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풍목우
즐풍목우(櫛風沐雨)라는 말이 있습니다. ‘바람으로 머리를 빗고 빗물로 목욕을 한다.’는 뜻으로, 객지를 방랑하며 온갖 고생을 겪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지요.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7월 4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에서 서명한 방명록에 이 ‘즐풍목우’라는 휘호를 남겨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당서(唐書)>에 나오는 이 말은 순(舜)임금 시절 우(禹)가 치수(治水) 사업을 하며 고생하던 일에서 생긴 고사입니다. <당서>에 따르면 우임금의 아버지 곤()이 9년에 걸쳐 치수 사업을 맡았는데 끝내 실패하여 사형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힘겨운 도전을 다시 맡은 사람이 다름 아닌 곤의 아들 우였습니다.
우는 물길을 막아 홍수를 막으려 한 아버지의 폐쇄적 방식을 버리고, 물길의 흐름을 여러 갈래 트는 소통의 방식을 택해 마침내 황하를 비롯한 주요 물길을 다스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우의 성공 이면에는 10여 년에 걸친 힘겨운 치수사업 동안 세 번 자기 집 앞을 지나갔는데도 한 번도 집에 들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는 이런 즐풍목우 노력으로 엄청난 홍수에서 백성들을 구했기에 대우(大禹)로 불러졌습니다. 요 · 순 시대에는 왕위를 선양(禪讓)하는 제도가 있었다고 합니다. 선양은 덕망 있는 인물에게 제위(帝位)를 물려주는 것으로 가장 이상적인 평화적 정권교체 방식으로 일컬어집니다. 우는 마침내 선양제도에 힘 얻어 요순에 이어 왕위에까지 오릅니다.
이 즐풍목우라는 말이 대형 포털사이트 실검에 오르면서 네티즌들의 관심이 모이고 있습니다. 즐풍목우가 실검에 등장한 배경에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있습니다. 홍준표 대표의 즐풍목우에 대해 당 관계자는 “산산조각이 나다시피 한 보수 진영을 복원하는 데 몸을 아끼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 아니겠느냐”고 해석했습니다. 그런데 막말을 일삼던 홍준표 대표가 조금 달라져 세인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이 놀랍습니다.
홍 대표는 취임 일성으로 “조직혁신, 정책혁신, 인적혁신을 통해 한국당을 국민으로부터 다시 신뢰받도록 만들겠다.”고 밝혔습니다. 홍준표 대표는 바깥이 아닌 내부로 칼끝을 돌리며 뼈를 깎는 혁신 작업에 당이 적극적으로 동참해줄 것을 호소했습니다. 강력한 대여투쟁보다 타성과 관성에 빠져있는 무기력한 당의 일신이 먼저라고 판단한 듯한 행보입니다.
취임 이후는 그보다 훨씬 더 파격적인 행보를 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일부 국무위원 후보자의 자진사퇴를 요구하며 강경 기류를 보이고 있는 당내의 분위기와는 달리 “장관 후보자가 부적절한 사람이라는 것을 국민들이 알면 됐다. 거기에 당력을 쏟을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처음 요청한 추가경정예산에 대해서도 “국민 세금으로 공무원 늘리는 것 빼고는 요건이 되면 해주는 게 맞다”는 발언도 했습니다.
홍준표 대표의 깜짝 변신은 이것이 다가 아닙니다. 추경과 마찬가지로 처리에 난항을 겪고 있는 정부조직법 개정안과 관련해서도 “집권한 정부가 조직을 운영하겠다는 건 하게 해야 한다. 야당이 막는다는 건 명분이 없다”며 정부여당이 반색할 만한 입장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7월 6일에는 “대통령이 해외에서 활동하는 동안에는 외교 활동을 하기 때문에 청와대에 대한 비판은 자중할 것”이라며, “이게 예의에 맞다”고 해 듣는 사람의 귀를 의심케 하기도 했습니다.
이 모습은 우리가 알던 ‘홍준표’가 확실히 아닌 것 같습니다. 아직도 연관 검색어에 ‘막말’이 함께 오를 만큼 숱한 구설에 올랐던 인물이 홍준표 대표입니다. 또 색깔론은 어떤가요? 홍준표 대표의 ‘좌파’ 알레르기는 유별나기로 유명합니다. 문재인 정부를 ‘주사파 정부’라 규정한 것도 좌파에 대한 거부반응부터 일으키고 보는 홍준표 대표의 정치철학이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였을 것입니다.
그런 홍준표 대표가 당 대표가 된 이후 전혀 다른 행보를 보여주고 있으니 화제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기대했던(?) 막말도, 독설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것은 아마 무조건 반대만 하는 ‘발목잡기 식’ 대여 투쟁으로는 민심을 얻기 힘들다는 판단에서 투쟁방식의 변화를 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실제 자유한국당이 강경 기조를 이어가고 있지만 효과는 크게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국정지지도는 여전히 80%를 상회하고, 민주당의 정당 지지율 역시 50%를 넘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당의 정당 지지율은 7~8%에서 헤매는 중입니다. 이는 대여 강경 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실정을 부각시키고 지지층을 결집시키겠다는 고전적 전략이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일 것입니다.
더군다나 민심은 국정농단 사태와 대통령 탄핵의 원죄가 있는 자유한국당에게 혁신과 반성을 먼저 요구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홍준표 대표의 변신은 정치 환경을 고려한 전략적 행보로 봐야 하지 않을 런지요? 물론 홍준표 대표가 지금의 모습을 끝까지 유지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찌됐든, 홍준표 대표가 색다른 흥미를 주고 있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일입니다.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잘 못 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뜻밖의 모습으로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는 이런 홍준표 대표의 행보가 어떻게 귀결될지 관심 있게 지켜보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금 새 변해도 좋습니다. 어쨌든 국민들의 불안감이 조금은 줄어든 것 같아 청량감이 듭니다. 새는 날개 하나로 날 수 없습니다. 좌우 두 날개로 날아야지요. 막말로 세상을 이끌 수는 없습니다. 반대만으로 국정이 굴러 갈 수 없습니다. 홍준표 대표의 말마따나 우선 정부를 구성하게 협조를 하고 잘 못이 나타낼 때 투쟁을 해도 늦지는 않습니다.
대의(大義)를 모르고 날 뛰는 사람은 살아도 가치 없는 인생이요, 죽어도 값없는 죽음입니다. 자유한국당은 지금 최악의 상태로 어쩌면 다음 선거에서 소멸 될 런지도 모릅니다. 협조할 것은 협조하고, 잘 못 된 것은 반대를 해 우선 당을 정상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효천뇌우 일성후(曉天雷雨 一聲後) 만호천문 자재개(萬戶千門 自在開」‘새벽하늘 우레 비 한 소리 뒤에, 모든 집 모든 문이 열리리라!’ 뼈를 깎는 개혁위에 국민의 지지를 다시 얻고 다시 자유한국당이 집권하면 그것이 남는 장사가 아닐 런지요!
단기 4350년, 불기 2561년, 서기 2017년, 원기 102년 7월 10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