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 김현태]지난 국정논란의 진위가 JTBC 최순실 태블릿PC 보도에 대해 ‘의견진술’을 결정을 하자, 언론시민단체뿐 아니라 방통심의위 내부까지도 “최소한의 양심도 없는 정치 심의”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언론시민, 민주언론시민연합(아래 민언련)은 7일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의견진술’ 결정을 내렸다”며 “마지막까지 비상식적인 청부심의를 일삼는 것은 이번 대선국면에서 최후까지 정치적 이득을 챙기려고 발버둥치는 극우정치세력들과 함께 가겠다는 의사표시”라고 비판했다.
협의회구성 민언련은 “여권 추천 위원들이 ‘의견진술’을 밀어붙이는 데는 다른 의도가 있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며 “여권 추천 위원들이 탄핵 불씨를 제공한 JTBC를 손봐 방통심의위 위원 배지를 달아준 박근혜에게 마지막까지 충성을 보이는 동시에 JTBC에 어떤 형태로든 상처를 냄으로써 이번 대선정국에서 극우 정치세력의 정파적 이익을 챙기려는 불순한 의도”라고 비판했다.
최순실국정농단의 책임자 박근혜 전대통령은 아침에 영장 심사를 받았고, 어둠이 짙게 깔린 새벽에 구속인 신분으로 바뀌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마침내 자신의 신분을 되찾았다. 그 순간 구속을 찬성하던 75%의 국민은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국정농단의 여러 증거와 정황들이 나왔지만 “그래도 기각되면 어쩌나”하는 마음에 잠을 설쳤던 국민이 아침에 핸드폰을 켜고 구속 여부를 확인했던 이유는 하나다. 지난 몇 년간 가라앉았다고 여긴 정의가 이번만큼은 떠오르길 바랐기 때문이다.
20세기의 윤리학자이자 정치철학자 존 롤스는 정의의 형성을 ‘무지의 장막’으로 설명한다. 서로가 어떤 조건에 처해질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때(장막으로 둘려 있어 모두가 무지상태에 있을 때), 사람들은 최대한 합리적인 규칙을 수립할 공산이 크다고 봤다. 권력을 가진 사람도 자신이 어떤 조건에 처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국민은 이 장막을 토대로 형성된 규칙이 정의롭다고 여기며 살아간다. 적어도 자신을 불의로부터 지켜줄 것이라 믿으면서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겪은 권력자는 이 장막을 찢고, 벌어진 틈 사이로 정의를 짓밟았다. 자신을 비판하던 이들을 ‘블랙’으로 낙인찍고, 자식 잃은 부모를 ‘시체 팔이’ 운운하며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반면, 자신의 ‘오랜 인연’에게는 권력을 이용해 이권을 챙겨줬다. 장막이, 정의가 짓밟혔다.
40년 동안 '정의' 한 주제만을 파고든 20세기 가장 위대한 정치철학자 중 하나 이미 고전의 반열에 든 『정의론(A Theory of Justice)』의 저자,국민의 머리와 가슴에서 국가도 무너져 내렸다. 세월호가 바다에 가라앉을 때 국가는 거기 없었다. 취임 때 “국가와 결혼했다”던 외침은 자취를 감췄다. 어쩌면 ‘결혼’이라는 단어를 국가와 대응시킬 때 알아봤어야 할지 모른다. 그의 관념 속에서 국가는 개인이 차용할 수 있는 소유물쯤이었다는 것을. 사적 영역으로 전락해버린 국가는 최순실에게 화수분으로, “없는 죄도 만든다”던 우병우에게 큰 칼로 모습을 바꿔가며 나타났다. 지난 22일 자신의 진술 조서를 검토하기 위해 쓴 7시간과 베일의 7시간이 주는 이질감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그릇된 정의관을 여실히 보여준다.
T. S. 엘리엇은 미국계 영국인으로 시인이자 극작가이며 문학 비평가이다. 생명이 싹트는 4월을 토머스 엘리엇은 ‘잔인한 달’이라 읊었다.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깨우지만 도리어 따뜻한 건 겨울이라는 역설. 준비되지 않은 땅에 창조를 강요하는 봄에 대한 엘리엇의 독특한 시각이 엿보인다. 머나먼 땅에 살던 시인의 통찰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 그대로 투영돼 씁쓸함을 자아낸다. 지난 3년간 한국사회의 4월은 상실의 달이었다.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해줄 수 있었던가. 3년 만에 다시 찾아온 봄. 정의와 국가를 농락한 자들의 운명을 좌우할 서초동에서 ‘잔인한 달’ 4월의 서초(瑞草, 경사스러운 풀)는 돋아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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