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통신넷= 김대봉기자] 2010년 6월,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관중석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다름 아닌 서울 각지의 교회 신도들. 이날의 행사는 '6·25전쟁 60주년 평화기도회'라는 이름으로 개최됐다.
기도회를 진행하는 사회자인 목사가 단상에 오르고, 그 옆에 마이크를 잡고 누군가가 함께 서 있다. 그 남자는 바로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으로 이날 행사를 위해 한국 개신교가 초대한 손님이었다.
카메라는 신도들의 열성적인 참여로 대성황을 이룬 '평화기도회' 모습을 비춘다. 그리고 방송에 출연한 부시 전 대통령이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라고 확신에 찬 발언을 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2003년 미국은 UN과 유럽 다수 국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전쟁을 일으켰다. 하지만 전쟁의 명분이던 '대량살상무기'는 이라크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는 부시 전 대통령의 발언은 "이에 (대량살상무기가 없었다는 사실에) 사과할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14만 명에 달하는 이라크 민간인의 목숨을 앗아간 전쟁, 그 전쟁을 직접 승인한 인물을 '평화기도회'의 간증인으로 초청한 아이러니한 상황. 보고 있자면 머리가 지끈거리는 이 장면은 다큐영화 <쿼바디스>(김재환 감독)의 오프닝이다.
한국 대형교회의 부끄러운 실상
지난 10일 개봉한 영화 <쿼바디스>는 한국의 대형교회들의 부끄러운 실상을 담았다. 대형교회가 건물의 규모 등 외적인 부분에 집착하면서 신도 수를 늘리고자 안간힘을 쓰는 모습은 '종교의 기업화'라는 표현을 떠올리게 한다. 담임목사가 아들에게 교회 내의 지위를 물려주면서 권력을 '세습'하는 것도 그렇고, 물러나는 목사에게 '전별금'이라는 명목으로 수십억 원의 돈을 퇴직금처럼 지급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교회는 점점 커졌고, 예수는 점점 작아졌다. 아버지 목사가 교회의 주인이고, 아들 목사가 다음 주인이다. 다들 탐욕에 미쳐 버렸지만 교회엔 침묵만 흐를 뿐이다."
전국 편의점 수가 2만5천 개인 시대에 교회는 7만8천 개에 육박하는 현실. 강남에 위치한 '사랑의교회'는 거대한 건물을 짓기 위해 3천억 원에 가까운 비용을 지출한 것으로 추정된다.
영화에서는 이 금액이 "아프리카 대륙에 위치한 국가 하나의 1년 예산과 맞먹는다"고 덧붙인다. '전도'를 위해 아프리카를 비롯한 다양한 국가를 방문하지만, 정작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은 교회 건물을 짓는 일에 쓰는 것이다.
다른 대형교회도 건물을 담보로 금융권 대출을 받아 증축하는 추세라는 점도 영화에서 지적된다. 개신교계에서는 "사람이 아니라 건물이 전도를 하는 것"이라는 소리까지 공공연히 나돌고, 신도를 끌어모으기 위해서 무리한 대출을 받아 지은 건물이 부동산 경매 매물로 나오는 일도 잦다는 것. 영화에 등장한 부동산 전문가는 "성당이나 사찰은 경매에 나오는 일이 거의 없지만, 교회의 경우는 한국에서 흔한 일"이라 증언한다.
뿐만 아니라 영화 <쿼바디스>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았을 법한 대형교회의 이름들을 추가로 거론한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 가문의 횡령과 배임 파문, 성추행 논란으로 삼일교회에서 물러난 뒤 홍대새교회로 자리를 옮긴 전병욱 목사, 왕성교회 길자연 목사의 교회 세습 의혹도 조명된다.
권력유착으로 부패하고 망가진 종교
영화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특유의 유머감각을 시종일관 유지한다. '개그감'을 살리기 위한 장치로, 목사들을 집요하게 쫓아다니는 인물인 '마이클 모어'를 만들어 투입한다.
그는 <볼링 포 콜럼바인>이나 <식코> 등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미국 영화감독 '마이클 무어'와 모습이나 행동이 흡사하다. 감독 대신 영화에서 대형교회 목사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그는 다양한 공간에서 많은 인물을 카메라에 담고 또 자신의 눈으로 바라본다. 첫 장면인 서울월드컵경기장 평화기도회는 물론 '조용기 목사 퇴진을 위한 기자회견' 현장에도 직접 나타나, 그곳이 아수라장으로 변하는 상황을 묵묵히 응시한다.
