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간이 갈수록 커지지만
때를 밀어주는 엄마의 등은 변함이 없다.
나는 머리 모양을 매일 바꾸지만
그 독한 냄새의 파마머리는 변함이 없다.
나는 짜증이나 낼 때야 주름이 보이지만
엄마의 이마에는 매일 하나씩 주름이 늘어난다.” <변함이 없는 것(엄마 시리즈)>
[연합통신넷=디지털뉴스팀] 때론 엄마를 힘들게 하면서도 늘 친구 같았던 딸은 지난해 4월16일 차디찬 바닷속에서 결국 살아나오지 못했다. 박물관 큐레이터가 되고 싶어했던 안산 단원고 2학년 정지아양은 세월호 희생자 304명 중 한 명이다. 지아는 글쓰기를 좋아해 엄마와 친구들과 놀이하듯 편지를 주고 받았다. 소설과 시도 즐겨쓰던 아이였다.
최근 출간된 <사월의 편지(세월호 희생자 정지아의 글)>는 세월호 희생자인 지아가 생전에 쓴 편지, 소설, 시 등을 엮은 책이다. 지아의 어머니 지영희씨가 글을 엮었고, 친구 전혜린양이 표지에 실린 지아를 그렸다.
“제가 지아랑 손잡고 있었는데 올라가려면 손을 놓아야 되잖아요. 지아가 저 보면서 자기는 못 가겠다고 그렇게 말을 했어요. 그때 저는 헬기로 가는 게 더 위험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따가 배 타고 와, 이렇게 말하니까 지아가 알었어, 그러더라고요. … 그래도 다 구조될 줄 알았어요.” <생존 친구 혜린이가 기억하는 지아>
지아와 편지를 주고받던 친구들 가운데 단원고에 다니던 아이들은 대부분 세월호 침몰 사고로 희생됐다. 지아와 친했던 친구 여섯명 중 다섯이 세상을 떠났다.
“제가 지아 영정사진을 맨날 끌어안고 자요. 근데 네모나니까 좀 불편하더라고요. 제가 십자수를 좀 배웠어요. 십자수 가게 아주머니가 언젠가 사진도 할 수 있다고 얘기한 게 기억이 났어요. 그래서 찾아가서 핸드폰에 있는 지아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 사진 도안 뜰 수 있냐, 했더니 할 수 있대요. 그 사진을 쿠션으로 만든 거예요. 끌어안고 잘 수 있게.” <지영희 엄마의 딸, 정지아>
지씨는 여전히 품고 자는 딸 지아와 각별한 사이였다. 지아가 한 살이 지날 무렵 부부가 결별하면서 지아와 엄마는 서로 깊이 의지하게 됐다. 엄마에겐 지아가 삶의 전부였고, 지아에겐 엄마가 자신을 이해해주고 받아주는 유일한 안식처였다.
산후관리사로 일하던 엄마는 딸의 생전에 일을 나갈 때마다 식탁 위에 편지를 남기고 나갔다. 혼자 집에 남아있을 지아를 걱정하며 쓴 편지였다. 지아를 먼저 떠나 보낸 뒤 엄마는 지아의 책상 서랍 속에서 딸이 버리지 않고 모아둔 자신의 편지를 발견했다.
“엄마가 여태까지 써준 편지들을 모아둔 걸… 컴퓨터에 저장할 겸 하나씩 다 써봤어. … 난 울지 않으려고 했지만 결국 울었다. 만약 나중에 엄마가 세상을 떴을 때 이걸 다시 읽는다면 어떨 기분일지 생각했어.”
지아는 엄마 없는 세상에서 그 편지들을 읽으며 엄마를 그리워 할 모습을 상상했는데 현실은 그 반대가 됐다.
지아는 학창시절 많이 방황하고 많이 고민했다. <자서전>이라는 글에서 고백하듯 친구들과 학교 인조잔디에 불장난을 하다가 불려가기도 했고, 왕따를 시켜보기도 왕따를 당하기도 했다. 책에는 <나성시장>, <불꽃축제, 여의도에서 1>, <그만큼만 아파하다 잘들라 말하면…> 등의 시와 <태능선수촌 2012>, <2013 천안함 추모> 등의 소설 등 지아의 작품들이 담겼다.
지아와 친구들이 수학여행 가기 이틀 전 나눈 편지가 이들의 마지막 글이 됐다.
“열여덟 살이 되니까 되게 생각이 많아지는 것 같다, 그치?”
“정말 울고 싶을 때 항상 옆에 네가 있었는데!”
이 아이들은 영원히 함께 열여덟 소녀로 남게 됐다. 어른들이 이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계속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