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뉴스프리존

세월호의 아품을 전하기위한 어머니의 노래..
기획

세월호의 아품을 전하기위한 어머니의 노래

김현태 기자 입력 2017/01/08 12:23 수정 2018.03.06 23:30
[미디어비평] 세월호 엄마들이 출연한 연극 "그와 그녀의 옷장"

▲ 세월호의 아픔을 전하기 위하여 만든, 연극단원, 세월호 가족들

세월호 엄마들이 출연한 연극  "그와 그녀의 옷장" 

“안녕하세요. 저는 세월호 생존 학생 2학년 1반 장애진 엄마입니다.”

지난 1월 5일 성미상 공동체가 만든 마을극장에서 세월호 엄마들이 출연하여 만든 연극 <그와 그녀의 옷장>이 무대에 올랐다. 우리는 웃고 울고 손잡고 얼싸안았습니다. 그렇게 우린 한 몸이 되었습니다.

세월호가 우리에게 준 사회적 의미는 다양하다. 촛불도 세월호가 움직이게한 이유가 아닐까 본다.  그간 우리가 얼마나 괴물로 살아왔는지. 사람의 근본적 가치에서 멀리 도망쳐 왔는지를 깨닫게 해 주었다. 세월호는 아픈 만큼 우리네 영혼의 키를 더욱 자라게 해 주었다. 그 어떤 회유와 방해와 폭압과 조롱에도 굴하지 않고 걸어온 길이다. 진상규명! 포기할 수 없는 길이고 포기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어머니들이니까요?

세월호 어머니들이 만든 연극, 얼마나 연습했을까? 얼마나 웃으며 울면서 연습하여 무대에 올렸을까? 생각하면 고맙고 대견합니다. 
  

연극의 내용 이야기는 아파트 관리인으로 살아가는 한 가정의 가난한 이야기이다. 경제적인 이유로 두 명의 관리인 중 한명을 해고한다는 통지를 받고 평생을 친구로 살아왔던 두 사람이 갑자기 경쟁자로 돌변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실상에 직면한다. 평생을 가난하게 살아온 아내는 동료를 재치라고 관리자에게 선물 공세를 하지만 남편은 배신이란 큰 장벽에 마음이 무겁다. 옷장엔 평생 옮겨 다니며 일한 직장의 작업복만 있고, 한쪽 구석에서 발견한 청자켓은 젊은 시절 당당하고 꿈을 찾아 올라온 시절을 생각나게 한다. 하지만 지금 모습은 가난하기 그지 없는 비굴한 삶이다. 아들이 자라 들어간 첫 직장이 용역회사 직원으로 노동조합 탄압에 나서게 되고 노동쟁의 현장에서 어머니와 아들이 대면하는 장면은 정말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거기에서 절망하고 좌절하는 어머니. 하지만 아들은 새 직장에 취직을 하고 노종조합에 가입하여 교육을 받고 이웃 노동현장을 지원하면서 세상을 알게 된다. 좌절하지 않고 당차게 노동운동하는 여성 노동자를 깊이 사랑하게 되고 둘은 사랑에 성공하는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끝이 없는 길을 가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거대 권력의 방해와 가진 자들의 조롱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진실규명에 나선 어머니들. 끝이 보이지 않는 길. 하지만 포기 할 수 없는 길. 그렇게 억척스럽게 1000일을 살았다. 세월호 사태는 1000일이 되었는데도 그 어느 것 하나 해결된 것이 없다. 아니 그 진실은 대략 밝혀지고 있다. 그런데도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은 책임을 인정하거나 사죄하지 않고 있다.. 
  

