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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로 큰 '자원외교' 먹이 준 사람 아무 없네..
사회

괴물로 큰 '자원외교' 먹이 준 사람 아무 없네

디지털뉴스팀 기자 입력 2015/02/25 10:05



석유공사 15년 근속 엔지니어 "모두 발뺌할 것"이라며

목숨 끊었는데, <대통령의 시간>에선 국무총리실 주도라고 주장해
 

[연합통신넷= 디지털뉴스팀] 지난 1월2일 오후 3시께 서울 여의도 의원회관 2층 로비. 감사원이 캐나다 석유회사 하베스트를 비싼 가격으로 무리하게 인수했다며 당시 강영원 한국석유공사 사장을 형사 고발한 직후다.
 

"여긴 최경환 의원실이거든요"

○○○ 의원실을 방문하겠다는 내용의 신청서를 청경에게 제출했다. 약속된 일정이지만 늘 거치는 절차다. 청경은 의원실에 전화해 사실 여부를 확인했다. 대개 그 지점에서 전화는 끊기고 방문증이 지급된다.

 

정신은 비껴 있었다. 감사원 발표 자료에 당시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이 해당 사업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한 줄 언급이 없었다. 2009년 10월 인수계약 직후 평가가 부정적이던 언론 보도 내용을 확인 안 한 책임도 강 사장에게만 물었다. 석유공사법에는 "국내외 석유자원의 탐사·개발 및 생산" 업무에 대해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도·감독한다"고 되어 있다. 2009년 11월 최 장관은 지식경제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하베스트 인수 가격에 대해) 아주 리즈너블(합리적)한 가격"이라고 말했다. 10월치 이사회 승인 조건부 인수계약은 12월 하순 법적으로 최종 완료된다.

청경

전화를 바꿔달라고 합니다.

기자

그래요?

의원실

누구세요?

기자

<한겨레> 임인택 기자라고 합니다.

의원실

임 기자님, 잘못 찾으신 것 같은데요. 용건이….

기자

○○○ 의원실 아닌가요? 뵙기로 되어 있습니다만.

의원실

아, 그러세요? 여긴 최경환 의원실이거든요.

기자

….

기습적인 '접선'에 벙벙해하다, 운명인가 싶었다. <한겨레> 자원외교 취재가 석 달째로 접어들 즈음이었다.


 

최경환 부총리는 이명박 정부 때 자원외교 주무장관(지식경제부)이었다. 최 부총리는 2014년 국정감사 때부터 "자원외교는 청와대와 국무총리실이 주도했다"고까지 말하며 '책임 없다' 입장을 되풀이하는 중이었다. 뒤집어 죽은 말도 생겨났다. 1조원이 넘는 손실을 초래한 하베스트 사업을 두고 석유공사 강영원 사장과 따로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고 수차례 우기다가, 강 사장이 "(장관에게) 보고했다"고 증언하자 "5~10분 만났다"고 고쳤다. 이 때문에 그에게 묻기로 해둔 게 많았으나, 그날은 아니었다. "청경이 잘못 연결한 모양"이라며 사과하고 의원실과의 접선을 끊었다.
 

1월20일치 보도로, 하베스트 사업과 관련해 최 장관이 석유공사 쪽으로부터 더 구체적인 보고를 받았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4조원짜리 하베스트 사업은 석유공사 창사 이래 최대였고, 최 장관 취임 뒤 첫 대형 인수 사업이었다. 인수 뒤 부실자산으로 판명난 정유시설(하베스트 자회사)이 석유공사법상 공사의 사업 영역인지도 불분명했다. 야당에선 "석유공사의 사업 보고를 주무장관이 제대로 받지 않았다면 그게 더 큰 문제"라고도 말한다.
 

최 부총리는 강 사장 보고의 경우 "5~10분"이 전부라며 언론중재위원회에 <한겨레> 정정보도를 요청한 상태다. 다만 산업부가 아닌, 기획재정부 관료들이 최 부총리의 지시를 받아 처리 중이다. 이들도 뜻밖의 업무 할당에 벙벙해하다 곧 '운명이다' 했을진 알 수 없다.