마이클 모어의 시선이 닿는 곳에는 '예수의 사랑과 자비'를 교리로 삼던 종교가 퇴색하고 기형적으로 변하는 과정과 그 결과물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지하철에서 혹은 명동 길거리에서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크게 외치며 전도하는 사람들처럼, 우리가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는 일상에서 말이다.
교회가 권력의 곁에 가까이 다가가면서 망가진 것은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장로회가 헌금을 모아 일본군에 자동차와 비행기를 헌납한 때부터 시작한다. 1980년 8월 개신교 지도자들이 모여 광주민주화항쟁을 무력으로 진압한 전두환을 위해 조찬기도회를 열고, 그의 건강과 축복을 기원하는 장면도 나온다. 독재정권의 만행을 찬양하는 기도를 읊조리는 광경은 실로 충격적이다. 잘못된 권력을 비판하고 저항하는 사람들을 돕지는 않고, 오히려 오랜 세월 동안 적극적인 권력유착의 행태를 보인 것이다.
비교적 최근인 200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는 "장로 대통령을 만들자"며 노골적으로 특정후보의 선거운동을 한 실태도 당시 녹음된 대형교회 목사들의 목소리를 통해서 공개된다. 보수진영 후보에게 투표하지 않으면 "생명책에서 신도의 이름을 지워버리겠다"며 웃어젖히는 목사의 설교는 종교와 정치의 '잘못된 만남'을 압축해 보여준다.
<쿼바디스>가 교회에 던지는 물음, 당당히 답할 수 있나
"정말 예수 믿는 사람 맞습니까?"
<쿼바디스>에서 감독이, 재판에 출석하는 조용기 목사에게 던진 질문이다. 영화는 같은 물음을 오늘날 한국의 대형교회에도 던진다. 성추행과 탈세 및 100억 원대 교회자금 배임 혐의, 기업식 합병 방식까지 동원한 교회세습. 물질주의에 찌들어 버린 대형교회의 민낯을 보고 나면, 과연 목사로 불리는 그들이 진정 '예수 믿는 사람'인지 궁금해진다.
카메라는 조지 W. 부시가 참여한 '평화기도회'가 열린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이동해 그 아래의 '홈에버' 매장에서 벌어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점거농성을 비춘다. 정리해고의 부당함을 호소하던 당시의 모습은 최근 영화 <카트>로도 만들어진 바 있다. 당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홈에버의 모회사인 이랜드 박성수 회장이 다니는 '사랑의교회'를 찾아가지만, 교회 앞에서 저지 당한다. 만약 그 자리에 예수가 있었다면 수만 명이 모인 경기장 기도회로 갔을까, 아니면 길거리에 나앉은 노동자를 만나러 갔을까?
약자를 외면하면서 성장과 발전만을 외치는 교회의 태도는 스크린에 등장하는 거대한 교회 건물이 일대에 큰 그림자를 드리우는 풍경과 밀접하게 맞닿는다. 그러면서도 당사자들은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거나 "예수의 뜻이기에 나는 행할 뿐"이라며 자기정당화를 시도한다. '무인드론'으로 촬영한 대형교회 외부의 전경이 웅장하기보다 기괴하게 와닿는 이유는 그런 종교인들의 자세 때문일지도 모른다.
영화의 제목인 '쿼바디스(QUO VADIS)'는 라틴어로 '어디로 가시나이까'라는 뜻을 지닌 성경 구절이다. 영화는 제목처럼 피할 수 없는 질문을 관객에게 내놓는다. 오늘날 한국의 교회는 어디로 가고 있느냐고 말이다. 이 물음에 당당히 답할 수 없다는 것은, 감독의 말처럼 '복음과 로또를 함께 파는 한국 교회가 흔들리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종교인 과세 또 물 건너갔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로마로 가서 제도가 되었고, 유럽으로 가서 문화가 되었고 마침내 미국으로 가서 기업이 되었다. 그런데 제가 한 가지 덧붙이자면, 한국으로 와서 대기업이 되었다”
미국의 어떤 목사님이 한 말이라고 한다. 김재환 감독의 영화 <쿼바디스>가 지난 10일 개봉됐다. 이 영화는 ‘갈릴리에 오신 예수의 정신을 잃어버리고, 대기업화 되어가는 타락한 한국교회’를 주제로 가난한 자들을 외면하고, 부자들의 눈물을 닦아주기에 바쁜 일부대형교회 목회자의 죄악상을 고발하는 내용이다. 대기업화되고, 교회세습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한국의 대형교회들...
