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 심종완기자] 19일 밀양 송전탑 건설을 온몸으로 막아온 '밀양대책위' 할머니들은 이날 오전 부산 기장군 한국수력원자력 고리원자력본부 행사장에서 열린 선포식에 참석해 '탈원전' 정책을 공약으로 제시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기념사를 주의 깊게 지켜봤다. 국내 첫 원자력 발전소인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 현장을 긴장된 표정으로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문 대통령은 이날 기념사에서 "탈 원전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고 후손들을 위해 지금 시작해야만 하는 일"이라며 "원전 정책을 전면적으로 재검토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를 위해 문 대통령은 ▽준비 중인 신규 원전 건설계획 전면 백지화 ▽원전 설계 수명 연장 불가 ▽수명 연장해 가동 중인 월성 1호기 가급적 빨리 폐쇄 등을 약속했다.
이와함께 건설 중인 신고리 5·6호기는 안전성과 공정률, 투입 비용, 보상 비용, 전력 설비 예비율 등을 종합 고려해 빠른 시일 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새 정부는 원전 안전성 확보를 나라의 존망이 걸린 국가 안보 문제로 인식하고 대처 하겠다"며 "'원자력 안전위원회'를 대통령직속위원회로 승격해 위상을 높이고, 다양성과 대표성, 독립성을 강화해 대통령이 (원전 정책을) 직접 점검하고 챙기겠다"고 강조했다.
기념사를 마친 뒤 고리원전 중앙제어실로 가기 위해 연단에 내려온 문 대통령의 발길을 밀양지역 할머니들이 잡았다.
이날 탈원전 선포식을 마치고 돌아가는 문재인 대통령의 발길을 막아선 할머니들이 보라색 티와 빨간색 조끼를 입고 대통령 앞에 엎드렸다. 이들 할머니는 밀양 송전탑 건설반대 주민들이었다. 이들은 11일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2년을 버텨온 밀양송전탑, 이제는 문재인 정부가 해결해야 합니다”라며 문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34통을 청와대 사회혁신수석실 행정관에게 전달했다.
주민들은 신고리5·6호기 건설 중단한다면 송전탑을 철거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다음은 '덕촌할매'와 '숭진댁할매'가 문재인 대통령한테 쓴 편지 전문이다.
'덕촌할매' 손희경 할머니 호소문
문재인 대통령님. 저는 밀양 부북면 위양리에 사는 덕촌할매입니다. 한평생 농사만 지으며 자식 4명 성장시켜 왔습니다. 그런데 송전탑 반대 운동 하면서 너무도 억울하여 대통령님께 하소연 올립니다.
시내 목(욕)탕에 가면 돈 받고 반대운동 한다든지, 누구는 빨갱이라고 하고, 정말로 분하고 억울합니다. 저는 세금도 꼬박꼬박 내고 남한테 싫은 소리 안 들으며 살아 왔는데, 왜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합니까. 돈 좋아하지 않는 사람 어디 있습니까. 그렇지만 고향 지킬려고 온갖 유혹도 뿌리치고 양심을 지켰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님. 2014년 6월 8일 날, 대통령께서 127번(밀양 송전탑) 움막을 방문하신 것 기억하시나요. 그날 울면서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살려달라고. 그 때 무언가 도울 길을 찾겠다 하셨습니다. 이제는 밀양 송전탑 문제를 해결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여생, 송전탑을 뽑아내는 것이 저 소원입니다. 문재인 대통령님, 나(이) 많은 할매 소원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숭진댁 할매' 박윤순 할머니 호소문
저는 많이 배우지도 못했지만 그래도 좋고 나쁜 것은 알고 있습니다. 무(뭐)가 올(옳)고 무가 나쁜 것이(라)는 것을요. 나쁜 것은 무엇인가 하면요. 송전탑이 건강에 안 좋다는 것. 한전은 마을 돈잔치. 경찰이 무지막(지)하게 철거한 움막. 밀양시청 공무원의 마을 주민 이간 시키는 것 말이요.
올(옳)고 좋은 것은요.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었다는 것, 그리고 원전 짓는 것 중단하는 것, 그리고 원전 짓는 것 중단하는 것, 그리고 나쁜 짓하는 놈들 잡아넣는 것, 문재인 대통령님 재발 나쁜 것 확실히 조사하여 가슴에 매친(맺힌) 엉(응)어리 좀 풀어 주십시오. 그리고 필요 없는 밀양 송전탑 뽑아 주십시오. 사랑합니더(다). 문재인 대통령님. 밀양 송진댁 할매.
이날 행사에는 고리 원전과 가장 가까운 초등학교인 월내초등학교 3학년 어린이 8명도 함께 초대됐다.
문 대통령이 어린이들과 함께 고리 1호기 정지를 상징하는 버튼을 누르자 장내 대형스크린에는 '더 안전한 대한민국'이라는 글자가 새겨졌고 참석자들은 박수를 치며 환영의 뜻을 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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