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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김덕권 칼럼]일일신 우 일신..
오피니언

[덕산 김덕권 칼럼]일일신 우 일신

김덕권 기자 duksan4037@daum.net 입력 2017/07/06 09:31

일일신 우 일신

 

 

▲ 김덕권 전 원불교문인협회장, 칼럼니스트일일신 우 일산(日日新 又日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끊임없이 보다 나은 사람이 되어 가자’는 뜻입니다. 이 구절은《대학(大學)》의 제 2장에 탕(湯 : BC1600~BC1589) 임금의 이야기와 함께 등장합니다. 탕 임금은 고대국가인 상(商)나라를 세웠습니다. 은(殷)이 상나라의 수도이기도 해서 은나라로 불리고도 하지요.

 

중국역사에서 군주를 몰아내고 역성혁명(易姓革命)을 이룬 첫 인물로도 기록된 탕 임금은 폭군이었던 하(夏)나라의 걸왕(桀王)을 무력으로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신하가 무력으로 왕을 몰아냈다는 정당성은 논란거리입니다. 하지만 유가(儒家)에서는 이상적인 군주로도 불립니다. 탕왕이 평시에 평소 자주 쓰는 물건에 이 ‘일일신 우 일신’이라는 글귀를 새기고 좌우명(座右銘)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탕 임금은 대야에 이런 글귀를 새겨두고 얼굴을 씻을 때마다 마음에 새겼습니다. ‘진실로 하루라도 새롭고자 한다면 날마다 새롭게 하고 또 날로 새롭게 하라.’ 이 얼마나 멋진 좌우명인가요? 우리는 안일함과 나태함에 몸을 맡기지 말고, 매일 자신을 다잡아 갈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의 익숙함과 구습에 매여 새로워지기를 포기하는 순간, 성장은 멈추고 진정한 소통도 중단됩니다.

 

'어제의 나보다 조금 더 나아지고 조금 더 새로워 졌는가?' 우리는 매일 자문해 봐야 합니다. 끊임없이 보다 나은 사람이 되어 가는 것, 여기에 인생의 진정한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끊임없이 보다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은 우리의 노력이 아니면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생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끊임없이 보다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 아닐 런지요? 보다 나은 사람이 되어간다는 것은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한 일입니다. 편하고 쉽게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부처님께서는 “갖가지 악한 행위, 즉 불행의 원인이 되는 온갖 악한 행위는 쉽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유익하고 훌륭한 것은 노력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톨스토이는 보다 나은 사람은 “우리의 진정한 힘은 자기 자신을 지배할 수 있다는 사실에만 존재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끊임없이 보다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 것! 이것이 우리가 지향해야할 인생의 모습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날로 새로운 인간다운 삶의 자세는 어떻게 만들어 가면 좋을까요?

 

첫째, 인간다운 삶의 자세입니다.

인간다운 삶, 가치 있는 삶은 ‘바람직한 목표를 추구하는 삶’ ‘정신적인 것을 추구하는 삶’ ‘이타적(利他的)인 삶’을 살아가겠다는 다짐입니다.

 

둘째, 삶에 대한 반성과 평가가 필요합니다.

‘과연 내 인생의 목표가 올바른가?’ ‘나는 정신적인 것을 얼마나 추구하고 있는가?’ ‘나는 이기적인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이타적인 삶을 살고 있는가?’ 하고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셋째, 인간답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사는 것입니다.

더불어 사는 것입니다. 인간다운 삶의 자세를 실천으로 옮길 때 함께 더불어 사는 삶의 모습이 실현됩니다. 물질적인 것만을 생각하지 않고 이웃과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가급적이면 남을 도와주는 것을 삶의 목표로 하는 삶이 인간답고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넷째,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생명이 소중한 이유는 ‘세상의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소중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 번 잃어버리면 다시 찾을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자기의 생명은 물론 일체생령(一切生靈)을 모두 사랑하는 것입니다.

 

다섯째, 자기 존중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먼저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자기 존중이 곧 생명 존중의 출발점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를 존중하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을 하면 ‘자신의 능력과 가능성’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여섯째,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상 사회의 모습은 ‘모든 것이 풍족한 사회, 질서가 유지되는 사회, 사랑이 있는 사회’입니다. 사랑의 의미는 ‘타인에 대한 따뜻한 느낌, 타인에 대한 배려, 타인과 사회에 대한 관심’입니다. 그 사랑의 실천은 ‘남의 선행을 칭찬하는 것, 남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 남에게 선행과 봉사를 행하는 것’이 아닐 런지요.

 

일곱째, 관용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관용을 실천하는 방법은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고, 타인을 나와 똑같은 사람으로 인정하고, 너그럽고 부드럽게 덕을 펴는 것’입니다.

 

여덟째, 감사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모두가 은혜의 덩치입니다. 세상은 ‘서로 돕고 사는 고마움을 아는 사회’ ‘협동으로 이루어지는 사회’ ‘다른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원망조차도 감사로 돌리는 것입니다. 잘 된 것은 ‘네 덕’ 잘못 된 것은 ‘내 탓’인 것이지요.

 

어떻습니까? 나날이 새로워지는 우리의 모습이 잘 보이시는지요? 일신 우 일신에서 나아진다는 ‘신(新)’의 의미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 말의 깊은 뜻은 매일매일 한 결 같이 열심히 노력하는 성실성(誠實性)일 것입니다.

 

누구나 기분이 내키면 결심을 하고 며칠은 노력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고 하듯이, 그것을 지속적으로 해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아무리 의지가 강한 사람일지라도 작심삼일의 법칙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결심에 따라서, 단지 삼일이 될 수도 있고, 석 달이 될 수도 있고, 삼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초심(初心)을 끝까지 유지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이런 본성을 다시 다그쳐 주는 것이 바로 ‘일신 우 일신’의 마음일 것입니다. <지성여불(至誠如佛)>의 정신! 나를 새롭게 하는 것이 바로 부처가 되는 지름길이 아닐 까요!

 

단기 4350년, 불기 2561년, 서기 2017년, 원기 102년 7월 6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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