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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역 사고후 1년, 변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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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역 사고후 1년, 변화는?

이하영 기자 입력 2017/07/01 14:39 수정 2017.11.13 09:30
[기억은 권력이다] 구의역, 그곳에 남겨진 이야기

▲구의역 9-4 승강장 스크린도어에 붙여진 위령표
2017년 5월 27일,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는 일 년 전 사고로 세상을 떠난 김모 씨를 추모하는 문화제가 열렸다. 김 씨는 구의역에서 승강장 안전문(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정비공이었다. 열아홉의 나이에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그의 처지와 유품에서 발견된 컵라면은 당시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렸다. 또 앞서 유사한 사고가 반복적으로 발생해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그간의 미진했던 대응을 향한 비난의 목소리도 커졌다. 들끓는 여론에 서울시와 서울메트로는 즉각적인 대응을 약속했다. 사고 후 일 년이 지난 지금 그 약속은 얼마나 지켜지고 있는지, 구의역 9-4 승강장에 남겨진 이야기를 돌아봤다.


효율화로 시작된 안전위협
 
사고의 출발점은 2008년 정부가 추진한 공공기업 경영효율화 정책이었다. 사고 당시 김 씨가 소속돼 있던 은성PSD는 서울메트로와 외주계약을 맺은 스크린도어 유지보수 업체였다. 이 업체는 공공기업 효율화 정책으로 인해 유지보수 업무를 담당할 수 없는 사람들로 채워졌고 그로 인해 현장업무가 소수의 노동자에게 집중됐다.
 
2008년 정부는 서울메트로를 포함한 5개 공기업(서울메트로, 서울도시철도공사, 서울시설공단, 농수산식품공사, SH공사)에 10-20%의 인력감축을 요구했다. 외주를 확대해 ‘조직슬림화’를 추진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서울메트로에 제시된 목표 인력감축률은 5개 공사 중 가장 많은 20.3%(3,406명)였다. 인력감축을 위해 서울메트로는 ‘비핵심업무’로 분류된 일부 업무를 은성PSD와 같은 외주 회사에 맡기고 정년을 1-5년 앞둔 정직원들의 퇴직신청을 받았다.
 
▲2015년 서울메트로와 은성PSD의 계약체결 현황 구의역사고진상규명위원회 ⓒ"구의역사고조사보고서 상설"
 
문제는 서울메트로가 해당 직원들에게 외주업체인 은성PSD로 전적할 것을 제안한 데 있었다. 서울메트로는 퇴직신청을 한 직원들에게 ▲1-3년 연장된 정년기간 ▲서울메트로의 60-80%에 해당하는 연봉 ▲서울메트로와 동일한 수준의 복지 등을 약속하며 전적을 권유했다. 이에 따라 은성PSD의 정원 125명 중 72%에 달하는 90명이 서울메트로 출신으로 채워졌고 사장직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고용승계 과정에 자격심사 절차가 따로 없었기 때문에 전적자 중 다수는 스크린도어 유지보수 업무에 요구되는 자격증이나 기술을 갖추고 있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현장업무는 김 씨처럼 은성PSD에서 직접 채용돼 새로 들어온 노동자들에게 집중됐다. 업무를 맡을 인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2인 1조로 일을 해야 한다는 원칙도 지켜지기 어려웠다.
 
 이런 외주화의 결과 실제 업무에 투입되는 노동자들의 안전이 위협받았다. 서울특별시의회 우형찬 의원은 “외주화 정책의 목적은 근본적으로 시민안전을 담보하는 것이 아닌 조직간소화와 비용절감을 통한 경영효율화였다”라고 설명했다. 서울지하철노동조합(서울지하철노조) 이호영 교육선전실장도“당시 엄밀한 직무 진단 없이 비용절감 명목으로 ‘비핵심업무’로 분류된 업무의 외주화를 강행하다 보니 안전은 도외시될 수밖에 없었다”라고 비판했다.
 
