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김원기 기자]승려 신분으로 만세운동을 주도하고 일생을 항일 투쟁에 헌신한 김성숙 선생을 기리는 ‘운암 김성숙 선생 48주기 추모재(追慕齋)’가 12일 오전 11시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사)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회장 민성진) 주관으로 열린다.
이 날 행사에는 정세균 국회의장, 이경근 서울지방보훈청장을 비롯해 유족, 광복회원, 각계 인사, 시민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약사 보고, 내빈 추모사, 추모가, 헌화 및 분향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운암 김성숙 선생(1898. 3. 10.~1969. 4. 12.)은 평안북도 철산군에서 출생하고 19세에 출가해 승려가 되었다.
1919년 3월 경기도 남양주군 봉선사의 승려로 있을 때 ‘조선독립군 임시사무소’라는 명의로 동료들과 함께 격문을 만들어 인근 동리에 살포한 사건으로 일경에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조선무산자동맹’과 ‘조선노동공제회’에 가담했고, 1923년 일경의 탄압이 심해지자 불교 유학생으로 중국 북경으로 건너가 ‘고려유학생회’ 및 ‘창일당’을 조직하고 ‘조선의열단’ 활동에 참여하는 등 적극적으로 항일민족운동을 전개했다.
이후 중국 전역의 한국인 청년들을 모아 ‘재중국조선청년동맹’을 조직하고, 1936년에는 ‘조선민족해방동맹’을 결성했다. 1938년 ‘조선의용대’ 간부로 임명돼 활동하던 중 1942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무위원으로 취임했고, 이후 내무차장으로도 활동했다.
1943년에는 임시정부 행정부의 한 부처로 선전부가 설치됨에 따라 조소앙, 신익희 등 14명과 함께 선전위원으로 임명되는 등 활발한 독립운동을 펼쳤다.
광복 후에는 서울로 들어와 근로인민당 결성 등 정치인으로 활동하다가 1969년에 서거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8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김원기 기자, coolkim201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