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화와 설화
요즘 인터넷과 SNS가 발달됨에 따라 필화(筆禍)와 설화(舌禍)를 당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습니다. 필화는 발표한 글이 법률상으로 또는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켜 제재를 받는 일을 말합니다. 그리고 설화는 입을 잘 못 놀려 입는 화를 말하지요. 예로부터 ‘구시화복문(口是禍福門)’이라고 했습니다. 입은 잘 놀리면 복문이 되지만, 잘못 놀리면 화문이 된다는 얘기입니다.
말 잘하는 이가 있습니다. 어찌나 표현을 잘하는지 적절한 단어와 조리 있는 문장이 거침없이 나옵니다. 그래도 아나운서의 뉴스가 아닌 이상 말을 많이 하다 보면 잘못 된 단어를 쓸 때가 있습니다. 결국 상처를 낳지요. 이를 보고 사람들은 사려 깊지 못하다고 합니다.
글을 잘 쓰는 이가 있습니다. 아름다운 표현과 절제된 문장은 감동으로 이끕니다. 많은 생각을 정리하고 또 사색하여 쓰고 지우고 완성 합니다. 그래도 부족하여 흡족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사색하는 사람의 정제된 글은 빛입니다. 말도 빛이 될 수 있으려면 얼마나 마음과 입을 훈련해야 할까요.
설화로 패가망신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항상 말을 할 때 단어 선정에 조심조심 삼가고 신중해야 하는데 불현 듯 생각난 단어를 함부로 쓰다 보니 뒷감당을 못합니다. 이 설화는 유독 정치판에서 많이 발생하지요. 정치판만이 아닙니다. 우리 일상에서도 엄청나게 발생합니다.
설화의 주인공들에게는 특징이 있습니다. 별 생각 없이 불쑥 불쑥 말을 내 뱉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자신이 잘못 발설한 한마디에 많은 사람들이 해를 입는데도 불구하고, 그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합니다. 왜, 이런 습관이 들까요? 아마도 ‘뭔가 해낼 수 있다, 해 내야 한다, 타인 보다 나은 무엇이 있다,’는 자만심과 강박관념이 너무 단단해서 나타나는 현상이 아닐까요?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입니다. 지식과 지혜가 가득 채워지면 가만히 있어도 그 품위가 절로 빛나게 됩니다. 괜히 어설픈 정보를 가지고 입을 놀리다가는 금방 구설수에 올라 자신이 한말에 책임을 지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언위심성(言爲心聲)’이라 했습니다. ‘말은 마음의 소리다’라는 뜻이지요. 그만큼 말을 조심하라는 경고의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을 수 있고, 무심코 내뱉은 한마디로 수 십년지기(數十年知己)가 원수로 변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요즘엔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는 일순간 ‘공공의 적’으로 몰리기도 합니다.
입으로부터 나온 화근이 구전(口傳)되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하지만 이 말이 기록으로 남으면 바로 ‘필화’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지금은 디지털의 발달로 과거에 내뱉은 한마디도 모두 문서화되거나 녹취되고, 심지어는 영상까지 덧붙여 생생하게 되새겨 볼 수 있는 세상입니다. 세 치 혀를 잘못 놀리면 변명의 여지없이 ‘설화’와 ‘필화’를 함께 뒤집어 쓸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디지털 필화’라는 말도 있습니다. SNS에 무심코 올린 글 때문에 큰 화를 입는 현상을 일컫는 말입니다. 디지털 필화는 한국에서도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팔로어가 많아 SNS 파급력이 큰 정치인, 연예인 등 유명인사에게서 많이 나타나고 있지요.
최근 이기주 작가가 새로 집필한 ‘말의 품격’이란 책이 있습니다. 그는 사람을 만날 때, 그 사람이 내뱉는 말을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 말로 인하여 판단한 그 사람의 평판은 거의 신기하게도 일치한다고 말합니다. 즉 사람이 내뱉는 말이 그 사람의 품격을 대변한다는 것이지요. 나의 인성, 나의 품격, 나의 모든 인격체에 대해 타인이 쉽게 인지하는 것은 바로 나의 말에서 비롯된다는 말입니다.
이기주 작가는 이 책의 서문에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품격이 드러난다. 나만의 체취, 내가 지닌 고유한 인향(人香)은 내가 구사하는 말에서 뿜어 나온다. 말을 의미하는 한자 언(言)에는 묘한 뜻이 숨어있다. 두 번(二) 생각한 다음 천천히 입(口)을 열어야 비로소 말(言)이 된다. 사람에게 품격이 있듯 말에도 나름의 품격이 있으며 그게 바로 언품(言品)이다.」
실제 남을 비방하는 글을 SNS나 인터넷에 올렸다가 명예훼손 소송에 휘말리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1970년에는 김지하(1941~) 시인이 시 <오적(五賊)>을 발표했다가 구속되었습니다. <오적>은 왜국에 나라를 팔아먹은 을사오적에서 따온 말로, 국害의원 고위공직자 장성 장차관 재벌 등의 부패상을 풍자한 담시(譚詩)입니다.
1975년 양성우(1943~)는 유신체제를 비판하는 시 <겨울공화국>을 발표했다가 재직 중인 광주 중앙여고에서 파면되고 옥살이를 했습니다. 또한 1977년에도 5 16혁명과 군사정권을 비판하는 시 <노예수첩>을 발표했다가 다시 구속되었지요.
그런 예는 부지기수입니다. 위에 말한 김지하 시인과 양성우 작가는 그래도 독재에 항거하고 정의를 세우려는 작품을 썼는데도 필화를 입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대선기간 수없이 막말을 쏟아낸 모 당의 후보는 아마 앞으로 설화를 감당키 어려울 것 같습니다.
무릇 말이나 글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저도 옛날에는 강연으로 전 세계를 돌아 다녔고, 지금은 *덕화만발*이라는 글을 써 전 세계에 보내고 있습니다. 이제는 말이 어눌해져 강연은 못합니다. 그러나 글은 이 생명 다할 때까지 ‘맑고 밝고 훈훈한’하게 쓸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조심스러운지 모릅니다.
저의 글이 ‘칼럼’의 특성상 정의를 위해 불의를 나무라는 글을 쓸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정의를 세우기 위해 썼더라도 반대의 입장에 선 사람이나 당사자에겐 크나큰 상처일 수도 있습니다. 말 한마디에도 죄와 복이 왕래합니다.
한 마디 말이라도 함부로 말고, 말을 후하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삼사일언(三思一言)’은 고사하고, ‘백사일언(百思一言)’의 심정으로 말과 글을 삼가 해 ‘필화’나 ‘설화’를 미연에 방지해야 할 것 같네요!
단기 4350년, 불기 2561년, 서기 2017년, 원기 102년 5월 26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