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수업
인간으로 태어나 사랑 한 번 안 해 본 사람이 있을까요? 저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 나이에 이르도록 많은 사랑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은 과연 무엇인지 확실히 깨치지 못한 것 같아 사랑수업을 한 번 받아보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사랑은 가장 따뜻한, 가장 바람직한 인간관계입니다. 또한 그러한 관계를 맺고 지켜가고자 하는 마음이자 마음의 움직임을 사랑이라 하지 않을까요? 뜨거운 가슴을 가진 사람, 그리고 영성(靈性)을 갖춘 사람이 서로 유대(紐帶) 또는 사귐을 갖고, 그것들을 이어가고자 하는 마음이 곧 사랑일 것입니다. 보통 애틋하다고 표현되는 그리움, 간절하다고 말하는 마음의 움직임을 포함하는 소망, 열정, 욕망 등이 사랑이라고 생각되어 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 면에서 ‘마음을 준다.’ 또는 ‘마음을 바친다.’라는 말로, 또는 ‘정을 준다.’ 등의 말로 사랑이라는 행위를 표현해 온 것은 자못 뜻 깊은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전통적으로는 서로가 서로를 위하고 아끼고 귀히 여기고 중히 여기고 하는 일을 사랑의 구체적인 징표라고 믿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공경하고 섬기고 하는 것, 즉,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대하는 마음의 쓰임새가 사랑이었는가 하면, 귀여워하고 예뻐하는 손윗사람이 손아랫사람을 대하는 마음의 바탕 역시 사랑이라고 일컬어져 왔습니다.
그 밖에 보살핌, 돌봄, 베풂 등과 같이 시혜(施惠)라고 표현될 만한 마음씨 역시 사랑이라고 믿어 왔습니다. 그리고 소유욕, 욕정이 엉킨 남녀 간의 쾌락충동 역시 사랑일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은 복합적인 인간심성인 만큼, 거기에는 미더움, 기쁨이 따르게 마련이고, 도덕심 또는 윤리의식도 수반되게 마련인 것입니다.
동양에서는 인(仁) · 자비(慈悲)라는 사상이 사랑과 통합니다. 인은 혈연에 뿌리를 둔 사랑에서 생겨나 인연이 없는 사람에게까지 확대됩니다. 불교에서의 ‘자(慈)’는 진정한 우정이며 ‘비(悲)’는 연민과 상냥함을 뜻합니다. 여기서 서로 상대를 연민하고 위로하는 사랑이 생겨나는 것이지요.
그리스도교에서 예수는 참된 사랑이 자기희생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스스로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어로 사랑은 에로스 · 아가페 · 필리아라는 3개의 단어로 표현됩니다. 에로스는 정애(情愛)에 뿌리를 둔 정열적인 사랑이며, 아가페는 무조적적 사랑으로 대표되는 것으로 사람과 사람 간의 독립적 존재를 바탕에 둔 사랑입니다. 또 필리아의 사랑도 독립된 이성간에 성립되는 우애를 의미하는 데 상대방이 잘 되기를 바라는 순수한 마음의 상태를 쌍방이 인지하고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고 합니다.
이제 대충 사랑이라는 개념을 아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개념을 파악했더라도 실제로 사랑수업을 받아보아야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 우리 함께 사랑수업을 받아 보시지요.
첫째, 사랑하는 것 자체가 행복입니다.
어쨌든 어떤 상대를 애틋하게 그리워하고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 즉, 사랑하는 것 자체가 행복입니다. 지혜가 깊은 사람은 자기에게 무슨 이익이 있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한다는 그 자체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지요. 사랑이 있는 곳에 기쁨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기쁨이 있는 곳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결합이 이루어집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결합이 있는 곳에 또한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인간의 품격입니다.
둘째, 백인백색의 사랑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인간들의 수만큼 사랑의 종류가 있습니다. 사람은 각각 자신의 성격, 자신의 상상력에 맞는 사랑의 방식을 갖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사랑은 모두 진실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셋째, 사랑에는 약이 없습니다.
연심(戀心)을 억누르는 묘약은 없습니다. 무엇을 마셔도 무엇을 먹어도 효과가 없고, 주문을 읊어도 소용없습니다. 입 맞추고 포옹하며 함께 잠드는 것 외에는 약이 없습니다.
넷째, 사랑의 기술보다 감정이 우선입니다.
사랑에서 감정보다 테크닉이 중시되면 남성은 사랑의 기술자로 타락합니다. 지금은 사랑의 엔지니어가 너무 많고 시인은 너무 적습니다. 기술보다 감정이 우선입니다.
다섯째, 사랑은 명령을 듣지 않습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사랑은 명령을 받지 않습니다. 명령을 받고 어떤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인간의 능력 밖의 일이지요.
여섯째, 사랑을 얻는 방법입니다.
사랑은 용감한 자의 것입니다. 사랑에 빠진 척하며 가슴에 깊은 상처를 안고 있는 것처럼 사랑을 고백합니다. 또 무슨 수를 쓰더라도 상대방이 믿게 하는 것입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끊임없이 칭찬합니다. 또 사랑을 약속할 때면 신이든 부처님이든 증인으로 내세우는 것입니다.
일곱째, 사랑에는 모순이 있습니다.
사랑은 두려움이고 용기입니다. 붙들린 몸이기도 하고 해방이기도 하지요. 사랑은 병들어 있으면서도, 건강하고 행복하면서도 고민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끊임없는 물음인 동시에 마음 설레는 기대이기도 합니다.
여덟째, 사랑은 과정입니다.
사랑은 행위가 아니라 과정입니다. 발견과 의문, 불안과 시련의 반복이지요. 또 사랑은 동요이고, 두려움이고, 감동이고, 통곡이며,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욕구인 것입니다.
누구든지 이 여덟 가지 사랑수업을 받으면 사랑을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의 생각으로는 이런 사랑은 아주 작은 사랑입니다. 저는 이제 큰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 내 한 몸, 내 한 가족을 뛰어넘어 인류뿐만이 아니라 이 우주 안에 펼쳐있는 모든 생령(生靈)을 뜨겁게 사랑하고 싶은 것이 저의 소망이지요!
단기 4350년, 불기 2561년, 서기 2017년, 원기 102년 3월 17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