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대 초반 인권운동가로도 활약한 미국의 변호사 클래런스 대로는 촌철살인의 경구를 많이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나는 어렸을 적에 누구나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이제 나는 그 말을 믿기 시작했다.” 이 말도 그가 남긴 유명한 어록 가운데 하나다. 기대에 못 미치는 대통령, 뽑아 놓고 보니 무능한 대통령, 고귀한 영혼과 탁월한 능력과는 거리가 먼 대통령 등에 대한 실망감의 표현이 참으로 신랄하면서도 위트에 넘친다.
어느 나라든 이상적인 대통령상과 현실 대통령의 모습 사이에는 간극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말을 한국 상황에 대입해보면 단순히 위트나 유머 차원을 넘어서는 씁쓸함이 전해져온다. 단지 지금의 대통령뿐 아니다. 예전에는 전혀 대통령감으로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언제부터인가 ‘차기 대선주자’의 반열에 올라 있는 것을 보노라면 저절로 대로의 말이 떠올라 쓴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다.
추측이지만 이완구 총리도 어렸을 때부터 대통령의 꿈을 키워온 사람의 하나일지 모른다. 그 정도의 능력과 외모, 경력이라면 그런 야망을 가질 법도 하다. 실제로 그의 삶을 들여다보면 ‘출세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한다’는 신념 아래 끊임없이 전진해온 역정이 생생히 느껴진다. 단지 기회주의적 처신이나 편법적인 부의 축적 등만이 아니다. ‘사랑과 야망’ ‘청춘의 덫’류의 통속성 짙은 드라마도 그를 따라다닌다. 하지만 오뉴월의 서리는 내리지 않았고, 그는 이제 ‘1인지하 만인지상’의 영광스런 자리에 올랐다.
그의 총리 인준이 이 사회에 던져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누구나 총리가 될 수 있다! 병역의 의무를 다하지 않아도, 부동산 투기로 떼돈을 벌어도, 사람을 헌신짝처럼 버려도 총리 자리에 오르는 데는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심지어 새누리당의 한 의원은 국회 인준 표결에 앞선 발언에서 세종대왕의 인재 등용을 들먹이며 “정치적 수완이 청렴함보다 낫다”는 말까지 했다. 아마도 황희 정승을 가리키는 말일 듯싶은데, 이완구씨의 능력이 영의정만 18년을 지냈다는 황희 정승급에 해당하는지도 의문이지만, 청백리의 대명사라는 세간의 이미지와는 달리 대사헌 시절 황금을 뇌물로 받아 ‘황금 대사헌’이라는 별명까지 붙은 두 얼굴의 사나이 황희를 굳이 21세기 총리의 표상으로 내건 발상도 놀랍다.
이로써 이 나라는 정통성을 정면으로 의심받는 대통령과, 도덕성 하자투성이 총리가 앞장서 이끄는 나라가 됐다. 이 ‘환상의 콤비’가 다스리는 나라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분명한 사실 하나는 이 조합은 ‘선순환의 시너지 효과’보다는 ‘악순환의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는 점이다. 대통령이 국정원 선거부정의 수혜자라는 생각은 국민의 마음속에 감정의 응어리로 깊이 침전돼 있다. 그런데 대통령은 침묵과 외면으로도 모자라 도덕성 흠집투성이 총리 임명 강행이라는 돌멩이를 국민 가슴에 하나 더 얹었다.
대통령과 신임 총리의 관계도 선순환의 시너지 효과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대통령은 소통과 위임, 총리는 당당함과 소신이란 단어에 다가갈 때 비로소 시너지 효과가 나게 돼 있다. 하지만 상황은 정반대다. 인준 과정에서 대통령에게 큰 빚을 진 총리는 주눅과 눈치로, 대통령은 무시와 위압으로 더욱 무장할 것이다. 새누리당 일각에서는 아직도 책임총리니 쓴소리 총리니 하는 주문을 내놓지만 그런 기대는 일찌감치 접는 게 좋다. 정통성의 위기, 도덕성의 피폐, 불통의 리더십은 앞으로 계속 삼박자를 이루며 정권의 발목을 붙잡는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어쨌든 신임 총리가 취임했으니 덕담을 건네는 게 예의일 듯싶다. 우여곡절을 거치며 어렵게 총리가 된 만큼 더욱 분투하길 기원한다. 지금 이 시대 총리에게 요청되는 과제가 무엇인지는 본인이 스스로 잘 알 것이다. 다만 이 말 하나만큼은 가슴속에 새겼으면 한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누구나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들어왔다. 하지만 이제는 그 말을 믿지 않게 됐다.” 누구나 총리가 될 수는 있어도 대통령까지는 곤란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