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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 없이 줄타는 경제학자들....
경제

줄 없이 줄타는 경제학자들..

디지털뉴스팀 기자 입력 2015/03/02 12:30



[연합통신넷= 디지털뉴스팀] 철학 전공자인 내게 만약 ‘경제학에 철학이 필요한 이유’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부탁한다면 나는 어떤 말을 하고 싶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겠지요. 그런 청탁이 제게 들어올 리가 만무하니까요. 그래도 상상에서야 무슨 일인들 못하겠습니까. 여러분들도 한 번 상상의 나래를 펴보시면 어떨까요?

 

음, 경제학에 철학이 필요하다? 학문 간 통섭이 유행은 유행인가 보네. 경제학과 철학이 엮이다니. 하긴, 철학자들이야 장기 둘 때 뒤에서 훈수하듯 어디에나 코를 박고 한 소리 내는 경향이 있지. 경제학에 철학이 필요하다면,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이와 비슷한 논조의 이야기를 한다? 

요즘 신자유주의로 인해 소득불평등이 심화되니 그야말로 ‘누구를 위한 경제학입니까?’란 볼 멘 소리가 나오게도 생겼지.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경제학이 좀 더 발분해야 된다는 그런 이야기를 한다? 

 

여러분도 비슷한 상상을 하셨다고요? 그런데 너무나도 뻔한 소리라고요? 하지만 역설적으로, 누구나가 할 수 있는 뻔한 소리라면 그만큼 모두가 공유하고 절감하고 있다는 이야기겠지요. 바로 이 뻔한 이야기를, 그것도 매우 중요한 자리에서 우리를 대신해 말한 사람이 있습니다.

 

누스바움 세계 경제학자들을 비판하다

 

중요한 자리란 지난 2일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미국경제학회 연례총회입니다. 이 학회는 전 세계 경제학자들이 참석하는 경제학계 최대의 행사라고 하네요. 여기서 시카고 대학 교수인 마사 누스바움이 ‘재능과 사회정의: 경제학에 철학이 필요한 이유’를 주제로 기조연설을 했다고 합니다.

 

마사 누스바움은 법철학자이자 정치철학자, 윤리학자, 고전학자, 여성학자이기도 한 세계적 석학입니다. 2008년에 우리나라에 와서 강연을 한 적도 있지요. 그 후 그녀의 책이 몇 권 번역되었습니다.

 

『시적 정의(Poetic Justice)』 책 제목부터 남다르지 않습니까? 흔히 감정과 합리성은 상반되는 개념으로 생각하는데 문학적 상상력을 통하여 갖게 되는 타인을 향한 따뜻한 시선의 합리성은 사회정의에 관한 공적이며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책의 원제는 『NOT FOR PROFIT』인데 『공부를 넘어 교육으로』로 번역되었군요. 오늘 날 교육은 전 세계적인 성장주의에 맞추어 마치 이익을 많이 내는 질 좋은 제품을 찍어내듯이 인간을 찍어내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누스바움은 이런 교육 실태를 비판하며 삶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게 하는 교육에 대해 논의하고 있습니다. 이런 책들의 저자인 누스바움이 경제학회 총회에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궁금해집니다. 

 

그녀가 기조연설에서 “철학을 모르는 경제학자는 줄 없이 줄타기를 하는 재주꾼 같다.”고 말했다고 하니, 정말 재밌는 비유 아닌가요? 줄 없는 줄타기와 철학 없는 경제학. 우리들은 재밌지만 경제학자들이 들으면 별로 기분 좋은 소리 같지는 않네요. 

사실 기조연설 제목이 이미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재능과 사회정의. 머리 좋고 똑똑한 인재들이 몰리는 경제학. 그들의 재능은 과연 무엇을 위해 쓰이고 있는 것인가요? 

 

경제학이 세상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요. 선진국도 그렇고 우리나라도 그렇고, 정부가 발탁한 경제학자들의 이론, 시각, 전망에 따라 한 나라 경제의 방향이 좌지우지 됩니다. 또한 미국 같은 강대국의 경우에는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경제에 막강한 영향을 끼칩니다. 

그러다보니 오늘날의 경제학자들은 현실분석과 미래전망에만 급급합니다. 경제학이 진정으로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 성찰에는 까막눈이 되어버린 경제학자들의 현실을 누스바움은 비판합니다. 

 

경제학이건 철학이건 학문이란 것이 교수들의 연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소위 정부 산하의 경제연구소라는 것도 연구원들 월급 주기 위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지식이란 것은 궁극적으로 인류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것일 텐데 현대경제학은 학문의 진정한 목표를 상실한 채 시류와 야합한다고 누스바움은 본 것이죠.

 

그녀는 줄 없이 줄타기를 하는 재주꾼 경제학자들에게 철학을 공부해야 한다는 따끔한 일침을 가하며 정의와 복지라는 두 개의 철학적 줄을 제시합니다. 그녀는 한 예로, 인도의 기아와 빈곤 문제를 다루어서 이론경제학의 지평을 넓힌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마르티아 센 하버드 교수를 높이 평가합니다. 아마르티아 센은 경제학자이지만 철학과 윤리학 분야의 학문적 성과도 대단한 학자입니다.

 


세상을 측량 하는 현대인들

 

그녀는 또한 소득불평등 극복과 사회 안정에 대해서도 언급합니다. 한 사람의 복지와 행복은 다차원적이어서 수량으로만 표현할 수 없는데 경제학자들은 복지나 행복을 계량적으로만 접근하는 피상적 분석에 의존하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경제학자들도 인간 행복의 다차원성을 인정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이러한 지적은 단순히 경제학자들을 향한 질책이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시각에 대한 질책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 잘난 경제학자도 아닌데 왜 그렇게 모든 것을 다 수량적으로만 이해하려 하는지요? 사실 행복은 무수히 많은 채널을 통해서 우리에게 다가오는데 자본주의의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것들을 멍청히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누스바움은 사회정의 문제를 넘어 글로벌 정의에 대한 학문적 논의가 철학에서 시작된 만큼 경제학자들도 이러한 논의에 참여할 것을 권고합니다. 글로벌 정의란 빈국과 부국 사이의 공정한 분배의 문제인데, 특히 환경에서 비롯되는 환경이익과 환경 부담에 관한 글로벌 환경정의의 문제는 철학에서는 많이 다루어지는 주제입니다.

 

아주 쉬운 예를 들자면, 선진국들이 환경쓰레기를 싼 값으로 후진국에 팔아넘기는 문제 같은 것입니다. 이는 국가 간에 물건을 사고파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이죠. 왜냐하면 환경이라는 자원은 전 지구가 공유하는 것이니까요.

 

가장 큰 규모의 경제학회에서 누스바움 같은 철학자가 기조연설을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저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 커지는 것 같습니다. 그녀가 전한 바에 의하면, 작은 시작이지만 유엔 주도로 경제학과 철학을 포함한 합동연구가 진행 중이라니 반갑기도 합니다. 그녀의 말대로, 경제와 사회를 종합적 시각으로 보는 사회경제학의 시대가 활짝 열리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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