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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문학관 “가난하지 않기 위하여” 『별들의 고향을 다녀오다』

문해청 기자 입력 2019/11/04 01:23 수정 2019.11.04 06:12
배창환 시인,『별들의 고향을 다녀오다』(실천문학사) 시집출판기념회 및 시낭독회
[별들의 고향을 다녀오다] 배창환 시집 / ⓒ 문해청 기자
[별들의 고향을 다녀오다] 시집 배창환 시인 / ⓒ 문해청 기자

 

[뉴스프리존,대구=문해청 기자] 지난 날 '참교육' 교사로서 시대와 아픔을 함께한 배창환 시인의 여섯 번째 신작 시집 출판기념회 및 시낭독회를 2일 대구문학관에서 한국작가회의대구경북지회 주최로 사회자 김수상 시인 진행으로 대구경북지역 문인 지인을 모시고 사실적 리얼리즘 참여문학 실천문학의 진솔한 감흥을 나누는 장을 열었다.

이날 행사는 시인의 신작시를 함께 읽는 낭독회 위주로 진행하고 시에 대한 대담은 『별들의 고향을 다녀오다』배창환 시집 발문을 썼던 문학평론가 정지창 교수(영남대 명예)가 맡아 배창환 시인 삶의 고뇌와 성찰을 풀어갔다.

[별들의 고향을 다녀오다] 배창환 시인
[별들의 고향을 다녀오다] 배창환 시인

다음은 배창환 시인 시집 제목, 대표작 『별들의 고향을 다녀오다』시 전문이다.

추풍령 넘어 옥천 죽향초등학교 부근 시인의 마을, 지용(시인 정지용鄭芝溶) 생가 삽작문은 마침 시인이 출타 중인 듯 비스듬히 닫혀 있었습니다. 예쁘게 단장한 기념관도 때마침 휴관이었지요. 우리는 토담 밖에 놓인 시비(詩碑)와 시인의 입상(立像) 앞에서 기념사진 몇 장 찍고, 담장 그늘 따라 쑥쑥 돋아난 머구(머위) 잎이 새로 이은 초가지붕이랑 앞도랑 실개천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면서, 한 시대의 거울이었던 시인으로서 이름 석 자마저 묻어야 했던 오욕의 시간들을 묵상하듯, 빈 나무 의자에 앉아 봄 햇살을 좀 쬐다 왔습니다.

회북면 회인마을 안쪽 너른 마당, 감나무와 은행나무 그늘에 오장환 시인의 생가가 있고, 새로 지은 그의 기념관에서 제일 먼저 우릴 맞아 준 것은 하얀 벽면에 기대어 함빡 웃고 있는 아이들의 시화였습니다.

역사의 진보를 믿었던, 그래서 그 시절 이 땅에선 살 수 없었던 시인 오장환, 두고 온 고향 하늘과 어머니를 잊지 못하던 그의 시심이 아프도록 맑아서, 돌아서는 우리들 발걸음이 더 무거웠습니다. 상당산성에서 더덕 막걸리를 몇 사발씩 들이켜고 우리는 곧장 고두미마을 단재 선생 사당으로 달려갔습니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곳을 찾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고, 사당 앞 백목련은 휘어질 줄 모르던 선생을 닮아 외곬으로 고개 돌리고 서 있었는데, 사당 뒤 선생이 누우셨던 무덤 자린 움푹 패어, 황소바람만 드나들고 있었습니다.“ 나라 잃고 넘은 국경 다시 밟아 한 줌 재로 돌아오시던 그때나, 동강난 나라의 허리 부둥켜안고 버둥대며 살아가는 지금이나, 선생은 머리 뉠 곳이 없었고 우리는 엎드려 무릎 끓을 데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그 옛날, 한 발짝 앞을 볼 수 없었던 칠흑 어둠에 길을 재고 슬픈 사람들의 가슴에 따뜻한 빛을 얹어 준 별들의 고향에 다녀왔습니다. 그들은 시대보다 먼저 시대를 끌어안아 스스로 상처 입은 별들이었습니다. 우리다 오늘 무수히 상처 입은 별인 것처럼, 그래서 더 오래 우리 곁에 남아 이 땅의 밤하늘을 차지하게 될, 크고 아름다운 별들이었습니다.

다음은 『별들의 고향을 다녀오다』배창환 시집의 발문(정지창 교수) 요약이다.

[삶을 일으켜 세우는 시, 함께 가는 길] 문학평론가 정지창 교수(영남대 명예)

배창환 시인을 처음 알게 된 것은 1984년 무렵이다. 영남대학교로 이직하며 대구에서 발간한 ‘분단시대’ 동인의 판화시집 출간 기념회에서 만났다. 그는 해맑고 단정하며 선비의 기개를 품은 시인이다.

