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항쟁 졸업을 선언하고, 30년을 돌아보니 꽤 오랫동안 정든 집에 머물렀던 느낌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막상 짐을 꾸려 마치 터널에서 햇살을 받기 위해 나오려 할 때 그 느낌, 두려움입니다.
9년 전, 스페인의 산티아고 가는 길을 다 걸었을 때 그 길에도 미련이 남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버리고 비우고 내려놓고자 떠났던 길이었는데..
피니스테라로 마저 걸을까? 망설이다 버스를 타고 파티마로 갔습니다. 초를 켜고 익숙한 길에 대한 미련을 태우면서 기도했습니다. 저의 기도가 그 기도조차도 진심이기를...
과거가 익숙하고 기억나고 편하고 그래서 때로는 위로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돌아갈 수 없고 돌아가지지도 않습니다.
지난 삶의 과정에서 종종 비난 받으면서 느낀 점들이 있습니다. 과거를 잊지 말라면서 과거의 눈으로 현재를 비난받거나, 미래로 가자면서 과거의 잣대로 비난받던 경우입니다.
모순일 때 속으로 '너는?' 하면서도 '아둥바둥 덜 변하려 버틴다' 며 주문처럼 읊조렸습니다. 운동할 때 받은 비난이 솔직히 정치할 때 받은 비난보다 당당했습니다.
2008년 파티마에서 제가 기도하던 그 날 아내는 광우병 수입소 반대하다 연행되었고, 똑 같이 제가 6월항쟁을 졸업하는 이 순간에도 다른 한편에서 민주주의는 투쟁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이목이 새로운 대한민국의 희망을 지켜보는 요즈음, 잠시의 여가도 없어 힘겨운 삶터에서 그 희망을 곁눈질해야 하는 사람들도 있었음을 잊지 않겠습니다.
그래서 많이 변하지 못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전력을 다 해서 변할 겁니다. 조금은 더 시선을 따뜻하게,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주면 좋겠습니다.
민망하지만 페친들께서 제게도 남에게 받은 상처가 있다는 고백을 경청해 주시면 좋겠구요. 어찌 제게 기득권의 부귀영화만 있었겠습니까.
가까운 사람들이 제가 힘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떠난다는 말을 몇번 듣고 절망한 적이 있습니다. 힘을 가진 뒤에 가치를 실현하자는 말을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가치를 추구하지 않으면 내일인들 그 가치를 실천하겠느냐 싶었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니 저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게 되었습니다.
또 과거의 이야기가 되었지만, 학생운동 시절 감옥의 문턱에서 반성문을 쓰고 무너졌던 동지들에게 그래도 우리가 다시 손을 내밀었듯이...
그리고 그 한번의 위로가 어쩌면 오늘의 나를 만들고 있음을 인정할 수 있다면, 아니 내가 혹은 누군가 그 손길을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다고 솔직히 고백한다면, 그래도 다시 손을 내밀고 어깨를 함께 걸어 행진합시다.
다시 가치를 실천하는 새로운 출발도 진정으로 내 마음을 열어 서로에게 손을 내밀고 또 잡아주는 관계의 예의, 여기서부터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느 모퉁이 책상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