▲ 주현이, 영만이, 동혁이, 동수, 예진, 수인이 엄마 그리고 생존자 애진이 엄마
   

 

심리치료로 시작한 연극, 극단 결성까지
 

세월호 엄마들은 심리 치료를 위해서 연극을 시작했다. 2015년 10월 4•16 안산시민연대의 제안으로 시작된 연극 수업이 극단으로 발전했다. 엄마들은 자식을 떠나보낸 죄책감에 처음엔 대본조차 제대로 읽지 못했다. 이번 연극에서 아들 수일 역을 맡은 ‘동수 엄마’ 김춘자 씨는 “내 배역이 아들 역할이라는 사실을 최근에서야 인지했다”고 고백했다. 김 씨는 무대에 서면서 참사 이후 처음으로 미용실에 가 머리를 잘랐다.
 

“제 역할이 아들이라서 배역을 완성하는 데 매우 힘들었어요. 처음에는 대사도 못 외웠어요. 읽으면서도 이게 뭔 내용인지도 모르고 계속 대사를 읊었죠. 연기하는데 관객분이 ‘아들이네’ 하셔서 그때야 제가 아들 역을 맡고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여기까지 1년이 걸렸어요. 그동안 울 수 있는 공간이 별로 없었어요. 남아 있는 아이의 엄마고 남편의 아내이기에 울 수 없었어요. 공연하면서 울 수 있었어요. 숨이 안 쉬어졌는데 숨도 쉬어지고 제가 살고 있더라고요.”
 
광화문 블랙텐트는 박근혜 정부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오른 예술인들이 세운 천막 극장이다. 블랙리스트는 청와대가 주도해서 작성했다는 사실이 특검 조사 과정에서 드러나고 있다. 블랙텐트는 조윤선 전 문화체육부 장관이 청문회에서 블랙리스트 존재를 처음 인정한 다음 날인 지난 10일 광화문 이순신 동상 뒤편에 세워졌다.

    
▲ 광화문 블랙텐트에 '빼앗긴 극장, 여기에 다시 세우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블랙텐트 외부에는 ‘빼앗긴 극장, 여기에 다시 세우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이날 공연을 기획•연출한 김태현 씨는 “정부가 공공극장을 없앴기에 블랙리스트 예술인들이 직접 우리들의 공공극장을 세웠다”며 “그동안 정부가 싫어한다는 이유로 소외당했던 이야기들이 충분히 공유되는 장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블랙텐트는 박근혜 정부가 퇴진할 때까지 한시적으로 운영된다.
 

문화계 블랙리스트에는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요구했던 예술인도 많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명단에는 세월호 시행령 폐기 촉구 서명인 594명과 세월호 시국 선언 참여자 754명이 포함돼 있다. 2015년에는 공공극장 책임자들이 세월호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관객이 보는 앞에서 공연을 중단시키기도 했다. 친구들과 여행을 갔다가 주검으로 돌아온 아이를 기리는 두 여인의 이야기로, 프랑스 작가의 작품이었다.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요구하다가 쫓겨난 이들이 만든 무대에 세월호 유가족이 오른다는 것만으로도 이날 공연은 특별했다.
 

엄마들이 블랙텐트 무대에 서기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블랙텐트가 세워진 광화문광장이 이들에게 특별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광화문 광장은 세월호 유가족들이 분향소를 세우고 진실 규명을 위해 1,000일 넘게 싸워온 공간이다. 관리실장 등 1인 5역을 맡은 ‘동혁 엄마’ 김성실 씨는 “아이들을 잃고 처음으로 자원해 나온 곳이 광화문이었기에 이곳에서 공연한다고 했을 때 마음이 무거웠다”고 토로했다. 순심 역을 맡은 ‘수인 엄마’ 김영임 씨는 광화문에 있는 아들의 영정 사진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우리 아들 사진이 광화문 분향소에 있는데, 아들이 뭘 기다리다가 지쳤는지 사진 속 얼굴이 희미해져 가요. 사진을 바꿔 놓을까도 생각했는데, 그 아이 마음이겠거니 하고 그냥 놔두기로 했어요. 제가 이 아이를 가지는 데 10년이 걸렸고 17년간 키웠습니다. 진상규명을 하는 데 27년이 걸릴지, 더 걸릴지, 감사하게도 그전에 밝혀질지 모르겠지만, 끝까지 하려고요. 엄마니까, 내 자식 일이니까, 정말 오랫동안 기다려서 낳은 아니니까, 부모인 나를 생각해요.”
 