그 무렵 지역의 진보적 문화운동단체인 ‘우리문화연구회’ 문학분과 핵심인물이었다. 현실문제를 외면한 채 언어를 다듬는 데 매달리는 모더니즘 계열의 시인이 많은 대구에서 배 시인을 비롯한 분단시대 동인들은 보기 드문 현실참여파였다.

그래서인지 처음부터 친숙한 동질감을 느꼈다. <<분단시대>> 1집(1954년) 2집(1985년)에 배창환 시인은 「오리걸음」 「시인이 되려는 제자에게」 「마지막 수업을 위한 초고」 등의 교육현황 시를 발표했다. (중략) 1987년 실천문학사에서 학생과 학부모 전. 현직 교사 43인의 교육시를 모은 「내 무거운 책가방」을 펴냈다. 배창환 시인의 시는 세 편(「오리걸음」「수업」「이직」)이 수록되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세 편이 수록된 김진경, 도종환 등은 모두 전교조의 핵심으로 활동하다 해직되었다.

이 무렵 발간된<<분단시대>> 3집에도 배창환 시인은 「다시, 사랑하는 제자에게」 연작을 발표했다. 그 해 7월 채광석 시인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배창환 시인은 추모시(「우리들의 형님, 민족시인 채광석」)를 써서 실천문학사 2번째 시집 「다시, 사랑하는 제자에게」에 발표했다. 1987년 가을 6월 항쟁 열기에 힘입어 대구경북민족문학회 사무국장 김용락 시인, 교사협의회 사무국장은 배창환 시인이었다.

1989년 각 지역 교사협의회가 결합한 전국교사협의회가 만들어지고 이것이 모체가 되어 1989년 5월 28일 전교조가 창립되었다. 전교조의 창립은 전후 한국의 민주화운동에서 한 획을 그은 중요한 사건이었다. 노태우 대통령이 직접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여 전교조를 불법 좌경단체로 낙인을 찍고 1490명 교사를 집단해고한 것은 그만큼 전교조가 군사독재의 뿌리를 흔드는 민주화운동의 핵심 세력임을 확인한 것이다.

그해 12월 전교조 대구지부 이름으로 발간된 해직교사 교육시집 「통일의 꽃씨 민주의 불씨」에 실린 배창환 시인의 시 한 편은 지금도 기억에 새겨져 있다.

선생이 노동잔 줄은 / 해고되고 나서 알았다 // 선생이 이 땅에선 스승이 아닌 줄은 / 개 끌려가듯 끌려간 교원노조 여선생의 머리카락에 뒤엉킨 피를 보고 알았다 // 선생이 선생이 아닌 줄은 / 수천의 목이 잘려나가도 끄떡도 않는 이 철면피한 세상을 보고 처음 알았다 // - 「각성」 전문 -  

해직 이후 배 시인은 전교조와 국어교사모임, 교육문예창작회 등에 열심히 참여했다. 1992년 10월 13일부터 16주 동안 대명동 ‘예술마당 솔’에서 시창작교실을 열어 시민을 대상으로 시 쓰기 지도를 했다. 배 시인은 문학이 삶에서 출발하고 그 궁극적인 목적지도 삶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평생 지켜왔고 가르쳤다.

배 시인은 1994년 복직을 포기하고 전교조 대구지부장을 5년 했다. 5년이 지난 1999년 전교조는 합법화되고 10년 만에 다시 교단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배 시인은 고향 성주로 하방을 실천하고 스스로 자연과 산천이 기적처럼 주어진 선물이자 원소임을 깨닫는다.

내가 왜 지금 여기에 있는가 / 내가 어떻게 여기 이렇게 있을 수 있는가 / 나는 누구이며 누구 대신 여기 있는가 / 나는 누구의 몸이고 마음인가 /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 비로소 내가 되었다 / 시간과 피나게 싸우면서 / 나는 내가 될 수 있었다 / 나도 아이도 모두 진귀한 선물임을 알고 나서 // - 「선물」 부분 -

