고시장의 크기다. 앞서 지적한 대부분의 언론기관은 기사판매, 신문판매 및 광고수입 등에 의존하지만, 공고수입이 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 물론 통신사인 연합통신의 경우 예외적으로 일반 신문사를 대상으로 기사를 제공하는 방법으로 수익을 창출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처럼 기사판매, 신문판매, 광고 등을 통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신문사는 겨우 몇 손가락을 꼽을 정도다. 나머지 신문사, 특히 인터넷 신문사의 경우 수익을 거의 내지 못하며, 특별 후원사의 후원금으로 겨우 꾸려나가는 실정이다.
바로 이 특별 후원금의 경우 기사의 대가성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인터넷 신문사의 경우 기사의 성격 혹은 논조 등이 특별후원기관의 정치적 성향을 반드시 반영한다. 이런 이유로 현재 운영 중인 대부분의 인터넷 신문은 보수 세력을 대변하거나 아니면 진보진영을 대변하는 소위 정치세력의 대변지 역할에 주력한다.
이런 이유로 우리가 늘 강조하는 언론의 (정치적) 중립적 기능을 지켜내는 신문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나마 경영여건이 좋은 조/중/동을 비롯한 메이저급 일간지들조차도 기사의 논조가 편향성을 띄는 등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이 지경이면 나머지 일간 신문사들조차 보나마나 마찬가지다.
이 문제는 우리의 언론시장 규모가 그만큼 작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회분열과 언론
우리사회의 분열 구도는 언론에 의해 고착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지역주의와 함께 보수/진보의 대결이라는 갈등의 현행 정치구도 역시 언론에 의해 더욱더 강하게 고착화 시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시장 구조 상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는 언론(사)으로서는 이런 경향을 결코 피할 길이 없는 셈이다.
구체적으로 조사해보지 않았지만 일간지로 조/중/동을 중심으로 하는 보수신문과 일간지로는 유일한 한겨레신문을 필두로 신문사로서 일정부분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인터넷 신문의 경우 대부분 진보성향을 보인다.
이외에 우후죽순처럼 난립해 있는 인터넷 신문이나 지역신문 등도 그 색깔이 분명하다. 즉 인터넷 신문을 포함하여 수많은 신문 종의 경우 진보세력인 민주당을 옹호 하는 기사 작성에 주력하든지, 아니면 한나라당과 정부를 지원하는 기사를 내보내는 형태로 분화되어 있다.
언론의 이 같은 분화는 정치적 분열보다 더 강한 측면이 있다. 언론이 이같이 분화된 데에 작용한 것 역시 해당 언론기관의 수익창출과 연계 되어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결론
우리의 언론시장 규모는 작고, 시장 여건 또한 열악하다. 이로 인해 대부분의 언론기관들 모두 특정의 수익 창출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 중의 하나가 정치색(이념)을 앞세운 언론의 분화다.
이 같은 언론의 분화는 정치집단 간 정치적 갈등을 부추기는 한편 종래 사회분열을 고착화 시키고 있다. 이유야 어디 있든지 간에 언론기관은 스스로의 기능과 역할에 충실해야 하지만, 이와 함께 이념적/ 정치적 중립 또한 반드시 지켜나가야 한다.
이런 견지에서 보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언론인은 좌와 우 모두에게서 기사를 탐사하는 등 균형적 시각을 견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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