안전은 안중에도 없었던 외주화
 
외주계약 자체에 내재한 위험도 꾸준히 지적돼왔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일과건강’의 한인임 사무처장은 “과거의 외주화가 위험한 업무를 내보내는 형태였다면 최근에는 외주화 자체에서 위험이 발생한다”라고 지적했다. 우선 외주업체 선정 과정에서 외주비용을 낮게 제시할수록 입찰에 유리해지기 때문에 외주업체는 직원의 안전관리를 위한 비용을 충분히 산정하기 어렵다. 이에 우형찬 의원은 “비용 외에 해당업체의 실적이나 경험, 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선정조건에 포함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원청업체가 외주업체 직원이 겪는 안전사고에 대해 책임을 질 필요가 없는 법적 구조도 문제였다. 개정 전의 산업안전보건법에 의하면 원청업체는 자사의 산업재해 통계에 외주 계약 관계에 있는 업체의 산업재해를 합산하지 않아도 됐다. 공기업의 산업재해통계는 매해 기획재정부가 실시하는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반영된다. 하청업체의 산업재해를 경영평가와 무관하게 규정하는 이 조항은 원청업체가 하청업체 직원들의 안전관리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빌미를 제공했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지난 4월, 해당 조항은 원청기업의 산업재해 발생건수 등에 외주회사의 산업재해 발생건수 등을 포함해 공표하도록 개정됐고 오는 10월 19일부터 시행된다.
 
법의 영역이 아닌 실질적인 업무현장에서는 원청업체인 서울메트로가 외주업체인 은성PSD 노동자들의 쟁의행위를 제한하기도 했다. 특히 스크린도어 보수 등 위험한 작업을 하는 노동자들이 더욱 안전한 업무환경을 위해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서울메트로는 이런 쟁의행위의 결과로 외주업체와 그 직원들이 ‘민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다고 외주계약서에 적시했다.
 
직고용 이후에도 여전한 차별대우
 
한편 사고 당시 서울시는 외주화 구조의 문제점을 인지하고 스크린도어 유지보수를 담당할 서울메트로의 자회사 설립을 추진하고 있었다. 그 첫 단계인 자회사 설립이 더디게 진행되던 중 구의역 사고가 발생하자 서울시는 자회사 단계를 건너뛰고 곧바로 직영화를 선언했다. 이에 따라 서울메트로는 은성PSD에서 스크린도어 유지보수를 담당하던 업무직 직원들의 명칭을 ‘안전업무직’으로 변경해 직고용했다. 이호영 교선실장은 “원래대로라면 정부에서 승인해주지 않았을 직영화가 사회적 관심이 쏠린 탓에 빠르게 진행됐다”라며 급격한 직고용으로의 변화가 이례적이었다고 설명했다.
 
직영화는 현장직원들의 안전에 대해 회사가 책임감을 갖도록 해 2인 1조 출동 원칙 등 안전지침 준수를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호영 실장은 “서울메트로라는 직장의 일원이 됐다는 데서 직원들이 자부심을 가져 고장사례에 더 잘 대처했고 실제로 고장률이 줄어들기도 했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직고용된 안전업무직 직원들의 고용형태는 정규직이 아닌 무기계약직이었다. 무기계약은 기간을 정하지 않고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경우를 말한다.
 
▲구의역 사고 1주기 추모문화제에 참가한 사람들이 노동자의 정규직 고용을 요구하고 있다.
 
무기계약직으로 채용된 직원은 정규직과 달리 근속연수가 늘어나도 호봉이 오르지 않고 자동승진의 혜택도 받을 수 없다. 한인임 사무처장은 “호봉 상승과 승진이 보장되지 않으니 인력이 자꾸 교체돼 숙련인력이 형성되기 어렵다”라며 앞서 제시한 미숙련노동의 문제가 무기계약직이라는 고용형태에서도 여전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무기계약직으로서 현재 안전업무직은 위험을 피할 수단인 작업중지권을 행사하기 어렵다. 작업중지권은 현장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들이 언제든 위험하다고 느낄 때 작업을 중단할 수 있는 권리다. 그렇지만 현재 안전업무직은 열차가 선로에 진입하는 정확한 시각 등의 정보에 자유롭게 접근하지 못한다. 이호영 실장은 “안전관련 업무는 모두 협업에 의해 유지되는데 완전히 동일한 업무가 아니라고 해서 별도의 직군으로 분리하는 건 어불성설이다”라며 업무의 내용을 근거로 일부 직원만 권한을 다르게 주는 방침에 문제를 제기했다.
 