기업이 된 일부 한국대형교회. 그들은 왜 세금을 내려하지 않을까?
재적 교인 1만 명에 연간 헌금액수가 1백억에 육박하고 담임목사의 연봉이 무려 6억 원을 받기도 한다.
과거 한 언론 매체가 어느 지역 교회 세입 세출 예산서를 입수하여 공개한 자료 중 담임 목사의 지출 항목을 보면 '생활비 5400만 원, 자녀 학비 보조(해외 유학) 4920만 원, 목회비 600만 원, 교역자 연구비 600만 원, 교역자 도서비 480만 원, 교통비 360만 원, 그리고 교역자 수양비 60만 원 등으로 외견상 담임목사의 연봉은 모두 합쳐 1억 2420만 원이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여기에 접대비 1000만 원, 축·조위비 700만 원, 도서 및 정보통신비 500만 원을 비롯해 교회가 제공한 차량인 그랜저XG와 기름 값, 30평 아파트와 각종 공과금 등을 모두 합치면 담임목사에게 준 비용은 거의 2억 원가량 된다.
신약성서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할 수만 있으면 예수를 트집 잡아 올무에 넣으려고, 로마의 화폐인 가이사의 동전을 갖고 와 예수께 “로마 정부에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은 “가이사의 모습이 찍혀 있는 동전이거든 가이사에게 돌리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리라”」고 했다. 그런데 왜 교회는 예수님이 가르치신 가이사의 것을 움켜쥐고 내놓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있는 것일까?
대형교회의 비리와 추태는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일부 대형교회 목회자의 탐욕과 대물림 그리고 교회헌금 횡령 등으로 고발돼 실형을 받은 타락한 모습은 예수의 가르침과는 딴판이다. 예수는 없고 돈을 우상으로 섬기는 대기업이 된 교회. 오죽하면 ‘쿼바디스’라는 영화까지 만들어 비판의 대상이 되었을까? 영화 쿼바디스에는 일부 대형교회의 목사는 막대한 교회 재산을 대물림하기 위해 세습을 일삼고, 아들을 통해 ‘음란 신문’을 만들기도 하고, 교인들을 성추행했다는 이유로 교회에서 쫓겨난 뒤 새로운 교회를 개척하고, 교회의 헌금을 횡령해 쇠고랑을 차는 등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영화에 나오는 얘기만 아니다. 현실은 쿼바디스 이상의 추태와 비리로 얼룩져 있다. 해묵은 논란거리였던 종교인 과세 법제화가 올해도 같은 또 물건너 갔다. 1968년 당시 이낙선 초대 국세청장이 종교인에게도 근로소득세를 부과하겠다고 천명한 이후 올해로 46년째다. 1994년 천주교가 종교계 중 가장 먼저 소득세 원천징수를 시작했지만 국세청은 아예 “종교인과세를 강제로 할 의사가 없다며 자율에 맡기겠다”고 했다.
올해도 지난 9일 정기국회 본회의에서 ‘종교인 과세’를 담은 소득세법 개정안 처리는 불발됐다.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은 10일 내년 1월 시행 예정인 종교인 과세 관련 소득세법 시행령 규정 적용을 2년 유예하는 방안을 정부에 요청키로 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이 종교인 과세 시행을 갑자기 연기해달라고 요청한 이유는 대형교회들의 반발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국회 기획재정위 논의 과정에서 일부 야당 의원들은 법제화를 요구했지만, 새누리당은 종교계 일각의 반대를 들어 난색을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목사·승려·신부 등 성직자가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는 유일하게 한국뿐이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국민 개세주의(國民皆稅主義)는 결코 협의나 합의의 대상이 아니다. 현행 세법에 ‘종교인은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조항이 있는 것도 아니다. 외국 종교인들도 예외 없이 세금을 내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의 종교인들만 ‘면세특권 계급’이 된 것은 정치권의 책임이 가장 크다. 특히 국회가 종교계 표를 의식해 종교인 과세를 무력화하는 데 총대를 멨다. 정치권은 이번에도 종교계에 일일이 의견을 물어보고 협상을 한다며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다.
종교계 전체가 납세를 반대하는 것도 아니다. 천주교는 주교회의 결정에 따라 이미 1994년부터 세금을 내고 있다. 불교 역시 과세를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4개국 가운데 종교인에게 과세를 하지 않고 있는 나라는 유일하게 우리나라뿐이다. 헌법에 명시된 ‘납세의 의무’는 대형교회를 예외로 인정하지 않는다. 종교인과세 문제를 언제까지 뜨거운 감자로 남겨 둘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