다음은 배 시인이 평생 참교육 외길을 헤쳐 온 자서전 같은 시 「밤길」 전문이다. 방둑 위로 이어진 길이다 / 저 길 끝 읍내 불빛들이 손에 잡힐 듯 아득하다 / 아무도 없이 혼자 걸어 온 길이 / 눈발이고 선 갈대처럼 휘청 굽은 채 / 어둠 저편으로 빠르게 묻혀 간다 / 얼음을 벗은 깡마른 시내가 / 뱀허물처럼 건기의 모래밭을 빠져나가고 / 따스한 입춘 바람이 볼에 달다 / 어릴 적 캄캄한 밤중 마당귀에 쏘아 올린 / 둥근 오줌발에 걸리던 별들이 그 자리에 떠 있다 // 별 같은 사람들이 나를 일으켜 세우던 때가 있었다 / 그땐 나도 누군가의 작고 작은별이었다 / 무수히 많은 별들이 열고 닫아 온 길 / 길 찾는 이에게 길은 앞으로만 이어질 뿐 / 돌아가는 길은 언제나 보이지 않았다 // - 「밤길」 전문 -

혼자서 아득하고 캄캄한 밤길을 걸어온 시인은 이제 차가운 얼음과 메마른 모래밭을 지자온 시내처럼 지나온 길을 되돌아본다. “따스한 입춘바람이 볼에 달다”고 느낄 만큼 느긋하다.

눈발과 얼음에 묻힌 캄캄한 밤길에서 그를 일으켜 주고 이끌어 주던 별들은 어렸을 때처럼 여전히 그 자리에 떠 있다. 시인 자신도 작은 별이 되어 누군가의 길잡이가 되려고 이제껏 안간힘을 써 왔다. “길을 찾는 이에게 길은 앞으로만 이어질 뿐 / 돌아가는 길은 언제나 보이지 않았다” 구절은 그가 지금까지 어두운 밤길을 헤쳐 오면서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만 내달아 왔다는 뜻이다.

어두운 밤길에서 그에게 지표가 되었던 별들은 누구인가 「사는 일」에는 “세상을 한눈에 넣어 바라보기란 쉽지 않지만 / 그래도 단재(丹齋)선생을 생각해 보면 / 언제나 사는 일이 더 간명해 보인다”는 구절이 보인다. “시간의 잔도(棧道)를 불사르며 가신” 단재 신채호 선생은 “우리 앞에 산으로 돌아와 우뚝” 서 있다.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별들의 고향을 다녀오다」에는 정지용과 오장환, 신채호 등을 “한 발의 가슴에 따뜻한 빛을 얹어 준 별들”이라 지칭하고 있다. “그들은 시재보다 먼저 시재를 끌어안아 스스로 상처 입은 별들”이며 “더 오래 우리 곁에 남아 이 땅의 밤하늘을 차지하게 될 크고 아름다운 별들”이다. 시인 윤동주(「동주의 우물」)와 백석(「벌써 가을」) 4.19 직후 대구에서 교원노조운동을 벌인 이목 선생(「벌써 가을」 「어떤 나무」) 문익환 목사(「벌써 가을」)도 그를 이끌어준 별들이었다.

마침내 바위를 열어젖히고 산을 옮긴 것(「이산」)은 함께 밤길을 헤쳐 온 전교조 동지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함께 쓴 시’ 3부에서 언급된 김종림 선생님(「소례리 길」) 박영균 선생님(「아름다운 사람」)을 비롯한 도반들은 그와 함께 밤길을 헤치고 길을 내며 서로를 이끌어준 별들이다.

그러나 교육현장의 실상이 슬프지만(「빼앗긴 아침」) 시를 보면 한 편의 시처럼 살 것을 아이들에게 당부하는 그는 시인 선생님이다. 외로울 때는 시를 읽어라 / 비가 뜨겁게 젖어 올 때도 읽고 / 함박눈이 곤한 잠 흔들어 깨울 때도 / 시를 읽고 읽어라 / 인생이 한 편의 시가 되게 하라 / 삶은 어차피 내가 산 만큼의 삶 / 감동이 없는 삶은 / 죽은 것이다 // - 「삶, 한 편의 시처럼」 부분 -

배 시인의 시집 4부에 배치된 시편들(「할매해장국집」 「어떤 유모차의 기억」 「분이 이야기」 「노실고개포장마차」 「단촌 개미」 「햅쌀 한 자루」 「연기緣起」 등)은 지금까지 숨가쁘게 달려오느라 미처 자상한 눈길을 주지 못했던 자신과 이웃들의 모습을 수목풍경화처럼 그려내고 있다. 아직 넘어야 할 산이 첩첩이고 알아가야 할 / 사람들 걸어야 할 세상 길 넓고 깊어 끝이 안 보이는데 / 나는 너무 큰 봉우리만 보고 작은 골짝 초목들을 / 못 보고 지나쳐 온 길이 아니었던가 / 한길만 걷는다는 것이 눈 감고 걷는 것이랑 뭐가 다를까 / 알 수 없는 의문이 내 속에 너무나 많은데 // -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부분 -

