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부처 소폭개각에 그쳐, 과감 결단 대신 안전한 길 택해
김기춘 사의 수용으로 최악은 모면, 후임엔 권영세 등 10여명 하마평
[연합통신넷= 김현태기자] 박근혜 대통령은 17일 통일부장관에 홍용표 청와대 통일비서관을 발탁하는 등 4개 부처 장관(급)에 대한 개각인사를 단행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이완구 신임총리의 제청을 받아 이러한 내용의 인사를 단행했다고 윤두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발표했다.
국토교통부장관에는 유일호 새누리당 의원이, 공석인 해양수산부장관에는 유기준 새누리당 의원이, 장관급인 금융위원장에는 임종룡 농협금융지주회장이 각각 내정됐다.
청와대ㆍ정부의 인적쇄신을 기다린 민심의 요구는 '박근혜 대통령이 스타일도, 사람도 확 바꾸라'는 것이었다. 박 대통령의 '과감한 결단'은 여권의 총체적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으로 꼽혔다.
청와대가 설 연휴 직전인 17일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교체를 공식화한 것에는 변화를 바라는 민심을 일정 부분 수용했다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청와대는 김 비서실장의 후임자를 내놓지 못하고 개각 폭도 소폭에 그쳐 국민의 기대를 충족시키지도, 인적쇄신 논란을 완전히 잠재우지도 못했다.
김기춘 비서실장 교체 공식화…후임은 안개 속
청와대는 박 대통령이 김 비서실장의 사의를 수용했다는 사실을 전격 공개했다. 물음표로 남아 있던 김 비서실장의 교체 문제를 적극적으로 정리하는 모양새를 취한 것이다. 오전까지만 해도 '김 비서실장이 후 설 연휴 이후에도 당분간 자리를 지키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분분한 터였다. 청와대로선 김 비서실장의 교체 여부가 쇄신 의지와 진정성의 잣대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만큼, 더 이상 침묵으로 일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여권 관계자는 "전국의 민심이 뒤섞이는 설 연휴에 '새 내각 출범'이 아닌 '또 다시 유임된 김 비서실장'이 회자돼 민심이 더 악화하는 것을 막아야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김 비서실장 후임 인사는 끝내 공개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이 1월12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김 비서실장을 한시적으로 유임시키겠다는 뜻을 밝힌 뒤 한달 여가 지났음에도 인선을 매듭짓지 못한 것이다. 청와대가 승부수로 발탁한 이완구 신임 국무총리는 이미 상처를 입었고 새누리당은 '국민을 실망시키지 않는 인적 쇄신'을 압박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박 대통령과 호흡이 맞으면서도 국민에 감동을 줄 수 있는 인사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윤두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후임 비서실장은 설 연휴가 지난 뒤 적절한 시일을 택해 발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모호한 시간표를 제시한 것은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이다.
올 들어 청와대 차기 비서실장 하마평에 오르내린 인사는 약 10명에 이른다. 권영세 주중대사와 홍사덕 민화협 대표상임의장, 현경대 민주평통 수석부의장, 안병훈 기파랑 대표이사, 김병호 언론재단 이사장, 윤병세 외교부 장관, 황교안 법무부 장관, 한덕수 전 국무총리,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장, 김원길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이 본인 의사나 현실성과 상관 없이 거명됐다. 이 중 일부에 대해서는 청와대가 인사 검증을 했다는 얘기도 돌았다. 청와대가 뜸을 들이는 것을 놓고 '제 3의 깜짝 인물을 찾아보려 하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무성한 가운데 박 대통령의 취임 2주년(이달 25일) 전에는 비서실장 인선을 완료할 가능성이 높다.
'안전 청문회ㆍ국정 안정' 위한 소극적 개각
청와대는 해양수산부와 국토해양부, 통일부, 금융위원회 등 4개 부처ㆍ기관에 대해서만 개각을 단행하고 장관 두 명을 친박계 의원으로 채움으로써 '전면 쇄신' 대신 '안전한 길'을 택했다. 일부 장관 후보자들이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낙마하거나 자질 논란이 벌어져 국정동력을 낭비하는 것을 우려한 선택이다. 유기준(해수)ㆍ유일호(국토해양) 장관 후보자 등 의원 출신 인사와 관료 출신인 임종룔 금융위원장 후보자는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청문회를 통과할 공산이 크다.
박 대통령은 전국 단위 선거가 없고 임기 반환점을 도는 올해 경제 혁신과 공공부문 개혁 등 국정과제를 강하게 밀어 붙이기 위해 무엇보다 정부와 정치권의 안정을 원한 것 같다. 이완구 총리 검증 과정을 거치며 더욱 심화한 청와대의 '청문회 트라우마'가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이번 개각은 파격적 쇄신을 요구하는 민심과는 거리가 멀다. 개각 단행 전 일부 청와대 참모들은 "현 정부 출범 이후 닥친 최악의 위기를 소폭 개각으로 돌파할 순 없다"며 중ㆍ대폭 개각을 건의했으나 수용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로써 설 연휴 이후에도 인적쇄신 문제가 두고두고 청와대에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지난 해 세월호 참사 직후인 6월 단행한 개각에서는 국무위원 7명을 바꿨다.
유기준, 한나라 천막당사 시절 정계 입문… 친박연대 이끌며 탄탄한 입지
유 후보자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니아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은 새누리당 내 대표적 ‘경제 정책 전문가’이기도 하다. 안종범 현 청와대 경제수석 등과 함께 복지공약 등 박 대통령의 민생 정책 밑그림 그리기를 주도한 경험도 있다. 하지만 재정ㆍ조세 전문가로, 국회에서도 주로 기획재정위, 정무위 등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주택이나 교통 분야에 대해서는 전문성이 모자란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유기준 후보자
▲1959년 부산 출생 ▲동아고 ▲서울대 법대 ▲미 뉴욕대 법학 석사 ▲제25회 사법시험 합격 ▲17ㆍ18ㆍ19대 의원 ▲새누리당 부산시당위원장ㆍ최고위원 ▲19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
▦유일호 후보자
▲1956년 서울 출생 ▲경기고 ▲서울대 경제학과 ▲미 펜실베니아대 경제학 박사 ▲KDI 연구위원 ▲조세연구원장 ▲18ㆍ19대 의원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비서실장 ▲새누리당 대변인ㆍ정책위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