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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김덕권 칼럼] 요하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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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김덕권 칼럼] 요하문명

김덕권 기자 duksan4037@daum.net 입력 2017/06/20 07:22

요하문명

▲ 김덕권 전 원불교문인협회장, 칼럼니스트요하문명(遼河文明)을 아시는지요? 요하문명은 우리 민족의 찬란한 문화유산으로서 현재 내몽골 우하량, 적봉을 비롯한 요하지역에서 큰 세력을 형성하며 살았던 우리민족의 옛터전입니다. 중국의 자랑 황허문명(黃河文明)보다 3~4천년이나 더 오래된 역사이지요. 그러나 요하문명은 안타깝게도 현재 중국의 역사로 뒤바뀌고 말았습니다.

 

중국은 우리 동이족(東夷族)의 수장 치우(蚩尤)를 중국의 황제로 탈바꿈 시켰습니다. 그리고 요하문명마저도 중국역사에 편입시켜서 심하게 왜곡하여 기세 등등 동북공정을 펼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는 요하문명을 우리나라 역사에 포함시키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제대로 학계에서조차 크게 주장을 펼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요하문명을 그대로 중국의 역사에 편입되는 되는 것을 침묵, 방관하고만 있는 실정이지요.

 

아하! 요하문명! 가슴 뛰는 우리의 시원(始原)을 눈앞에서 도둑맞는 이 현실을 그냥 방치하고만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번에 [덕화만발]의 <덕화아카데미>에서는 요하문명을 이룩한 선조들의 얼을 되새기고, 잃어버린 우리 고대사를 올바로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요하문명의 대가(大家) 우실하 교수를 모시고 <요하문명의 발견과 동북아 상고사>에 대한 초청강연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번 강연은 <덕화아카데미>의 <우리역사 바로 알기> 첫 행사로 우리 민족의 위대한 상고사에 대해 우실하교수의 요하문명에 대한 강연과 질의응답으로 이루어집니다. 요하문명은 우리 민족의 찬란한 문화유산으로서 현재 내몽골 우하량, 적봉을 비롯한 요하지역에서 큰 세력을 형성하며 살았던 우리민족의 옛터전입니다.

 

요하는 중국의 동북지방 남부 평원을 휘돌아 흐르는 강입니다. 얼핏 들어도 우리에게는 귀에 익은 강이지요. 을지문덕(乙支文德)이 수양제의 30만 대군을 물리쳤던 곳입니다. 청동기문화를 선도했던 비파형 동검과 투구며 빗살무늬토기와 적석총이며 여신상(女神像)으로 대표되는 신전이 있었고, 씨(c)자형 옥기(玉器)로 상징되는 옥기문화가 출토되어 새로운 제 5의 문명으로 눈길을 끄는 곳이 바로 요하 유역입니다.

 

여기서 꽃을 피운 문화가 이른바 요하문명입니다. 하가점(夏家店)이나 우하량(牛河梁)과 흥륭와(興隆窪)와 오한치(敖漢旗), 그리고 조보구(趙寶溝)를 중심으로 하는 조양시(朝陽市)와 적봉시(赤峰市)가 그 문화의 요람이기도 합니다. 고조선(古朝鮮) 시기에 우리 한민족의 선조들이 둥지를 틀고 삶의 기쁨과 슬픔을 나누었던 그런 곳이 바로 여기 아닌가요?

 

1980년 이후 중국이 그리도 내세우던 황하문명을 넘어 요하문명의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지난날 중국인들이 만리장성 넘어 있는 동쪽의 오랑캐쯤으로 야만시 했던 이 지역이 바로 요하문화의 발상지입니다. 말하자면 요하문명이 중원에 청동기와 철기문화를 일으켜 중원은 물론이고 새로운 동북 아시아문화 발전에 횃불을 든 곳이 요하일대인 것입니다.

 

요하문명이 중원의 역사를 약 1천 년 이상 역사를 끌어 올리고, 인류의 4대 문명 가운데 가장 오래된 문화로 끌어올리게 된 것입니다. 그 작업으로 중국은 지금 마침내 국가의 역사문화의 큰 과제로 공정(工程)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천단(天壇)과 신전(神殿), 돌로 쌓은 적석총(赤石), 그리고 씨(C)자 형 옥기(玉器)로 대변되는 신석기 이전의 문명의 실체를 자기네 역사로 편입시키고 있는 것이지요.

 

고인돌이나 비파형 동검, 그리고 빗살무늬 토기가 분포하는 이 지역이 우리 고조선 문명의 텃밭이었던 것입니다. 요하는 그 유역이 한반도와 맞먹고 그 길이가 압록강의 배에 가깝습니다. 그러니까 백두산, 곧 대흥안령 사이를 흐르며, 드넓고 기름진 대평원을 이루어낸 어머니 강입니다.

 

중국은 2002년부터 2005년까지 중화인민공화국이 실시한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에 입각한 공정 연구의 일환으로, 2003년 6월부터의 '중화문명탐원공정'(中華文明探源工程)을 통하여 중국은 황하문명보다 빠른 요하문명을 중화문명의 뿌리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까지 야만인인 동이족의 땅으로 보던 요하문명을 중국문명의 시발점으로 보기 시작했으며, 이를 중화민족과 중국사에 편입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중국은 이 홍산 문화를 중심으로 한 고대 문명을 1995년에 정식으로 요하문명(遼河文明)으로 명명하였습니다. 요하문명의 발견으로 중국 학계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전통적으로 동이족의 영역이라고 보던 이곳에서 중원의 황하문명보다 시기적으로 앞서고 문화적으로도 더 발달된 요하문명이 새롭게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요하문명은 기존의 사서(史書)에 단 한 자도 기록이 없는 철저히 잊힌 문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요하문명을 고대 동이족의 문명으로 인정하게 될 경우, 중국의 상고사는 동이족 역사의 방계역사로 전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 때문에 요하문명의 중심적인 유적들이 전모를 드러낸 이후에 중국은 국가 주도의 역사 관련 공정을 꾸준히 진행하면서 요하문명을 ‘중화문명의 기원 지’로 만들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중국학계에서는 요하문명의 주도 집단이 동이족이 아니라 중국인들의 조상인 황제 족(黃帝族)이라는 논리를 정설로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요하문명 지역에서 후대에 등장하는 모든 민족은 황제족의 후예라고 주장하는 것이지요. 현재 중국의 논리대로라면, 이 지역에서 발원한 단군, 예 · 맥 족, 부여족 등이 모두 황제족의 후예로 중화민족의 일부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단군, 주몽, 해모수 등등 한국사의 주요 인물들 역시 황제족의 후손이 되며, 한국의 역사 · 문화 전체가 중국의 방계 역사와 문화로 전락한다는 점을 우리는 기억해야만 합니다.

 

어떻습니까? 우리 <덕화아카데미>에서 우실하교수를 초청하여 펼치는 <요하문명의 발견과 동북아 상고사>는 굉장히 뜻이 있는 강연이 아닌지요? 역사를 잃은 민족은 영혼(靈魂)이 없이 떠도는 처량한 민족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우리 우실하 교수의 강연을 통하여 민족혼을 되살리는 계기로 삼으면 참으로 좋겠습니다.

 

이 강연에 참석하시는 분은 2017년 6월 26일(월) 오후 5시까지, 여의도 KBS별관 건너 인도네시아 대사관 뒤편 ‘영창빌딩 4층’에 있는 [월불교 여의도교당 대법당]에서 반가운 해후를 하시면 어떨 까요!

 

단기 4350년, 불기 2561년, 서기 2017년, 원기 102년 6월 20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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