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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김덕권 칼럼] 홍곡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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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김덕권 칼럼] 홍곡지지

김덕권 기자 duksan4037@daum.net 입력 2017/03/04 12:05

홍곡지지
 

 
오래전 [덕화만발]을 만들 때의 일이 생각납니다. 나름대로 큰 뜻을 품고 정열을 불사르고 있을 때에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어떤 인사가 이 정도의 글과 몇 사람 되지도 않는 회원들을 가지고 어찌 맑고 밝고 훈훈한 세상을 만들 수 있겠느냐고 시비를 걸어 마침내 다음(daum)에서 퇴출을 당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세상에 이럴 수가? 그로부터 7년의 세월을 우리 덕화만발 동지들은 똘똘 뭉쳐 오늘의 작은 영광을 그려 낼 수가 있었습니다. 옛말에「연작안지 홍곡지지(燕雀安知 鴻鵠之志)」라는 말이 있습니다. “제비나 참새 따위가 어찌 기러기나 고니의 뜻을 알겠느냐”는 말로 곧 평범한 사람이 영웅의 큰 뜻을 알리가 없다는 뜻이지요.
 

 
이 말은《사기(史記)》<진섭세가(陳涉世家)>에 나옵니다. 진(秦)나라는 수백 년이나 지속되었던 전국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기원전 221년에 천하를 통일하였지요. 그러나 폭정으로 민심을 잃어 통일 15년 만에 망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진 멸망의 첫 봉화를 올린 이가 양성(陽城)에서 남의 집 고용살이를 하는 진승(陳勝)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진승이 밭에서 일하는 도중에 잠시 지친 몸을 이끌고 쉬는 틈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탄식이 새어 나왔습니다. “이 놈의 세상, 뭔가 뒤집어 놓아야지. 원, 이래가지고는 어디 살 수가 있나.” 그러자 주위의 머슴들이 일제히 비웃으며 말했습니다. “흥, 머슴 주제에 무엇을 하겠다고?” 그러자 진승이 탄식하듯이 말했지요. “제비나 참새가 어찌 기러기와 고니의 뜻을 알리오!”


 
진시황이 죽고 아들 이세(二世) 호해(胡亥)가 뒤를 이었지만 포악함과 사치는 아버지 시황제보다 더 심했습니다. 백성들은 살기가 어려웠지만 불만이 있어 항거하는 자에게는 삼족을 멸한다는 형벌이 두려워 불평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그 후에 진승은 오광(吳廣)과 함께 징발되어 만리장성(萬里長城)을 수비하러 떠났습니다. 일행 9백 명과 같이 떠나게 되었는데 대택(大澤)이라는 곳에 와서 큰 비를 만나 꼼짝할 수가 없었습니다. 도저히 기일 내에 목적지까지 간다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이럴 경우에 장성에 도착하면 참형(斬刑)에 해당되었으므로 그럴 바에는 반란을 일으켜 보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내 진승과 오광 두 사람은 뜻을 같이하고 인솔자인 징병관을 죽인 다음 군중들을 모아 놓고 말합니다.


 
“어차피 우리는 행군이 늦었으므로 우리가 목적지에 도착해도 죽게 된다. 설사 죽음을 당하지 않더라도 수비병들은 열에 육칠 명은 죽는다. 이왕 죽을 바에는 사내대장부답게 이름이나 날리자, 왕후장상(王候將相)이 어디 씨가 있다더냐?” 이 말을 듣고 모두 와! 하고 호응해왔습니다.
 

 
두 사람은 파죽지세로 주위를 공격하여 함락시키자 수많은 백성들이 가세해 왔습니다. 마침내 진승은 나라 이름을 ‘장초(長楚)’라 하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습니다. 이것이 세계 최초의 농민봉기였습니다. 후에 사마천은 진승의 이 같은 업적을 높이 사《사기》에서 진승을 제후의 반열에 올려 기록함으로써 농민의 저항권을 인정한 것입니다.


 
이때부터 연작은 소인배나 하찮은 사람, 홍곡은 군자나 큰 뜻을 품은 사람을 가리킬 때 쓰이는 말이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제비나 참새가 어찌 큰 기러기나 백조의 뜻을 알 수 있겠습니까? 무릇 사람들이 크게 실수하는 것 중 하나가 성급함입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것으로 전부를 판단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지요.


 
어떤 화가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어찌 밑그림만 보고 잘 그리고 못 그렸는지를 판단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가 뛰어난 화가인지 아닌지는 완성된 그림을 봐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이든 조급함은 화를 불러옵니다. 소인배들은 눈앞의 이익에 연연하여 말하고 행동합니다. 그러나 대인은 큰 뜻에 따라 나아갑니다. 그 어떤 자가 진정 큰 인물인지, 아니면 대인을 가장한 범인(凡人)인지를 판가름하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는 법입니다.
 

 
2002년 월드컵 때, 거스 히딩크 감독이 처음 국가대표 축구팀을 맡았습니다. 그 때, 많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그를 비난하고 조롱했었지요. 평가전에서 5 : 0으로 지자 ‘오대영’이라는 별명까지 붙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그는 뛰어난 능력으로 한일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팀을 4강까지 이끌었습니다. 지금 그를 욕했던 사람들은 대체 뭐라 말할까요?
 

 
가끔은 눈앞에 보이는 것이 말이 안 되는 것같이 보이더라도 자중하며 지켜보는 것이 나을 때도 있습니다. 어떤 큰일을 앞둔 상태에서 가장 두려워해야 할 일은 바로 ‘내분’입니다. 내분이 일어나면 어떤 전투에도 승리할 수 없습니다. 내분은 각자의 이해관계 때문에 발생합니다. 판세가 불리해도 굳은 결의로 일심합력 해 나가면 판을 뒤엎을 수도 있습니다.


 
초(楚)나라는 오직 어진 이를 보배로 삼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덕화만발에서는 오직 신심(信心)있고 공심(公心)있는 모든 인재를 덕화만발의 보배로 삼아야 합니다. 맑고 밝고 훈훈한 덕화만발의 세상을 만들어 가는 데에는 그 사업의 주인인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덕화만발에서는 가족들의 철저한 공심과 혈심(血心)가진 동지들을 실다운 보배로 삼습니다.


 
이제는 우리 덕화만발을 아무도 폄훼 하거나 시비하지 못합니다. 또 초창기에 우리들에게 시비를 걸었던 분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분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그분이 건 시비가 오히려 우리를 분발시켰고, 우리를 발전시킨 원동력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당장에는 이겼다 할지라도 교만하고 방심하면 다음에는 질 날이 올 것입니다. 반대로 당장에는 졌다 할지라도 겸손하고 분발하면 다음에는 이기는 법입니다. 이와 같이 방심하지 않는 데에 성공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크게 성공한 것은 아닙니다. 이제 겨우 초창기의 간고한 때를 벗어난 정도일 것입니다.


 
참새가 어찌 대붕(大鵬)의 뜻을 알겠습니까? 우리 원(願)은 큰 데에 두고, 공(功)은 작은 데부터 쌓읍시다. 대우에는 괘념(掛念)치 말고 공덕 짓기에만 힘을 쓰면 자연히 큰 공과 큰 대우가 돌아오기 마련입니다. 연작의 입방아로는 홍곡의 대원(大願)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 누가 뭐라 해도 묵묵히 뚜벅 뚜벅 홍곡지지의 큰 뜻을 펼쳐 가시지요!


 
단기 4350년, 불기 2561년, 서기 2017년, 원기 102년 2월 28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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