 안전이 위협받는 것 외에도 무기계약직으로서 안전업무직 직원들은 근무조건에서 차별적인 대우를 받고 있다. 서울메트로의 업무교대제에서 그 차이가 드러난다. 서울시는 기관사 등 서울메트로의 정규직 직원들을 대상으로 4조 2교대제(4개조로 나뉘어 한 번에 2개조씩 투입되는 제도)를 시범운영하고 있지만 안전업무직 직원들은 그 대상에서 제외돼 3조 2교대제를 적용받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조성애 정책기획국장은 “4조 2교대제 시범운영으로 정규직은 별도의 임금 하락 없이 출근일수가 줄어들었지만 안전업무직의 출근일수는 그대로다”라며 근무현장에서 실질적 차별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같은 고용형태를 유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서울메트로 김석태 기술본부장은 필기시험 등 공개경쟁을 통해 정직원을 채용하도록 돼 있는 공사의 취업규칙을 언급했다. 그는 “취업규칙을 그대로 적용하면 기존 업무직 직원들을 모두 수용할 수 없고 절차를 무시한 채 정규직으로 전원 고용하면 기존 정직원들에게 역차별이 발생할 수 있다”라며 정규직 고용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서울시의회 우형찬 의원도 “원칙상 정규직으로 직고용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직원들의 고용안정을 최우선으로 확보하기 위한 방법으로 무기계약직 고용을 한 것이다”라며 그것이 당시로서는 최선이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스크린도어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안전업무직은 모두 무기계약직이기 때문에 같은 업무를 하면서 고용형태로 인해 차별받는 일은 없다고 주장했다.
 
변화가 기대되는 서울교통공사로의 통합
 
서울시는 5월 31일 서울메트로공사와 서울도시철도공사를 통합한 서울교통공사를 새로 출범시켰다. 서울의 지하철이 두 공사로 나뉘어 비효율적으로 운영되는 상황을 개선해 보다 효율적인 통합 시스템을 구축하고 이를 바탕으로 승객 및 직원의 안전관리를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서울메트로 김석태 기술본부장은 “서울메트로와 도시철도가 시스템상 차이는 조금 있지만 기본적 업무는 동일해 통합을 통한 비용절감의 여지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서울교통공사가 출범하면서 안전업무직 직원들이 겪을 변화에 관심이 주목된다. 특히 통합 이후 직원들의 고용형태를 둘러싼 논의가 아직 남아있다. 이호영 교선실장은 “통합 이후 외주용역 업무들이나 안전업무직의 처우 등을 일원화하는 작업은 불가피하다”라며 논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이런 일원화 과정을 전제했을 때 실제로 고용형태가 정규직으로 바뀔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서울메트로와 달리 서울도시철도공사에서는 스크린도어 유지보수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들이 무기직이 아닌 정규직으로 고용돼왔기 때문이다. 공공운수노조 조성애 정책기획국장도 “박원순 서울시장이 정규직과 무기계약직 사이에 발생하는 차별을 인식하고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라며 기대를 드러냈다. 그러면서도 그는 “노조와 당사자들이 어떤 요구를 얼마나 관철시켜 나가느냐에 따라 변화의 폭에는 차이가 생길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이후 일 년이 지났다. 서울시는 스크린도어의 적외선센서를 고장이 적고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는 레이저센서로 교체하는 사업을 진행해 올해 11월까지 마무리할 예정이다. 서울메트로도 정비공의 2인 1조 출동 원칙과 같은 안전수칙의 준수를 강화하고 통합 관제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근무환경 개선을 위한 움직임을 보였다. 하청업체의 비정규직이었던 안전업무직 직원들이 서울메트로 소속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면서 처우가 개선되기도 했다. 이런 변화에도 아직 지하철의 현장노동자가 안전하게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은 완전히 보장되지 않았다. 사고 후 1년, 위험하지 않은 자유로운 지하철 노동을 향한 그들의 외침은 여전하다.

[서울대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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