세월호 엄마들이 그려내는 비정규직의 아픔
 

블랙텐트에서 엄마들의 마지막 공연이 있던 이 날 기온은 영하 14도까지 떨어졌다. 주최 측이 천막 양쪽에 온풍기를 놓고 관객 모두에게 무릎담요를 나눠줬지만, 매서운 한파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관객들은 외투를 꽁꽁 싸맸고 손에는 손난로를 쥐었다. 방음이 되지 않아 자동차 소음이 공연장 안으로 들려왔다. 그런데도 100석이 넘는 관객석이 사람들로 가득 찼다. 좌석이 부족해 2명이 앉는 자리에 3명이 다리를 좁혀 앉아야 했다. 무대에 앉은 관객들도 있었다. 모두 불편한 내색 없이 기대감으로 가득 찬 표정이었다.

    
▲ 영하 14도의 추운 날씨에도 연극 <그와 그녀의 옷장>을 보기 위해 많은 관객이 기다리고 있다. ⓒ 블랙텐트 공식 페이스북
 

<그와 그녀의 옷장>은 세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아파트 경비원인 아빠 호남의 옷장, 식당일을 하는 엄마 순심이의 옷장, 기업에서 일하는 아들 수일이의 옷장. 이들은 모두 비정규직이다. 옷장에는 여러 직장을 전전한 아빠 호남의 작업복들로 가득하다. 호남은 “안 해본 일도 없고 안 입어본 작업복도 없다”면서 “평생 작업복만 입다가 뒤질 운명”이라며 자신의 처지를 한탄한다. 엄마 순심이는 평생 같은 작업복만 입었다. 순심이의 꿈은 아들 호남이가 자신이 그토록 입고 싶었던 양복을 입고 일하는 것이다.
 

“호남이가 태어나서 다른 아기들이랑 누워있는데 자꾸 이 애가 비정규직처럼 보이는 거야. 이러면 안 되겠다 싶더라. 비록 우리는 작업복을 걸치고 있어도 우리 아들은 최고로 좋은 옷을 입어주자. 돌잔치 때는 색동옷을 입혀주고, 초등학교 때는 마이에 반바지도 입혀주고, 중학교 수학여행 때는 메이커로 청바지도 입혀줬어. 오늘 아침 아래위로 양복을 빼입고 나서는데 우리 아들은 폼 나게 번듯하게 행복하게 살겠구나 싶으니까 아무 힘도 안 들더라고.”
 

순심이의 꿈은 용역 깡패 무리에서 아들 수일을 발견하면서 깨져버린다. 자신이 매준 넥타이를 한 아들에게 순심은 다른 말없이 “집에 가자”고 말한다. 이후 수일이는 작업복을 입고 새로운 회사에 출근한다. 수일은 노조 간부에 손에 이끌어 찾아간 장기투쟁사업장 ‘사랑전자’에서 심순애를 만난다. 비정규직 노조를 만들기 위해 장기 투쟁을 이어가는 심순애는 세월호 유가족들과 묘하게 닮았다. 기나긴 싸움에도 바뀌는 것이 없는 현실에 지친 심순애는 수일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지겹죠? 이렇게 싸우는 우리한테 계속 와주는 게, 이렇게 싸워도 해결이 안 되는 게 지겹지 않아요? 이 조끼 300일이 넘게 입었어요. 이 조끼가 지긋지긋할 때가 있어요. 우리도 다른 여자들처럼 예쁜 옷 입고 친구들하고 애인들하고 놀러 가고 싶은데, 1년 내내 이 조끼만 입고 있는 게 원망스러울 때가 있어요.”
 