<mb 비용>, 3대 에너지 공기업의 부채 증가
 

설 이후 '자원외교 국정조사'는 본격화할 전망이다. 성과를 낙관할 요소가 많지는 않다. 자원외교에 동원됐던 청와대, 총리실, 산업부, 외교부 등 여러 부처가 각기 책임을 추궁받고 있지만 자인·자복하는 부처나 수장은 전무하다. 2월10일 현재 여야 간 증인 채택 논의도 지지부진하다. 예상이 가능했다. <한겨레>가 지난해 10월 중순부터 자원외교의 어제오늘을 탐사취재해 사실상 '지면 국정조사'(1월19~23일 5회 시리즈)를 기획한 이유였다.
 

6대 에너지 공기업에서만 해외 자원개발 사업에 31조원 넘는 돈을 쏟아부었다. 국내 가정·상업용 원유 10년치, 무상급식 예산을 중단한 경남도 전체 무상급식비의 250년치가 넘는 액수다. 지난해 기준 누적 손실만 이미 4조원가량(종료 중인 사업 포함)에 이른다. 고기영 한신대 교수는 2008~2012년 석유공사·가스공사·광물자원공사 등 3대 에너지 공기업의 부채 증가분 42조원(<mb 비용>)을 자원외교 비용으로 보기도 한다. 산업부 산하 공기업들이 이명박 정부 탄생 전까진 만져보지 못한 돈이다.
 

거대한 돈뭉치 아래론 '돈 그늘'이 생기게 마련이다. 자원외교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상득 전 의원의 해외순방길(볼리비아·페루)을 언론 최초로 좇은 결과, 2010년 김신종 광물자원공사 사장과 현지 방문한 이 전 의원 몫으로 8천달러가량의 뒷돈을 모아줬다는 기업인을 만날 수 있었다. 이 전 의원은 이 전 대통령의 형이면서, 자원외교의 아이콘이다. 이미 "오해 소지를 없애기 위해 (해외 순방에) 동행한 사람들에게서 돈을 거두지 않았다"(회고록 <자원을 경영하라>)고까지 강조했던 이 전 의원이 자원외교 사업과 관련해 직접 지목된 최초의 뒷돈 수수 의혹이었다.
 

이라크 쿠르드 원유개발 사업이 계약되기 전, 석유공사 실무팀장이 쿠르드 정부 인사로부터 1만2천달러(약 1320만원)의 사례금을 받은 사실도 비로소 드러났다. 회사는 돈을 자진 반납했다며 어떤 징계도 없이 경고만 내렸다. 하지만 반납 시점은 돈을 받은 지 5개월도 더 지난 뒤였다. 그동안 사무실 개인 서랍에 보관했다는 것이다. 2008년 6월 계약된 쿠르드 사업은 이명박 자원외교 1호다. 불투명한 정부와의 불투명한 돈거래를 예시한 1호 사건이 된 셈이다.
 

해외 파견된 공기업 간부가 3850억원짜리 인수 사업을 성사시키면서 수십억원의 뒷돈을 챙기기도 했다. 2009년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자원외교'로 특히 공들였던 중앙아시아가 무대였다.
 

'몰래' 잘했어야 할 국정원의 관여
 

정치권이나 언론이 추적 못하고, 대중은 더 모르는 자원외교의 실체가 여전히 많다. MB 자원외교에 국가정보원도 관여했다는 사실이 대표적이다. 산업부나 외교부처럼 국정원도 '에너지협력외교 지원협의회'(협의회)의 주요 참석 기관이었다.
 

협의회는 정부 부처가 총동원돼 자원외교 전략을 논의하는 이른바 '합동참모본부' 격이다. 정부는 "에너지협력외교 지원협의회(총리실장 주재, 유관부처 차관 및 지원기관 기관장 참석)를 통해 범정부적 지원체계를 구축"했다고 설명한다. 2008년 3월부터 2012년 11월까지 총 18차례 협의회가 열렸다. 국정원은 최소 5차례, 주로 차장, 해외정보단장, 제1국장이 참석했다. 조중표 국무총리실장이나 박영준 국무차장 등이 주재한 자리였다.
 

국정원의 자원외교 임무가 명확히 취재되진 않았다. '단서'는 있다. 국정원이 참석한 협의회의 주제는 주요 지역별 자원외교 추진계획(3차), 국무총리 순방 후속조치 추진계획(4차), 해외자원개발 주요현안 사업현황 및 향후계획(6차), 남아공 원전건설 추진현황 및 대응방향(7차), DR콩고 인프라-자원연계 사업 추진을 위한 고위급 협의체 구성·운영방안(8차) 등이었다. 범정부 차원에서 굵직한 자원외교 사업들의 전략을 공유하고, 국정원은 성격상 산업정보 수집·보호 등의 구실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눈길이 가는 대목은 국정원의 역할이 범정부 협의체를 통해 공식 요구되고 표명되었다는 점이다. 국내 산업정보 유출을 예방·차단하는 '산업보안'은 국정원의 주요 업무 중 하나다. 하지만 해외 정부 및 기업을 상대로 한 산업정보 수집은 공식 직무가 아니다. 몰래 '잘'해야 할 일이다.
 

