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통신넷= 안데레사기자] 농협 조합장은 농협의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연봉이 대체로 1억원 안팎이다. 여기에 운전기사가 있는 승용차도 제공된다. 영농활동비와 업무추진비는 별도로 지급된다.
지역사회에서 영향력을 키울 수 있는 직원 채용 등 인사권을 휘두르는 것은 또 다른 매력이다. 연간 10억원에 이르는 '교육지원 사업비'는 조합장이 어디에 쓸지 실질적으로 정한다.
이렇다 보니 교육지원사업비로 선심성 예산집행을 하는 사례도 있다. A축협은 교육지원사업비 예산을 전용해 2011년부터 2012년까지 2년간 명절 선물로 하나로마트 상품교환권 9억6500만원어치를 구입한 것이 농림축산식품부 감사에서 적발됐다.
농식품부는 "교육지원사업비 등 영농과 직접 관련된 예산을 현금이나 상품권 형태로 지원할 수 없고, 명절 선물비 등 선심성 예산집행도 지양하도록 돼 있다"면서 "해당 축협에 '기관주의' 조치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대형조합이 추진하는 하나로마트와 주유소 등을 감안하면 경제사업 규모는 더 커진다. 지난해 울산시 북구 농소농협의 여·수신 규모는 1조1413억원. 경제사업을 포함함 총 사업규모는 1조2000억원에 달했다. 판매와 구매, 유통 등에서 이권이 개입될 여지가 더 많아진다는 의미다. 조합장들이 조합재산의 토입매입 과정에서 리베이트를 받아 고소·고발 등 법정으로 비화된 사례도 있다.
농촌지역 주민들은 금융과 농자재 구입 등 경제활동의 80∼90%를 농협에 의지하고 있다. 대출의 경우 조합장이 금리와 대출한도, 대상자 선정기준 등을 결정한다. 채권과 관련해 원금과 이자를 감면해줄 수 있는 권한도 갖고 있다. 농산물 판매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구매량과 가격결정까지 한다.
견제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이사와 감사의 경우 대의원회에서 뽑지만 사실상 조합장의 입김이 작용한다. 조합장의 임기는 4년이지만 사실상 무제한에 가까운 연임도 하고 있다. 충남 태안군 근흥농협은 전국 최다선(10선) 조합장이 이끌고 있다.
정치적 입지를 다질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농어촌지역 조합장이 임기 중에 만나는 조합원은 대부분 일반선거 유권자이다. 농협이 주최하는 행사도 많다. 지역 내 각종 행사마다 주요 기관장 다음으로 소개를 받는 지역인사 명단에도 오른다. 일반 선거의 발판으로 삼기에 제격이다. 기초의원과 광역의원 출신이나 고위공무원 퇴직자들이 이번 선거에 출마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깜깜이 선거'가 돈선거를 조장한다는 말도 나온다.
오는 11일 전국 1326개 농·수·축협조합장을 뽑는 ‘제1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가 혼탁선거로 얼룩지고 있다. 금품과 향응 제공은 물론 돈을 미끼로 불출마를 회유하는 사례까지 잇따르고 있다. 전체 조합장을 동시에 뽑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역대 ‘돈 선거’로 불렸던 조합장선거 풍토를 개선하게 위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통합관리하기로 했지만, 현재로서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4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지난달 말까지 고발 93건, 수사의뢰 20건, 이첩 18건, 경고·주의 325건 등 불법 선거운동으로 전국에서 적발된 건수가 456건에 달한다..
◆난무하는 금품 살포
경남 고성에서는 상대후보를 매수한 혐의로 전 고성군의원 B(58)씨가 구속됐다. 현직 조합장에게 “농협 조합장 선거에 출마하지 말아 달라”며 5000만원을 제공한 혐의다. B씨는 현직 조합장이 불출마하면 2억원을 주겠다고 약속했던 것으로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현직 조합장은 “나머지 돈은 1월 말에 주겠다”는 B씨의 말을 휴대전화로 녹음해 곧바로 검찰에 신고했다.
전북 부안에서는 한 농협 조합장 C(61)씨가 검찰에 구속됐다. C씨는 지난달 10일 같은 농협의 유력 조합장 후보로 거론된 조합원에게 불출마 대가로 2700만원을 전달한 혐의를 받고 있다. C씨는 해당 조합원에게 1억원을 주겠다고 약속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전국농협협동조합 노조는 경북 김천시의 한 조합장 D(55)씨를 검찰에 고발했다. 노조는 “D조합장이 지난해 12월 해외연수 명목으로 예산 3000만원을 마련, 이사와 감사 부부들에게 태국 등 해외여행을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원로조합원 생일 축하용품지원비’ 명목으로 3600만원을 편성해 각 조합원 가정을 찾아다니며 3만원 상당의 영농자재교환권을 건네기도 했다”며 “관련 법에 규정된 기부행위 금지에 해당된다”고 강조했다. D씨는 “7년째 해외연수로 진행한 행사일 뿐”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제주시 선관위는 조합원들이 포함된 단체 견학 행사에 현금을 찬조한 후보 E씨를 검찰에 고발했다. E씨는 지난 해 6∼8월 조합원으로 구성·운영하는 단체의 각종 행사에 찬조금 명목으로 7차례에 걸쳐 80여만원의 현금을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귤·멸치·굴비까지 ‘검은 거래’에 등장
표를 매수하는 ‘검은 거래’에 다양한 물품이 등장하기도 했다. 전북지검은 연임을 노리고 조합원들에게 굴비세트를 준 혐의로 현직 조합장 F(59)씨를 구속했다. F씨는 지난해 추석을 앞두고 조합원 300여명에게 택배 등으로 1500만원 상당의 굴비세트를 전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소문을 들은 주민 제보로 전북도 선관위가 나서 적발됐다.
전북 진안군 현직 조합장도 지난해 추석을 앞두고 조합원 180여명에게 자신의 명의가 표시된 315만원 상당의 멸치세트를 제공한 혐의로 검찰에 고발됐다.
제주도의 한 현직 조합장은 지난 2월 조합원들에게 9차례에 걸쳐 70여만원 상당의 빵과 음료수를 제공한 혐의로 검찰에 고발됐고, 강원 화천지역 조합장 입후보 예정자인 G(69)씨는 조합원들의 집을 방문해 지지를 호소하면서 감과 귤 등을 제공한 혐의로 적발됐다.
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 기간에 선거운동을 하다 고발된 사례는 허다하다. 대전시 유성구 선관위는 후보등록 전에 조합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후보를 검찰에 고발했다. 문자메시지는 8570통으로, 조합원의 95%에 해당하는 숫자다. 울산 북구선관위는 조합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발송한 혐의로 최근 H씨를 울산지검에 고발했다.
선거가 혼탁양상을 보이다 보니 이를 겨냥한 피싱 범죄까지 등장했다. 경찰청은 중앙선관위 대표번호를 발신번호로 ‘선거 관련해서 당신이 한 일을 알고 있다. 조용히 넘어가고자 하니 아래 계좌로 100만원을 입금하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가 불특정 다수의 선거인에게 발송된 것으로 확인했다. 경찰은 해당 계좌를 지급정지하고 용의자를 추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