세월호 엄마들이 연기하고 비정규직 삶을 다룬다고 해서 연극이 우울한 건 아니다. 관객들은 익살스러운 엄마들의 대사에 연극 내내 배꼽 잡으며 깔깔 웃었다. 영광 외 1인 6역을 맡은 ‘예진 엄마’ 박유신 씨는 “그동안 늘 울면서 이야기를 들어달라며 사람들에게 아픈 모습만 보였다”면서 “응원해준 분들에게 잠깐이나마 웃음으로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박 씨는 “이렇게 말하면 관객들이 우리가 빚졌다고 미안해한다”면서 “정말 빚진 자들은 양심에 가책도 못 느끼고 사는데 우리끼리 서로 빚졌다고 말하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고 일침을 가했다.
 

세월호 엄마와 관객이 함께 부르는 노래
 

연극을 마치고 관객들의 환호성과 함께 세월호 엄마들이 무대에 올랐다. 일곱 엄마 배우는 ‘끝까지 밝혀줄게’라고 적힌 노란 팻말을 손에 들었다. 용심과 용역 역을 맡은 ‘주현 엄마’ 김정애 씨는 “이렇게 많은 관객 앞에서 공연한 것은 처음”이라며 “뜨거운 함성으로 응원해줘서 용기를 낼 수 있었다”고 관객에게 감사를 표했다. 함께 무대에 선 엄마들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순애 역을 맡았던 ‘애진 엄마’ 김순덕 씨는 생존 학생 엄마인 자신에게 먼저 공연하자고 손을 내밀어준 엄마들에게 특히 고마워했다.
 

“사실 희생자 가족이 생존자 가족을 마주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어머니들은 저를 보면 애진이가 생각나고, 애진이를 생각하면 애진이 친구들이 생각날 수 있잖아요. 도리어 제가 연극을 같이 해줘서 힘이 된다고 말하는데, 몸들 바를 모르겠더라고요. 어머니들에게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 공연을 마치고 세월호 엄마 배우들와 관객들이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 블랙텐트 공식 페이스북 


엄마들은 탄핵 이후 세월호 진상 규명 목소리가 커지는 것에 대한 심경을 밝혔다. 호남 역을 맡은 ‘영만 엄마’ 이미경 씨는 “처음 탄핵안이 통과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누가 지금부터 시작이라는데 가슴이 철렁했다”며 “3년이 다 되어가는 시간 동안 진을 다 빼고 있는 힘을 다 썼는데도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하니 얼마나 더 어려운 일이 있을까 두렵다”고 말했다. ‘동혁 엄마’ 김성실 씨는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고 나서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많은 분이 이렇게 묻습니다. 연극은 왜 하며 자꾸 나서냐고요. 이거 안 하면 뭘 할까요? 저희는 아이들 엄마인데, 어떻게 하면 우리 마음을 더 많은 사람한테 알릴 수 있을까 고민합니다. 사실 저희는 살기 위해서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살아있어야지만 끝까지 볼 수 있으니까요. 응원해주시는 여러분들이 있어서 힘이 납니다. 여러분들이 더 큰 저항하는 단체였고 저희 옆에 있는 가족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공연을 마치고 무대에 오른 배우 김순덕 씨는 딸의 이름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함께 무대에 선 배우 이미경, 김명임, 김춘자, 박유신, 김성실, 김정애 씨도 마찬가지였다. 2014년 4월 16일 이후 세월호 참사 생존 학생, 희생 학생 유가족들은 본인의 이름보다 아이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익숙해졌다.
 

엄마들은 마지막으로 윤민석이 작사•작곡한 세월호 추모곡 <약속해>를 관객들과 함께 불렀다.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한목소리로 부르는 노래가 블랙텐트를 가득 채웠다. ‘우리가 너희의 엄마다. 우리가 너희의 아빠다. 너희를 이 가슴에 묻은 우리 모두가 엄마 아빠다. 너희가 우리 아들이다. 너희가 우리의 딸이다. 우리들 가슴에 새겨진 너희 모두가 아들딸이다. (…) 세상을 바꾸어 낼 거야. 약속해. 반드시 약속해.’

kimht1007@gmail.com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