2013년 말 산업부는 '에너지 공기업 재무구조 개선 방안'(대외비)을 통해 MB 자원외교에 사실상 낙제점을 주고, 해당 방식을 폐기했다. 국정원의 자원외교 역할과 비용, 성패 역시 국정조사를 통해서라도 검증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불법 대선 개입 혐의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은 원세훈 당시 국정원장이 국내 정치만큼 자원외교를 염려했다면 사업 성과가 조금이라도 나아졌을까 따위의 객쩍은 가정도 그래야 포기될 법하다.
 

민간기업이 경제성 없다며 포기한 지분까지 싹 쓸어모으거나(광물자원공사 볼레오 사업·1조534억원 투자), 국내 공기업끼리 경쟁해 입찰가를 높이거나(한국전력), 상대국 대통령이 "거래하지 말라"고 한국 정부 쪽에 조언한 민간사업까지 덥석 물며(석유공사 사비아페루 사업·7100억원 투자) MB 자원외교는 '괴물'이 되어갔다.
 

친박 의원들이 가장 먼저 지적했지만…
 

올 상반기 국정조사는 괴물의 외피를 벗기고, 지속 가능한 해외 자원개발 사업을 모색하자는 정치적 약속이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당초 얘기와 달리 뒷짐만 지는 모양새다. 실상 MB 자원외교의 폐단을 가장 먼저 지적한 이들이 새누리당 친박 의원들이다. 이한구 의원은 당 정책위의장직을 그만둔 다음달인 2008년 6월 기자들에게 "자원외교는 총리에게 시키면 안 된다. 총리 온다고 하면 (상대도) 다 계산한다. 총리까지 가면 페이(지불)를 안 치르고 올 수 없는 것 아닌가. 수주를 따는 건 기업인들이(어야)지 총리가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부가 나서서 가시적 성과에 매달리면 결국 불필요한 비용만 키운다는 지적이었다.
 

한승수 당시 국무총리는 중앙아시아 자원외교 길에 나섰고, 순방 중 "정부가 앞장서서 (자원외교의) 길을 개척해놨으니 이제는 기업인들이 나서서 과실을 따야 한다"고 말했다. 2008년 5월이었다. 더 앞서 이명박 대통령은 한 총리를 지명하며 "통상과 자원외교를 할 수 있는 가장 적격자"라고 못박았다. 그해 1월이었다. 책임 소재가 선명한 셈이다.
 

부존자원이 없는 반도에서 자원외교는 오랜 숙제였다. 해외 자원개발 투자는 1977년 처음 시작됐고, 13년 뒤 '자원외교'란 용어가 언론에 등장했다. 이를 건국 이래 가장 정치화한 이가 그로부터 18년 뒤 취임한 이명박 대통령이다.
 

이 전 대통령은 최근 출간한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에서 "해외 자원개발의 총괄지휘는 국무총리실에서 맡았다"고 말한다. (회고록에 자원외교 대목은 본래 예정되지 않았다고 한다. 집필에 참여한 박재완 전 경제수석의 말이다. 국정조사 합의 과정, <한겨레> 보도 등으로 논란이 커지자 해명이 삽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최경환 부총리는 "(자원외교는) 청와대와 국무총리실에서 주도했다"고 말한다. 모두 자기에게만 책임이 없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2011년 6월 석유공사의 쿠르드 유전개발 사업 담당 과장이 목숨을 끊었다. 석유공사에서 15년간 근속한 엔지니어였다. "사업 자체가 무리한 사업 추진으로 절차적·법률적 모순이 많다"고 토로해왔다. "나중에 분명히 문제가 될 거고 (그때) 상사들은 임기가 끝나 회사에 없을 거고, 결국 실무 담당한 자신이 다 뒤집어쓸 수 있다"고 두려워했다. '이명박 자원외교 1호 사업'이자 사실상의 국책사업에서 스스로 책임을 지운 단 한 명. 그의 나이 40살, 두 아이의 아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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