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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김덕권 칼럼] 아름답게 죽는 법..
오피니언

[덕산 김덕권 칼럼] 아름답게 죽는 법

김덕권 기자 duksan4037@daum.net 입력 2017/06/29 15:01

아름답게 죽는 법

▲ 김덕권 전 원불교문인협회장, 칼럼니스트 지금으로부터 꼭 1년 전, 우리 원불교 여의도교당 금산(金山) 김옥금 교도회장님이 폐가 굳어지는 병으로 열반(涅槃)에 드셨습니다. 저와는 초창 여의도교당에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오늘 날의 대 여의도교당으로 발전시킨 주역의 한 분이십니다.

 

이 금산이 열반하기 두 달 쯤 전인가 제게 전화를 주셨습니다. 원체 마음이 통하는 동지라 모든 것을 스스럼없이 털어놓는 사이입니다. “덕산 형님! 병원에서 6천만 원만 들이면 살수 있다고 해요. 굳어가는 저의 폐를 통째로 바꿔 준다고 하네요. 어쩌면 좋을까요?”

 

잠시 침묵이 흐르고 다시 말 합니다. “이제 살만큼 살았습니다. 그 거금을 들이고 수술을 받는다고 해도 제가 오래 살아 갈 수 있을까요? 그냥 나머지 인생 가족들과 교당일이나 열심히 하고 떠나고 싶네요!” 얼마나 숙연한 말입니까? 이 말을 듣고 저는 금산의 법력과 해탈도인임을 확인하고 저의 부족한 법력을 되돌아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어차피 ‘노병사(老病死)’는 우리의 숙명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죽습니다.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쳐도 갈 사람은 다 갑니다. 식물인간으로 엄청난 돈을 들이고 생명만 유지 한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우리들의 맑고 밝고 훈훈한 [덕화만발] 카페 <회원자유게시판>에 윤기일 선생님이 <아름답게 죽는 법>을 제시 해주셨습니다.

 

「켄 머레이(Ken Murray)는 25년 간 가정의학과 의사와 USC교수를 지낸 은퇴 의사다. 그는 사촌형의 죽음에 대해서 아래와 같은 글을 남겼다. “몇 년 전 내 사촌형 토치에게 발작이 왔다. 폐암이 뇌로 전이된 것이다. 여러 명의 전문의를 소개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상태로 볼 때 공격적인 치료, 예를 들어 화학항암요법을 받기 위해 1주일에 3~5번 병원을 찾더라도, 4개월 정도밖에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토치는 뇌부종을 다스리는 약만 복용하고 다른 어떤 치료도 거부했다.

 

이후 그는 우리 집으로 이사를 왔다. 우리는 8개월 동안 많은 것들을 즐기며 살았다. 토치는 디즈니랜드도 처음 갔다. 집에서는 내가 해주는 요리를 먹으며 스포츠 중계를 즐겼다. 병원 밥 대신 맛있는 것을 마음껏 즐기게 됐다. 심한 통증도 없었고 기분은 항상 최고였다.

 

하루는 그가 일어나지 않았다. 토치는 3일간 코마상태로 잠을 자다가 세상을 떴다. 8개월 동안 의료비용은 약값 20달러가 전부였다. 토치는 삶의 길이가 아니라 질을 원했다. 만약 최고의 말기치료가 있다면 그것은 존엄 사다. 나도 임종 단계에서 어떤 요란한 조치 없이 굿나잇으로 점잖게 떠날 것이다.”」

 

머레이는 이 글을 통해 공격적인 말기치료(End-of-life care)의 허무함과 고비용, 그리고 최악의 죽음이 환자와 가족에게 주는 고통에 대해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한 것입니다. 상당수 의사들은 말기치료 과정에서 환자들이 겪는 고통과 미미한 생명연장 효과를 현장에서 목격한 사람들이기에 정작 자신들은 그러한 말기치료를 거부한다는 것입니다.

 

일반사람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살려달라고 의사에게 매달립니다. 하지만 의사들 자신들은 점잖은(gentle) 죽음을 택함으로써 일반인들과 다른 모습을 보인다고 머레이는 쓰고 있습니다. 그가 의사로 근무할 때 “내가 만일 저런 말기환자가 된다면 나를 죽여주게”라는 속삭임을 많이 들었다고 합니다.

 

어떤 의사는 아예 목걸이나 문신으로 응급소생처치 거부를 의미하는 ‘NO CODE’를 몸에 부착하고 있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무의미하고 고통스러운 죽음으로 이끌게 되는 말기치료가 계속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머레이는 환자, 의사, 시스템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환자와 가족들은 결과와 관계없이 ‘무조건 살려 달라’고 의사에게 매달리고, 의사들은 그들의 요구를 거부하기 어렵다는 것. 또 병원 가이드라인에 따라 치료를 하지 않으면 소송을 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 그래서 환자와 가족에게는 말기치료의 참혹한 진상에 대해서는 잘 말하지 않고 치료로 들어가는 게 무난하고 수익도 발생하기 때문이라고 머레이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머레이는 말기치료 거부를 미리 밝혔던 사람이 뇌졸중으로 혼수상태가 되었을 때 가족과 상의해 생명연장 장치를 멈춘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 환자가 미리 의사표시를 하지 않았다면 아마 몇 주 더 고통 속에 생명을 연장시키고 50만 달러의 의료비가 청구되었을 것이라고 의료계 현실을 꼬집었습니다.

 

어떻습니까? ‘많은 의사들은 투병하는 말기환자의 괴로운 모습을 눈앞에서 지켜봅니다. 항암제는 의사가 자신과 가족에게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른 환자에게는 권하는 치료 중에서 가장 흔한 치료일 것입니다.’ 얼마나 오래 사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를 택하는 것이 진정한 웰다잉(Well-Dying)이 아닐까요?

 

아름답게 죽는 법은 아름답게 사는 법보다 어렵습니다. 살면서 지켜야 할 것들을 모두 지키면서 착실하게 살아도, 죽음이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다가오기 때문이지요. 살다가 죽을 때를 맞춰 편안하게 떠나는 복(福)이 최고의 복입니다. 인도의 요기(yogi)들은 죽음이 임박하면 자기 호흡수를 세어보면서 죽음을 예측하고 준비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깊고 긴 수행(修行)의 덕으로 죽음을 앞당겨 평화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수행자들이 금산 김옥금 정사(正師)처럼 죽음에 임박하면 곡기(穀氣)를 끊고 편안해 하는 모습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가 죽을 때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는 수행은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첫째, 이 몸이 내 것이 아니고 사은(四恩) 공물(公物)임을 깨치는 것입니다.

둘째, 현재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셋째, 인과의 이치를 철저히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이란 무대에서 언젠가는 모든 인연을 끝내고 떠나야 하는 우리들이 꼭 닦아야 할 긴 울림이 아닐 까요!

 

단기 4350년, 불기 2561년, 서기 2017년, 원기 102년 6월 29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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