배 시인이 그러기까지는 지긋한 응시와 담백한 비움의 과정이 선행되었을 것이다. 까마귀 떼 가맣게 나는 빈 나락 논 / 대지는 하늘 아래 있다 / 거기 사람들이 깃들여 산다 / 땅을 이고 / 하늘을 지고 // -「천북(川北)」 전문 - 늦가을 “까마귀 떼 가맣게 나는 빈 나락 논”보다 시인의 시선을 잡아끄는 것은 그 마을에 깃들여 “땅을 이고 / 하늘을 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교사로서의 길이 정년으로 다 끝난 것은 아니듯 시인으로서 배 시인은 아직도 만나야 할 사람들이 많고 써야 할 시가 많다.

느닷없이 고향 성주에 침입하여 농민들의 평화로운 삶을 뒤흔들어 놓은 사드처럼 아직도 그를 분노하게 하고 시를 쓰게 만드는 것들이 세상에는 널려 있다. 그러므로 배 시인은 앞으로도 쉬지 않고 길을 걸으며 보고 만나고 쓸 것이다.

두고는 차마 떠날 수 없는 / 아이들 이 작고 슬픈 땅에서 내가 만난 / 선하고 아름다운 고귀한 이들 / 아직 쓰다 만 시와 도달하지 못한 꽃들과 / 떠돌아 헤매느라 못 가 본 세계의 경지 / 아직 더 오래 만나야 할 사람들 / 그 앞에 내 무릎 고요히 꿇어 엎드려지는 // - 「아직은 여기」 부분 -

다음은 「별들의 고향을 다녀오다」 배창환 시집 뒷면 표사 전문이다.

이 시집에는 배창환 시인의 생 위에 내리던 고마운 햇살과 그늘이 함께 있다. 바람에 쌓여간 시간이 있다. 변함없이 푸르른 하늘같은 것이 있다. 배창환 시인은 “시대보다 먼저 시대를 끌어안아 스스로 상처 입은 별들” 중의 하나였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크고 아름다은 별이었다. “위대한 평교사”였다.

“거울 속의 내가 잡초로 보였을 때 / 내게 물을 주신 선생님”으로 아이들은 배창환 시인을 기억한다. 스승의 날이면 끝도 없이, 순서도 없이 깊은 숲 낙엽처럼 쌓이는 제자들의 문자, 소망과 그리움의 문자 애틋하고 따뜻한 언어들은 그가 어떤 교사였는지 짐작하게 한다. 부럽다.

이 언어들은 “잠이 지배하는” 아침 수업 시간을 통과하고 난 뒤 만난 언어들이다. “책을 창밖으로 내던지고 싶은” 시간을 견디고 난 뒤에 만난 아프고 절절한 언어들이다. 아직도 그는 길에서 시를 쓴다. 아직도 그의 시는 뜨겁다.

연민의 눈으로 소소한 것들, 소외된 사람들, 변두리에서 살아가는 작고 힘없는 이들을 바라본다. 따뜻한 삶을 그리워한다. 길 끝에서 부디 그의 오래된 집, 오래 그리워한 옛집, 정신의 평온한 거처를 만나게 되길 바란다. - 도종환 시인(전. 문체부 장관) -

다음은 배창환 시인의 ‘시인의 말’ 전문이다

참 오랜만에 시집을 낸다. 그동안 시를 떠나 산 적이 없고 사는 일에 게으르지 않았는데도 유독 내 시집을 내는 일에 게을렀다는 것은 시와 삶 어느 한쪽 또는 모두가 서툴렀거나 조화를 얻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일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듯이 사는 일도 시를 쓰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삶은 언제나 내가 만드는 삶이고 시도 내가 쓰는 것이므로 결국 내가 커지는 것 외 다른 방법이 없다는 걸 안다. 그걸 믿고 또 한 걸음 디뎌 보는 것이다.

이 작고 느린 시집을 기다려 주고 채찍을 주신 분들 도반들 제자들 스승들께 진 사랑의 빚 크고 깊다. 감사드린다. 2019년 초가을 - 배창환 시인 -

대구문학관 '가난하지 않기 위하여' 배창환 시집 [별들의 고향을 다녀오다] 출판기념회와 시낭독회를 마치고 문학관 뒷편 송이순두부찌게식당에서 문인 문우와 후배들 / ⓒ 문해청 기자
대구문학관 '가난하지 않기 위하여' 배창환 시집 [별들의 고향을 다녀오다] 출판기념회와 시낭독회를 마치고 문학관 뒷편 송이순두부찌게식당에서 문인 문우 시인과 후배 / ⓒ 문해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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