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에서 2010년 이후가 되면서 ‘힐링’이 화두가 되기 시작했다. 고도 경제성장을 이룬 우리사회가 외적인 화려함의 이면에 내적인 치유를 갈구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는 정신적, 심리적, 정서적으로 공허함, 외로움, 불만감, 소진감, 박탈감 등 부정적인 요소가 팽배해 있다는 반증이다.
이에 앞서 2000년도부터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움을 추구하는 ‘웰빙’ 개념이 사회를 지배했다. 이렇게 한 시대를 상징하는 키워드가 단순한 유행어 같지만 그 말 속에는 한국사회의 현실상황이나 사회문화체계가 그대로 투영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웰빙이라는 시대어가 힐링이라는 말속에 뒤편으로 밀려나 있는 느낌이다. 이는 한국사회가 전반적으로 치유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1990년대 후반 IMF 사태를 겪으면서 경제적인 측면의 안정이 절실하던 시대에 ‘어떻게 하면 여유롭게 잘 살 수 있는가’에 대한 갈급함이 복지나 안녕을 뜻하는 웰빙으로 나타났다.
그러다 경기 침체기 후 다시 물질적 여유를 회복해가며 치열한 경쟁 속에 사람들은 정신적 소진감과 사회적 실망감을 느끼게 됐다. 외형적으로는 최고의 물질 풍요를 구가하고 첨단기기들로 인해 생활의 편의성은 높아졌다. 하지만 내적으로 충족감과 행복감은 누리지 못하는 현실을 맞게 됐다. 그래서 힐링의 필요성이 대두된 것이다.
힐링이 절실하다는 것은 한국사회에 긍정보다는 부정의 마음자세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지나친 사회경쟁에 따른 압박감과 의료과학과 섭식방식에 따른 장수시대의 미래 불안 등... 이것은 현대인들에게 무엇인가든 복잡한 심사(心思)로 억눌려있게 했다. 그래서 사회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갈등감이 표출되고 있다.
이런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지금 같은 초첨단 복합사회의 환경에서 혁신적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말하자면 사회 전반에 긍정의 마인드세트를 내재화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 이를 통해 사회적 '긍정성‘(positivity)을 확산시켜야 한다. 부정적인 요소가 강한 물질만능 세태에 공감과 배려와 위로가 있는 긍정의 정신가치가 무엇보다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성공’의 가치관이다. 성공이라는 것은 물질의 소유보다 개인의 정신적, 정서적 가치를 기준으로 한다.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회적 성취 정도, 이른바 ‘출세’를 일컫는 게 아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진정 치유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출세라는 가치도착증이다.
권력, 돈, 명예를 가져야 만족감을 갖게 되는 출세에 대한 집착이 사회적 문제다. 그 세 가지를 쟁취하기 위해 우리사회가 개인이나 사회가 비싼 대가를 치루고 있다. 그것 때문에 사교육과 특정지역에서 비롯되는 부동산 값 폭등 등 사회 전반에 스트레스가 만연되어 있는 것이다.
이제 ‘인간적 성공’과 ‘사회적 출세’는 엄연히 구분돼야 한다. ‘출세가 곧 성공이다’는 통속적인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 한국사회에서 많은 특출한 유명 인사들이 출세는 했지만 성공과는 거리가 먼 경우를 우리는 자주 보아왔다.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의 근원을 파고 들어가면 결국 세상이 출세주의에 물들어 있어서이다. 그 출세를 위해 한국사회는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다. 출세주의는 ‘자기 개인의 영달만을 목적으로 하는 이기주의적인 사상이나 태도’를 일컫는다.
그 의미만 보더라도 출세주의는 결코 바람직한 방향성을 띠고 있지 않다. 분명 건강한 사회가 되는 데 있어 긍정적인 가치가 될 수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인생 최고의 목표로 삼고 주위야 어찌됐던 자신의 권익만을 추구하며 쉼 없이 치달린다.
그래서 사회가 갈수록 더욱 치열해지고 정서가 메말라지면서 겪게 되는 ‘마음앓이’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가치관부터 바뀌어져야 할 것이다. 긍정적이고 창의적인 가치가 중시되는 사회적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마르틴 루터 킹은 “고통을 대처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괴롭게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창조적인 힘으로 바꿔나가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힐링에 대해 ‘아픔을 창조적인 에너지로 승화시키는 것’으로 정의 했다.
또한 지금의 세태가 힘들다 하더라도 앨버트 아인슈타인의 말대로 ‘어려움 가운데 그 곳에 기회가 있다’는 긍정의 마음을 견지하는 것이 힐링이 될 것이다. 어떻게 보면 한국사회가 지니고 있는 부정의 병폐를 치유하여 이제는 긍정의 가치로 채우는 ‘필링’(filling)의 풍토가 되어야 한다.
이제 한국사회의 힐링은 물질만능의 출세지향적 사회문화 행태를 치유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래야 우리사회에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에너지가 발현될 수 있다. 그럴 때 진정으로 개인의 행복감도 높아지며, 사회가 발전하고, 국가가 선진화 될 수 있다.
이인권 leeingweo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